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절벽 끝, 혼자 선 자의 뒷모습(1)

슈베르트가 남긴 마지막 편지, 그리고 알반 베르크 콰르텟의 전설

by 클래식덕후문쌤

Schubert String Quintet in C Major, Op. 163, D. 956: I. Allegro ma non troppo

https://www.youtube.com/watch?v=UMtEwl7AcqI

- Heinrich Schiff, Alban Berg Quartet

- 1982.12.18-22, 스위스 제온, 복음주의 교회



Episode.1


가끔은 음악이 사람의 말보다 더 구체적인 유언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19세기 빈의 거리를 걷던 프란츠 슈베르트가 바로 그런 유언을 남긴 사람입니다.


키가 작고 뚱뚱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버섯(Schwammerl)’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 사내에게


세상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가난한 보조 교사의 아들로,


혹은 친구들의 다락방을 전전하는 식객으로 살았지만 그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오직 작곡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 말이 허세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그는 서른한 살이라는 짧은 생 동안 무려 1,000곡이 넘는 작품을 쏟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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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2


이야기는 1828년의 늦가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슈베르트의 나이는 고작 서른하나.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매독과 장티푸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방문 앞까지 와서 노크를 하던 그 시기,


그는 출판업자 프로스트에게 절박한 편지 한 통을 보냅니다.


“최근에 현악 5중주 한 곡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을 아주 싼 가격에라도 당신에게 넘기고 싶습니다. 제발 빨리 답을 주십시오.”


하지만 출판사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며 거절당한 이 악보는


결국 슈베르트가 죽고 나서도 20년이 넘도록 먼지 속에 파묻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장례식 음악이 될 줄도 모르고 써 내려갔던 최후의 걸작,


'현악 5중주 C장조(D. 956)'의 슬픈 탄생 비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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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3


이 곡이 여타의 실내악과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독특한 악기 편성에 있습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선배들은


보통의 현악 4중주에 중음역을 담당하는 비올라를 한 대 더 추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그는 비올라가 아닌, 가장 낮은 소리를 내는 ‘첼로’를 한 대 더 추가했습니다.


이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한 대의 첼로가 바닥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동안,


또 다른 첼로는 테너 가수처럼 높은 음역으로 올라가 노래를 부릅니다.


이 구조 덕분에 곡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의 소리를 냅니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대지의 진동처럼,


죽음을 앞둔 사람만이 감지할 수 있는 무게감이 이 저음 속에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