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책을 덮은 뒤에..

<불이 켜지기 전에>의 인상적인 문장들

by 주울
영화과 학생일 때 존경했던 한 교수는 영화감독이 되지 않고서도 영화 일을 하는 것에 필요한 용기에 대해 자주 말했다. 영화의 세계에서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은 다음 아닌 ‘자신의 자리’를 현명하게 찾아가는 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가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미래를 미리 염려하고 위로하던, 나아가 자신에게도 그렇게 했던 그는 식견은 짧고 패기만 넘치는 스무 살 학생들 앞에서 엔딩크레디트에 오르는 수많은 이들 중 한 사람이 되는 일의 가치에 대해 너무 일찍 역설했던 것이다. (..) 스무 살 때의 내 오만함이 똑바로 보지 못했던 그 교수의 진의는 다름 아닌 사랑이다.


그에게 내가 한 말은 디디온이 이 책에서 쓴 문장을 내 식대로 바꾸고 회고한 것들이라고 고백했다.

자기만의 노트를 쓰는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부류로, 외롭게 만사에 저항하며 재배치하는 사람이다. 불안한 투덜이, 분명 태어날 때부터 어떤 상실의 예감에 감염된 아이들이다.


이 대화의 ‘방’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 누군가는 위안을 얻고 연결의 실마리를 모색했다. 그 힘의 원천은 오늘 자신이 내뱉은 말들의 불완전함이 못마땅한 나머지 닫힌 방 안에서 하염없이 책장의 정렬이나 맞추고 있던 내가 과소평가한 무엇이다.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본 영화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너무나 당연하고 뼈저린 사실. (..) 오픈 채팅방에서든 마이크 앞에서든 타인에게 도통 닿기 힘든 복잡한 원체험과 해묵은 트라우마도 모두 그들 각자의 것이다.


“우리 정원은 조금 엉성해야 해요. 엉성한 것 안의 치밀함. 치밀함 안의 엉성함. 그게 좋지 않나요? 치밀하고 치밀하면 금방 힘들어져요. 그런데 서울에서 오셨어요?”
(..) 그가 덧붙였다. “투박해야 더 고결합니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김소미 작가의 책. 극장의 '불이 켜지기 전에' 품었던 생각과, 혹은 극장으로 들어서기 훨씬 전과 극장을 나온 뒤에 품었던 생각들이 담긴 책이다. 평소 씨네 21과 다른 여러 지면에 연재되는 그녀의 글을 즐겨 읽었다. 그녀의 글뿐만 아니라 영화를 대하는 나긋한 태도가 눈에 띄었다. 그저 한 명의 좋은 기자, 작가라고만 생각했지만 그 이면에서 그녀가 만들어온 훨씬 치열한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초반부는 영화를 배우게 된 과정부터 작품 제작이 아닌 글쓰기의 분야로 넘어가게 된 과정이 담겨있다. 그녀는 영화학과를 나온, 소위 봉준호나 박찬욱 감독을 꿈꾸던 영화 학도였다. 그러나 모두가 봉준호, 박찬욱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똑같이 감독을 꿈꾸던 이들 중에서도, 누군가는 조명을 들게 되고 누군가는 카메라를, 누군가는 카메라 뒤에서 편집을 하거나 캐스팅 디렉터가 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그것을 과연 '뼈저린 실패의 길'이라고만 생각해야 할까? 그들이 비록 감독이 되고 싶었더라도, 그리고 그것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곁에 남았다면 그건 엄청난 사랑의 결과일 테다. 그것은 슬퍼할 일만이 아니다.


그러나 어린 작가는 이런 교수의 말을 현실과의 슬픈 타협으로만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런 타협을 역설하는 말은 아이러니하게 아름답게 와닿는다. "식견은 짧고 패기만 넘치는 스무 살 학생들 앞에서 엔딩크레디트에 오르는 수많은 이들 중 한 사람이 되는 일의 가치에 대해 너무 일찍 역설했던 것이다." 꿈 앞에서 좌절해 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가치. 그것을 배우고 작가는 한 발 더 나아간 듯 보인다.


그녀의 글을 다 읽고 나면 더 이상 '완벽하고 나긋한 영화인'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녀 나름의 웃픈 실수의 일화들도 적어두었는데 - 기고글을 실수로 반만 싣는다거나, 유명 감독과의 줌인터뷰 방을 실수로 나가버린다는.. 그런 일화들이다 - 완벽해 보였던 글 뒤에도 이런 실수들이 있었다는 게, 그녀도 그런 실수들을 겪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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