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길리 외국인 EP.01
EP.01
나의 첫 직장은 무려 제주도였다.
설렘은 잠시. 연고도 없는 곳에서의 생활은 뻔했고, 밤 산책이 나의 유일한 일정이었다.
그날도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나처럼 멀리 떠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운 거 쌓아온 거 아무 상관없이 캐나다의 일식집에서 팁을 받는 이야기가 나를 설득하진 않았다.
다만 그 팁이 좀 많았다.
내게 그 정도면 충분한 핑계였다.
영어는 진짜 거들떠도 안 보던 나지만, 아직 AI도 없던 시절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캐나다의 문을 두드렸다. 겸사겸사 영국도 넣어봤다.
겸사겸사.
그래, 모든 문제는 이 겸사겸사에서 시작되었다.
분명 랜덤 추첨이라고 했는데, 하반기는 자리도 없어서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했는데.
돼버렸다.
친구가 기다리는 캐나다와 평생 좋아해온 리버풀이 있는 영국. 고민이 꽤 길었던 기억이 난다.
여기는 영주권이 금방 나오는데, 근데 랜덤이 된 거면 운명 아냐?
둘다 영어권 이고,
내 직종이 그래도 유럽에 좀 더 많지 않나?
아니 그래도 리버풀 팬인데 살아는 봐야 되지 않나?
캐나다 워홀은 많이 하잖아, 영국은 좀 유니크하고.
기억나는 대로 적다 보니 고민이 아니라 합리화를 했던 것 같기는 하다. 아무튼 리버풀이다.
결정을 하고 나니 할 일이 쌓여있었다.
사직서를 내고, 미리 숙소와 비행기를 예약하고, 보험비를 내고 이것저것 내고. 생각보다 비쌌다.
모은 돈을 다 넣고 아버지가 준 차도 팔아 초기 비용을 마련했다.
그렇게 런던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너무 오래 탔다.
정신이 없었다.
공항은 생각보다 작았고,
트래블월렛 카드는 기차표 자판기에서 안 됐다.
정신없이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가 캐리어 비밀번호가 바뀌어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방은 열린 상태였다. 자물쇠를 사서 달았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었지만, 계획도 없는데 예상된 지출이 뭐가 있겠나.
기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딱 가격 기대만치였다. 짐 맡기는 곳이 해리포터가 살 만한 지하 다락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영국 게스트하우스는 대부분 이렇다.)
이번엔 잘 잠긴 캐리어를 맡기고 비싼 짐만 챙겨서 나왔다.
이제 신분증을 찾으러 가야 했다.
여권 들고다니기는 부담스러우니 BRP라는 신분증을 우체국에서 받아야 한다.
문제는 그 우체국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내가 신청하긴 했지. 그런데 이름만 보고 어디 있는 우체국인지 알고 신청을 하겠어.
대충 들어본 기억이 있는, 브로드웨이어쩌고 였던걸로 기억한다.
숙소 와이파이로 지도를 검색해보고 길을 나섰다.
지도를 캡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렴풋이 느꼈다.
아, 방향을 잘못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