“너무 예민한 거 아냐?” “맞춤법 성애자야?” “까칠하게 왜 그래?” 틀리고도 큰소리치는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변명인지 충고인지 모를 소리를 자꾸 합니다. 미래에는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이 그런 것쯤 다 알아서 고쳐준다며 ‘뜻만 통하면 그만’이라는 혁신적 사고를 가진 이상한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포스터, 메뉴판, 기사에서 틀린 맞춤법과비문을 발견할 때마다 피로감을 느낍니다. 심지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대통령 말씀자료를 보다가 그런 문장을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출처는 2020년 3월 4일 올라온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글입니다.
△ 청와대 홈피에서 대통령 말씀자료를 누구나 볼 수 있다.
‘걸다’라는 동사는 문맥에 따라 그 쓰임이 다양합니다. ‘빗장을 잠그다’(자물쇠를 걸다, Lock) ‘작동되도록 하다’(시동을 걸다, work)부터 시작해 ‘계약이나 내기의 담보로 삼다’(돈을 걸다, bet), ‘희망을 품다’(기대를 걸다, expect), ‘어떤 행동을 먼저 하다’(말을 걸다, speak to), ‘명령하거나 요청하다’(팀장이 비상을 걸다, offer)로 사용됩니다. 가장 핵심적인 의미는 ‘매달아 놓다’(벽에 그림을 걸다, hang on)입니다.
△ 문맥에 따라 단어의 뜻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대통령 말씀에 사용된 ‘어깨를 걸다’라는 표현은 ‘신체일부를 맞대어 껴다’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럴 경우 딱 맞는 단어는 ‘걸다’가 아니라 ‘겯다’입니다. ‘겯다’는 ‘풀어지거나 빠지지 않도록 서로 어긋나게 끼거나 걸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어깨를 걸다’라는 표현은 비문(非文)인 거죠.
‘겯다’는 [결어, 겯고, 결으니, 결어서]로 활용됩니다. 일상에서 잘 사용되지 않아 좀 낯설게 보일 수는 있지만 ‘걷다’(walk)의 오타가 아닙니다. 특히 대통령 말씀에 사용된 ‘어깨를 겯다’라는 표현은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과 마음을 일치시키다’라는 관용구로 굳어져 있습니다. “이번 일은 혼자서는 안 되고, 우리가 어깨를 겯고 함께 해야 할 수 있다”처럼 말이죠.
△ ‘겯다’는 틀린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보이는 묘한 단어다.
대통령 말씀 작성하느라 고생하신 신동호 연설비서관님께 일해라절해라(이래라 저래라) 골이따분(고리타분)하게 감히 지적질해서 재송(죄송)합니다. 물론 이렇게 잘못 쓰는 게 청와대만은 아니지만, 다른 데는 몰라도 청와대니까 이런 걸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맞춤법은 소통의 기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