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난 3년은 눈 깜빡할 정도로 짧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싸우고 다툰 적도 많았지만, 그 시간을 다 견디고 이제 정말 가족이 되는 날이 되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30년 이상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이 서로 맞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일이긴 하지만 제 걸음에 맞춰 반걸음씩 빨리 걸어야 했던 오빠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래서 결혼하면 저도 가끔은 오빠 걸음걸이에 맞춰서 천천히 걷도록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처음 만날 때의 그런 설렘만을 가지고 살아갈 순 없겠지만
가끔은 처음 만났을 때 그 설렘도 되새겨 가며 그렇게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빠가 프러포즈할 때 너랑 살면 재밌을 거 같다고 했던 말 잊지 않고 앞으로 오빠에게 웃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그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나 에 헤라는 평생 다정한 오빠만을 사랑하고 아끼며 웃게 해 주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서로 바라보며 행복하게 살 것을 여기 계신 부모님과 모든 하객 분들 앞에서 진심으로 서약합니다.
201ㅇ년 ㅇ월 ㅇㅇ일
평생 오빠 옆을 지켜줄 든든한 반쪽 에 헤라..
지금의 남의 편을 만난 건 내가 한창 바쁘고 정신없던 시절이었다.
연구소에서 옆 실험실 언니와 이야기하던 어느 날 언니는 갑자기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며 아는 사람 중에 엄청 착한 남자가 있다고 했다. 아니다. 소개해 줄 사람이 3명쯤 있다고 했다. 잘 들어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라고..
그런데 정작 시간이 되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 여름날 저녁, 신촌에서 그 엄청 착한 남자를 만났다.
서울에 온 건 소개팅도 있지만 소개팅 다음 날 토익시험이 예정되어 있어서 겸사겸사 온 것이었다. 토익시험 보러 온 길에 잠시 소개팅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 나는 솔직히 남자를 만나는 것보다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하루 재미나게 놀 생각에 신나 있었다. 그것도 신촌에서.. 기쁜 마음으로 나는 그 남자를 소개받았다.
그런데 막상 만난 그 남자는 솔직히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진짜 소개만 해주고 가려는 언니를 잡았다 같이 놀자고..
그 남자의 첫인상은 키가 작고 동글동글했다.
여기서 잠깐 나의 이상형을 말하자면 매우 남자답고 건장하고 손이 예쁜 그런 남자다.
일단 소개팅 첫날은 재미나게 놀았다. 하지만 첫 만남 이후 나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나지 않기로 했다.
내 이상형과는 정반대였으니깐.
그리고 나는 바쁜 대학원 4학기를 보내고 있느라 나 자신도 잘 챙기지 못하던 그런 시절이었으니깐. 연락이 와도 바쁘다를 연발하며 답도 제대로 하지 않았더니 어느 날부턴가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지냈다.
그 후 나는 무사히 대학원 4학기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내가 서울로 올라와 일을 하게 된 연구소는 신촌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이었다. 그런데 그 소개팅 남은 본가가 신촌이었다. 이 무슨 기막힌 우연히..
당시에 그 남자는 경기도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주말이면 본가에 왔고, 나는 평일과 주말 할 거 없이 일을 하느라 거의 신촌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개팅 주선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그 오빠 다시 만나볼래?”
“싫은데요..”
“아니야 다시 만나봐 그 오빠가 너 다시 꼭 만나고 싶대 만나게 해달라고 하더라”
그렇게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데 한번 만나주지 뭐.. 그렇게 다시 그 남자와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았는데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얘기를 한 기억조차 없다고 한다. 삼자대면을 해봤지만, 결국엔 기억이 나지 않음으로 결론이 났다.
그냥 가볍게 만날 생각이었다. 그 남자와 잘될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나의 이상형과는 정반대였으므로, 그런데 눈앞에 계속 보이니 서서히 정이 들었나 보다.
주말이면 하루 종일 집에서 일을 하는 나를 기다려 주었다.
(아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집에서 잤을 거다. 그것도 아주 꿀잠을...)
나를 기다리며 영화표도 예매해 두고 내가 오면 부끄러워하며 조심스레 장미꽃 한 송이를 전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자기의 이상형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자신의 이상형은 통통하고 귀여운 여자라고
‘어머 뭐야 이 오빠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이렇게 대놓고 너다 얘기하면 내가 부끄럽잖아’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난 지 몇 개월 만에 진지한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정말 억울하게도 나에게 그 남자는 첫사랑이었다. 그랬다. 나는 20대 후반까지 모태솔로였다. 누군가 만난다는 게 처음이었지만 그때 나는 이미 20대 후반이었으므로 왠지 진지하게 만나야 할 것 같았다.
(모태솔로라고 하니 약간 불쌍해 보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완전 모태솔로는 아니었다.)
일단은 1년만 만나보기로 했다. 4계절을 함께 겪어보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는커녕 나는 파악을 당하기만 했다. 1년쯤 지났을 어느 날 남자친구는 나에게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너, 나를 1년이나 만났는데 아직도 어색해?”
“아니 하나도 안 어색한데!”
“그럼, 너 내 눈 봐봐.”
그랬다 나는 한 번에 눈을 못 마주쳤다. 나는 1년을 만나는 동안 나만 인지하지 못했을 뿐 남자친구에게 낯을 가리고 있었다.
그렇게 어색했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3년을 만났다. 뒤돌아보면 3년이라..
그렇게나 헤어질 시간이 많았는데 아쉽다.
어쨌든 우리가 3년이나 만나게 된 건 남자친구의 부모님 덕분이었다.
남자친구는 둘째 아들이었고,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큰아들보다 둘째 아들을 먼저 결혼시킬 수는 없다고 했단다.
그때 땡큐하고 갔어야 한다. 아쉽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내가 싫다는 건가.
그래서 나도 우리 오빠가 결혼하고 할 거니깐 기다리라고 했다.
근데 오빠는 쿨하게 나에게 차례를 양보했다.
오빠는 나한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는 만난 지 3년 만에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 없는 결혼식을..
모르는 사람이 해주는 의미 없는 주례사는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모르는 주례와 찍는 사진은 더더욱 나에게 의미 없는 것이었다.
처음에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남편도 양가 어른들도 탐탁해하지 않으셨지만
나의 구체적인 계획을 들으시곤 모두 동의를 해주셨다.
나의 계획은 이랬다.
혼인서약서는 결혼당사자인 우리가 직접 한다. 물론 내용도 우리가 직접 작성할 것.
그리고 시아버지께서 축사를 해 주신다. 역시 아버님이 직접 작성해 주실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아빠가 주례사와 축사를 해 주신다. 역시 아빠가 직접 작성해 주실 것.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주례가 없으니, 허전할 것도 같아 사회 보는 남편 친구에게
식 진행과 관련하여 대본을 마련해 준다. 아주 구체적으로...
나의 계획은 이 정도였다.. 뭐 대단한 것도 없지만 그 당시는 나름 힘들었다.
나는 우리 혼인서약서와 양가 아버지들의 축사를 꽂을 판까지 직접 만들었다.
한 가지 꼭 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극구 반대하여서 하지 못한 나의 축가...
싸이의 연예인을 부르려고 했는데 실패.. 아쉽다.
신혼을 즐기던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이상형이랑 사니깐 좋아?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근데 남편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지 눈을 크게 뜨고 무슨 이상형이냐며 물었고, 나는 예전에 이상형이 통통하고 귀여운 여자라고 한 거 그거 나 들으라고 한 이야기 아니냐며 물었다.
평소에는 말도 크게 안 하는 인간이 엄청 단호하게 너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냥 진짜 자기만의 이상형을 나에게 이야기해 준 거라고 한다.
속았다.
나는 내가 이상형이라고 해서 좋았는데 나를 진짜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이제 다정한 오빠는 없다.
어느 날 같이 텔레비전을 보다 오빠 변했어, 예전엔 안 그랬는데 결혼하니깐 변했어.라고 하니 지금이 제정신이라고 한다. 자기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다고...
그때가 미쳤던 거고, 결혼하고 이젠 정상이 되었단다.
그때의 다정한 오빠는 그냥 잠깐 미쳤던 다정한 오빠였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건 하나 있다.
고기를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꼭꼭 고기 먹여준다고 꼬시더니 그 약속은 잊지 않았다. 단지 그 고기는 10년째 돼지고기다.
한때 미쳤던 다정한 오빠는 소고기를 싫어한다.
그렇지만 나는 요즘도 그 옛날 다정한 오빠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남편에게서 아주 쥐어짜듯 그 다정한 오빠의 모습을 찾아본다.
아주 찰나 그런 모습이 보인다. 너무 짧게 보여서 문제다.
그래도 나는 잘 지낸다. 옛날 다정한 오빠를 추억하면서....
오빠가 줬던 편지, 레모나, 향수 등등을 그리워하면서..
(+)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인 어느 날 그 당시 썸남은 나에게 선물상자를 하나 수줍게 내밀었다. 이게 뭐냐고 묻자, 요즘 피곤해 보이는 거 같아 레모나를 준비했다며,
레모나를 상자에 종이 완충제와 함께 곱게 넣어 나에게 건넸다.
그걸 받고 헤어진 후, 나는 레모나가 들어있는 상자에서 종이 완충제를 이리저리 젖히며, 설마 레모나만 들었겠어? 뭐 반지나 반지가 좀 부담스러우면 귀고리라도 같이 들어있겠지 하며 열심히 뒤졌지만, 하트 상자에는 곱게 레모나만 들어있었다.
뭐 실망한 건 아니다. 나를 생각하며 레모나도 사고 상자도 샀을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나중에 연애하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용기 내 물어보았다.
“오빠, 근데 나한테 그때 레모나 왜 준 거야?”
“너 그때 엄청 피곤해 보였어. 그래서 준거지. 그냥 통째로 주려니 그래서 상자 사서 옮겨 담은 거야.”
“아 그랬구나, 나 있지 그때 지하철에 서서 그 안에 들어있는 종이 완충제 젖히면서 뭐 있나 찾았잖아. 근데 아무것도 없고 레모나만 있더라. 뭐 반지나 귀고리 정도는 같이 넣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사람 기대하게 하트 종이상자에 레모나만 넣어주고 그래.”
“아~~~ 그렇구나. 레모나만 넣은 건 좀 그렇긴 하다.. 근데 너 그때 정말 피곤해 보였어.”
그랬다. 우리는 둘 다 연애 초보였다. 그때는 그 남자의 그런 어수룩함도 좋아 보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