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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은 선물 Dec 25. 2022

나는 '개와 돼지' 같은 선생님?

나이스(neis)는 절대로 나이스(nice)하지 않다

2022년 12월 23일 금요일


‘나는 이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키는 대로만 하는 ‘개와 돼지’ 같은 선생님이 되었다.‘     


오늘은 2학기 때 실시한 수행평가 기준안과 평가지를 교육 행정시스템(이하 나이스, neis)에 꼭 올리라는 마감 날이다.

지난주에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평가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쪽지를 받았다.


“성취기준에 ‘~있음’은 사용하지 말고 ‘~함, ~임’이라 기술할 것”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은 9월에 이미 결재를 받은 기준안에 있는 ‘~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 나도 재빨리 과목별로 10개 이상의 ‘~있음’ 모조리 고치고 pdf 파일로 만들어서 우리 학년 단톡방에 평가기준안 파일을 올렸다. 파일을 본 연구부장이 교실로 조심스럽게 찾아와 말했다. “부장님~ 수학과 다른 과목에 아직도 ‘~있음’이 있어요.” “고마워. 얼른 고칠게.”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눈을 부릅뜨고 ‘~있음’을 모조리 찾아내기 위해 눈과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 반 것을 고치고 나서 다른 반 선생님들에게서 받은 문서를 확인하고 ‘~있음’을 찾아냈다. 해당 선생님들에게 다시 해 달라 쪽지를 보냈고 수정된 파일을 다시 받아 결재를 올렸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있음’을 찾기는 퇴근 시간 4시 30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내 것과 11분의 선생님들 것을 검토하느라 눈이 충혈된 채.

한 가지 업무를 끝냈다는 성취감도 조금은 느끼면서.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연구실에 들렀다. 온수기의 뜨끈한 물을 한잔 따라 한 모금 입에 물었다.

“부장님, 누가 수행평가 기준안 ‘~있음’ 다 고치랬어요?”

그곳에 있던 2반 선생님이 딱딱한 말투로 물었다.

‘캑’ 순간 뜨거운 물이 목구멍에 걸려버렸다.

“교장 선생님이 눈여겨보신다고 평가 담당이 말했고, 연구부장도 나보고 틀렸다고 했는데……”

“부장님, 나이스 학기 말 종합의견에서 평가결과니까 ‘~임, ~함’은 과거형으로 쓰는 것이 맞지만, 9월 학기 초에 결재받은 기준안은 미래형이니 ‘~할 수 있음’을 쓰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이미 결재 난 기준안을 임의로 수정하는 것이 더 문제 아닐까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다 맞는 말이었다. 가끔 4살이나 어린 2반 선생님이 내 언니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언니”라고 부른 적도 두어 번 있다. 오늘도 ‘언니 같은 후배’ 앞에서 한없이 난 초라해졌다.    


 

2반 선생님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교사들은 가끔 개와 돼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장 선생님이 잘 모르고 하는 말까지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우리는 ‘개, 돼지’와 뭐가 다를까요?”

 “교장 선생님의 지시가 맞는지 검토하고 현명한 지시를 하실 수 있게 협의해야지. 그냥 아무것이나 다 시키는 대로 하나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내가 그렇구나. 투덜대면서 하라는 대로만 하는 나.

자동태엽을 감은 시계처럼 저절로 움직이고 있는 나,

생각하고 고민하고 질문하지 않는 나,

나는 개와 돼지 같은 선생님이 되었구나!’     

우리 학년 11명의 선생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수없이 삭제한 ‘~있음’에게도.     

만약 부장인 내가 연구부장, 평가 담당에게 물었더라면?

만약 우리 학교 45명의 선생님 중 한 명이라도 문제를 제기했더라면?

만약 다하고 나서 분개하는 2반 선생님이 지난주 처음 평가 담당이 보낸 쪽지를 이의제기를 지금처럼 했더라면?

만약……? 만약……? 만약……?     

수많은 '만약'이 떠오른다.      


만약 대규모 학생들을 데리고 체험 학습을 가서 큰 인명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에 맞닥뜨렸다면?

“지시에 따르는 것이 맞지만 지시가 맞는지 의문을 한 번이라도 품어본다면?”

“만약 더 좋은 위기 돌파 방법이 없는지 생각을 했더라면?”

“관리자(교장, 교감을 줄여서 학교에서 쓰고 있는 명칭)의 지시가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게 보이는 데도 지시이기에 순종만 하고 있다면?”

“만약……?”

정말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자꾸만 개와 돼지처럼 문제 제기 하지 않고 가축화되어가는 학교문화에 맹목적 복종을 하는 내가 오늘은 정말 싫다.      


  개, 돼지라는 단어를 들으니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말이 생각난다.

“수렵 채취 시절보다 농경화되면서 집단화, 가축화되어 감염병이 늘어났다.”     


교직 사회도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집단화, 조직화, 정보화되면서 시키는 대로만 하는 ‘묻지도 따지지도 마! 전염병’에 선생님들은 서서히 수십 년 동안 몸에 착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매년 7월과 12월이 되면 선생님들은 나이스 기록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이만저만 받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들은 학기당 국어 교과 105시간, 학기당 5시간 내외의 시수의 ‘진로활동’도 똑같이 2문장 이상의 평어를 쓰라는 지침을 볼 때마다 누구의 발상인지 궁금하며 옆에 있다면 “말이 되나요?”라고 소리치고 싶다.

 초등학교 교과과목(국어, 수학,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 도덕, 영어, 실과, 창의적 체험활동(자율, 동아리, 봉사, 진로), 행동 발달 종합의견까지 15개 항목에 2문장씩을 쓰면 학생마다 최소 28개 문장~30개의 문장을 매 학기 기록해야 한다. 절대로 선생님 마음대로 써도 안되고 아이들마다 똑같은 내용을 써도 안 된다. 관찰내용(수행평가기준안에 없는 것은 다 기록해서 2문장 넣으면 최대 30 문장)에 언제 어느 시간에 어떤 행동특성이 있었는지 학기 말 기록과 딱딱 맞아떨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학기에 아이마다 다 다르게 50개 이상의 항목을 1,350문장을 집과 학교를 오가면 1달 동안 매일 4시간씩 쓰고 고쳤다. 양으로 승부하지 않고 정성적(定性的)으로 말이다.


 통지표에는 공개되지 않는 수많은 초등교사의 머리를 쥐어짠 문장이 나이스에 기록되어 있음을 부모님들은 아실까?

형식만 번지르르한 나이스(neis)는 절대로 나이스(nice)하지 않다.      


옛날 성적표가 그립다.

교과는 수, 우, 미, 양, 가에 동그라미를 찍어 주고,  명쾌한 한 문장으로 요약해 준 선생님의 문장이.


수업 태도가 매우 좋고 성실하나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남편의 고3때 담임선생님의 가정통신문)


아이가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데 문제가 있으니 살펴보시라는 남편 고2 담임 선생님의 예리한 문장이 한없이 그립다.      


     

‘개, 돼지 같은 선생님’이 되지 않기 위해 나부터 교감, 교장 선생님께 ‘나이스 기록이 학교현장에 과부하가 걸리는 현실 이대로 좋은지?’ 제언을 하고 싶다.      

“교과목은 2~3개 문장으로, 창체(자동봉진)은 아이들 마다 특기를 관찰해서 1문장으로 줄여야 한다고.”     

옆에서 중학교교사인 남편은 중학교는 상위 20%만 교과 선생님들이 기록해준다고 말한다. ‘아~ 더 짜증난다. 초등은 왜 이런거냐구?’     

 우리 집에서 큰 소리로 나는 허공에 소리쳐 본다.

‘상급학교로 갈수록 더 자세히 써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아니다. 다 필요없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통지표에는 교과 종합, 행동특성을 요약한 5문장 내외의 명쾌한 문장만 기록해야 한다.

‘각 교과별 15개 학기말 의견란을 나이스에서 없애고 행동 발달과 교과 종합의견만 남겨라!’라고 외쳐본다.    



       

** 나이스 학부모 서비스-아이의 학교생활 기록부, 성적표, 식단표, 가정통신문, 건강기록부, 방과 후 학교 등 학교생활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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