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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열 Oct 27. 2020

당신의 첫 사진

Morondava, Madagascar

오늘 날씨가 참 좋은 날이었습니다.

햇살은 적당히 따가웠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기분 좋은 바다 냄새가 실려 왔습니다.

사실 오늘이라고 어제와 그제와 특별히 다르지도 않았지만, 뭐 그런 날이 있잖아요. 날씨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날.


한쪽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길을 걸었고 멀리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 걸은 길 끝에선 아이들이 거친 공터에서 뛰어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멀리서 카메라를 꺼냈지만 눈치 빠른 몇몇이 제게로 달려와

“뽀또! 뽀또!”

외치며 포즈를 취합니다.

언제나 아이들의 사진 찍어달라는 소리는 반갑습니다.

항상 환한 웃음으로 다가오거든요.

제법 큰 아이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매서운 눈빛으로 격투기 자세를 취하고 작은 녀석들은 형들에게 밀려 쉽게 제 렌즈 앞에 서지 못했지요. 그래서 자세를 조금 낮춰 작은 아이들을 렌즈에 담습니다.





그렇게 지칠 때까지 사진을 찍고 함께 웃음을 터트리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배낭 깊은 곳에서 휴대용 프린터를 꺼내 아이들 수만큼 사진을 뽑았지요.

아이들은 많고 프린터는 느리니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열심히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 나타나자 아이들은 또다시 제게 뛰어왔고 전 본의 아니게 아이들의 놀이를 두 번이나 방해 버렸네요.

아무튼, 그렇게 모인 아이들에게 사진을 나눠주고 새로 온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데 한 풍채 좋은 아주머니가 제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말없이 따라오라 손짓하네요.


아무 말이 없었기에, 그리고 웃는 얼굴도 아니었기에 조금 걱정했습니다. 사진을 나눠줄 때 아이들이 조금 다툰 것에 화가 난 것일까? 어느 나라처럼 사진을 찍는 게 영혼을 빼앗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살짝 걱정을 하며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한 집에 다다랐고 아주머니는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갑니다.





잠시 후, 그 어두운 방 안에서 아주머니와 한 여인이 나옵니다. 얼굴은 퉁퉁 붓고 이불 뭉치를 들어 안고요. 아니 사실은 문턱에만 살짝 발을 걸쳤지요.

아주머니는 이제야 웃으며 이 여인을 찍어 달라합니다.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어달라고 여기까지 부른 거구나 안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 뷰 파인더로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퉁퉁 부은 얼굴로 가능한 활짝 웃네요. 그리고 이불 뭉치를 살짝 열어 카메라 쪽으로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기 얼굴이 드러납니다.

제 렌즈를 통해 제가 바라보고 있던 대상은 그저 한 여인이 아닌, 한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 아이의 첫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어쩌면 엄마가 된 그녀의 첫 사진을 찍어 준 것일지도 모르지요.


어제와 그제와 별 다를 게 없는 날씨였지만,

오늘, 날씨가 참 좋아서 다행이었습니다.

당신들의 사진을 잘 찍어 줄 수 있어서.








오래전 여행을 하고 몇 년 동안 글을 쓰고 사진을 다듬고 몇 해 전 책을 만들었습니다.

브런치에 새로운 글을 쓰기 전에 책에 실은 글 중 좋아하는 글, 편집 과정 중 빠진 글, 사진이나 그림을 더 보여주고 싶었던 페이지를 중심으로 다시 올려보려 합니다.

책을 봐주신 분들께는 다시 여행을 떠올리는 계기로, 아직 본 적이 없으신 분께는 답답한 일상에서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Instgram: @310.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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