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8. 인연의 시작은 일면식일까

_결코 닿은 적 없지만 분명 닿고 있는 얇고 강한 선

by 개화


어제 하루는 정말 떨리는 하루였다. 약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연이라고 느끼고 있었던 한 브런치 가게에 첫 방문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 말부터 누군가에겐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 브런치 가게와 나의 연결성이라고 하는 것들은, 사실 누군가가 보기엔 그저 우연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믿어왔고 믿었기에 오늘 한번 얘기해보려고 한다.


처음 시작은 간략히 말하자면 이렇다. 혼자서 조금 서울을 돌아다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우연히 이 브런치 가게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늘 그랬듯 도장 깨기 리스트에 저장을 해두었다. 그리고 인스타에 올라오는 자매 사장님 두 분이서 올리시는 글들을 간간히 읽었던 것 같다. 메뉴 라인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의 정체성, 그리고 이분들의 생각과 글, 그리고 공간 속에 담긴 따뜻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 게시글들. 그 글들은 사장님 두 분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해 주었고, 이때부터 점차 이 공간이 나에게 다른 공간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방문해보고 싶었지만 거리가 가깝지 않은 터라, 늘 근처에 가게 된다면 방문해야지 하면서도 좀처럼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무료함에서 탈피하고 나만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 조용히 운영 중이던 사진계를 누군가가 팔로우했다고 알람이 떴다. 놀랍게도, 이 브런치 가게 계정이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사인을 받은 여고생처럼, 한참을 꿈을 꾼 것처럼 행복해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정말 인연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한번 더 나에게 찾아왔는데, 이전에 아마 나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이자 최고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덴마크에 여행 갔을 때라고 답할 것이다. 지쳐있던 나의 삶에 많은 힘과 위로를 준 나라였고, 내가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해 준 아주 보물 같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9일이라는 시간 동안 작다면 작은 코펜하겐에서만 진득하게 머물러있었기 때문에, 거의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웬만한 곳은 다 가보았으며 지도 없이도 길을 걸을 정도로 익숙해져 있던 공간이었다.


근데 어느 날, 인스타 스토리에 너무나 익숙하고 그리운 공간이 하나 올라왔다. 덴마크 'HEY' 매장 내부 사진이었다. 처음엔 나와 같이 간 친구들이 추억회상하며 올린 거겠거니 했는데 인스타 아이디를 보니 또 브런치 가게였다. 그때부터는 아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믿게 되었으며, 꼭 방문을 해야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일면식도, 심지어 방문해 본 적도 없는 가게에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그것도 수많은 서울의 브런치 가게 중, 우리 동네에서 1시간은 가야 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동네의 한 브런치 가게에.


일상에 치이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사장님께서 올리시는 글들을 찬찬히 읽는 것으로 만족하며 시간을 보냈다. 생각과 마음이 통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려는 사장님들의 시선이 나와 비슷한 것 같아 좋았다. 그 글들을 읽으면 참 마음이 편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이번 주 스케줄을 보다가 드디어 어제,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나는 곧바로 1년 동안 기다려왔던 특별한 하루를 위한 계획을 준비했다.


하루 전 날엔 지금까지의 이런 누군가는 우연이라고 할지 모를, 여기까지 방문하게 된 이야기와 진심 어린 말들을 꾹꾹 눌러 담아 엽서를 적고, 일을 다녀와서 바로 잠에 들었다. 5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고 당일날도 새벽까지 이어지는 저녁 일정이 있었지만, 너무 설레는 날이라 아무것도 개의치 않았다.


당일에는 새벽 6시부터 기상을 해서 근처 꽃시장으로 향했다. 직접 꽃시장에서 꽃을 고르고, 포장 가게에 가서 포장을 부탁드렸다. 기다리는 순간에는 당일날 결혼하시는 커플 두 분이 오셔서 부케 포장을 기다리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아주 아름다운 모습도 보고, 신문지에 수없이 많은 꽃다발을 둘둘 말아 어깨에 얹고 매장문을 나서는 낭만 가득 할아버지분들도 봤다. (꽃상인이실 수도 있지만 내 행복을 위해서 로맨틱한 할아버지분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포장가게 사장님께서는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더 받으셔도 아깝지 않을 아름다운 꽃다발을 3000원이나 할인해 주셨다. 오늘은 정말 거짓말처럼 행복하기만 할 하루라는 것을 그때부터 확신했다.


그렇게 품에 안게 된 사라 작약과 거베라 꽃다발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꽃이었기에 부디 선물을 받으시는 사장님 두 분께서도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원래의 계획은 꽃다발을 들고 40분 정도 산책처럼 걸어서 방문하는 거였지만, 갑자기 비가 쏟아진 탓에 결국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손이 부족해서 도착했을 때쯤엔 쭈글쭈글해진 꽃다발이 속상했지만, 마음이라도 전달되길 바랐다.


메뉴를 먼저 주문을 하고, 조심스럽게 꽃다발과 엽서를 추가적으로 내 자리에서 가져와 드렸다. 처음엔 무척이나 놀라신 기색이었다. 처음 오는 손님이 엽서와 꽃을 들고 비 오는 날에 방문한다면, 나였더라도 당황스러울 것 같아 죄송했다.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차분하게 잘 말은 못 했지만, 걱정과는 달리 너무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매장에서 잠들어있는 귀여운 강아지 하코의 엉덩이와 창밖의 잔잔한 풍경을 보며 기다리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조심스럽게 커피를 드시냐고 여쭤봤다. 이런 의미로 사 온 것이 아니었기에, 죄송해서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오히려 안 받으면 행여 선물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실까 봐 감사히 받았다. 메뉴가 나왔을 땐, 다른 사장님께서 냉동고에 아껴두고 먹으신다는 최애 쑥브라우니와 초코 브라우니까지 예쁘게 담겨 같이 나왔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받고 가는 것 같아서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과 풍족한 마음,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에 행복함을 느꼈다.


사장님 두 분의 마음을 온전히 느끼고자 정말 온전히 음식에 집중해서 차근차근 음미하며 먹었다. 너무 든든했고, 맛까지 완벽한 최고의 식사였다. 마지막으로 나설 땐 자주 방문해 달라는 말씀과 함께 다 찍혀있는 너무 소중한 도장까지 서비스로 주셨다.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고자, 이 인연을 만나 뵙고자 방문했는데 오히려 선물만 한아름 받고 나온 사람이 된 것 같아 고장이 날 정도였다. 모든 것이 풍족한 상태를 지니고 매장 밖을 나오면서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인연의 시작이 꼭 일면식으로부터 시작되지는 않는다는 것. 비록 사장님 두 분과 나는 어제 처음 만났지만, 우리의 인연은 어쩌면 내가 이 가게를 알게 된 1년 전부터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어코 이어질 인연은 이어진다는 말이 정말 그저 지나가는 가벼운 말이 아니라는 것을 어제 느낀 것 같다.


닿고자 한다면, 정말 인연이라면, 닿지 않으래야 닿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살면서 처음으로 가게 사장님께 선물이라는 걸 드려보기도 했고, 나도 일면식이 없는 사람에게 홀로 선물을 해보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어떤 순간과 비교해도 쉽게 견줄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특별하고 값진 순간이었다. 오늘은 이 글을 읽을 독자들 중에서도 혹시 나처럼 이렇게 일면식이 없음에도 인연이라는 느낌이 드는 누군가가 지금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비를 뚫고 꽃을 드리러 가던 길, 그리고 따뜻하고 애정어린 감사한 마음들


keyword
작가의 이전글ep 7. 생각보다 별 거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