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절벽 끝, 혼자 선 자의 뒷모습(2)

슈베르트가 남긴 마지막 편지, 그리고 알반 베르크 콰르텟의 전설

by 클래식덕후문쌤

Schubert String Quintet in C Major, Op. 163, D. 956: II. Adagio

https://www.youtube.com/watch?v=5Vejo_Dol-4



Episode.4


이 곡의 명반을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습니다.


20세기 후반, ‘현악 사중주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알반 베르크 콰르텟(Alban Berg Quartett)입니다.


1970년 빈에서 결성된 이들은 말 그대로 ‘빈의 소리’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첼리스트 하인리히 쉬프를 객원 멤버로 초빙해 남긴


1982년의 EMI 녹음은 전설로 통합니다.


당시 전성기의 정점에 있던 그들은 면도날처럼 예리한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코 차갑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활 끝에는 빈 특유의 낭만과 세기말적인 우울함이 배어 있었으니까요.


그들은 악보의 쉼표 하나, 비브라토의 떨림 하나까지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완벽하게 통제하며 슈베르트의 슬픔을 가장 고급스럽게 직조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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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5


곡이 시작되는 1악장, C장조의 화음이 울리지만 곧바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알반 베르크 콰르텟은 이 미묘한 조바꿈의 순간을 기가 막히게 포착합니다.


특히 두 대의 첼로가 주고받는 제2주제는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나누는 마지막 대화처럼,


혹은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에게 말을 걸듯 부드럽고 애틋합니다.


베토벤이 운명과 싸웠다면, 슈베르트는 그저 운명을 바라봅니다.



500px-Caspar_David_Friedrich_-_Wanderer_above_the_sea_of_fog.jpg?20110615184255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Episode.6


그리고 문제의 2악장 아다지오(Adagio)가 시작됩니다.


저는 이 악장을 들을 때마다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대표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떠올립니다.


가파른 바위산 절벽 끝에 서서, 발아래 펼쳐진 자욱한 안개 바다를 내려다보는 한 남자의 그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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