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세상엔 고통이 없다

그들은 모르는 게 아니다

by 니노의성

“나라가 무너져도 결혼은 해야지.”
한때 유행처럼 떠돌던 이 말이 이제는 그냥 웃긴 농담조차 되지 못한다.
결혼은커녕, 지금은 나라가 무너져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무너진 나라의 가장자리엔 항상 약자들이 있다.
신혼부부, 청년, 세입자.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점점 무표정해져 간다.

오늘 부동산에 다녀왔다.
앉아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표정이 말랐고, 눈빛이 꺼져 있었다.

그 사람은 전세사기 피해자였다.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표정.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 사람의 표정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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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문제를 알고 있다.
전세사기가 단지 몇몇 나쁜 임대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만든 구조적 방치의 산물이라는 걸.
청년의 절박함을 담보로 집을 사고, 또 사고,
그 위에 돈을 얹고, 권리를 얹고,
그렇게 만들어진 허상의 집 한 채가 결국은 누군가의 전 재산을 집어삼킨다.

그런데도 국가는 "몰랐다"라고 말한다.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도 안다.
그들은 모르는 게 아니다.

하물며 게임이나 하고 앉아 있는 나조차도 안다.
전세금이 어떤 구조로 사라지고,
보증보험이 왜 무용지물처럼 작동하고,
세입자가 왜 늘 희생되는지도 안다.

그런데 수많은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왜 모른다고 말하는 걸까?

나보다 더 배우고 더 경험하신 분들이 과연 이 사실을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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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그들도 안다.
다만 그들이 사는 세상엔 고통이 없다.
그들은 절대 전세사기를 당하지 않는다.
그들의 자녀는 전세금 날리고 집에서 쫓겨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너무 안정돼 있어서,
‘절망’이라는 단어를 삶에 써본 적이 없다.

신혼부부 주거 정책은 사라지다시피 했다.
혼인율이 역대 최저라고 아우성치면서도,
정작 결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살 집 하나 마련해주지 않는다.

국가는 출산율이 낮다고 한탄한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 낳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인 지원도, 보장도, 희망도 주지 않는다.

어디까지 포기해야 이 나라에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걸까?

정치인들은 알고 있다.
전세사기를 막을 수 있는 제도는 무엇인지,
청년 주거를 안정시킬 방법은 어떤 것인지. 또 아이를 낳게 하기 위한 근본적인 지원책이 뭔지.
하물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SNS 댓글로 대안을 말하고 있는데,
수십 년을 정치를 해온 그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르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왜?
표가 안 되니까.
자신들의 미래가 아니니까.
그 고통은 '나의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건
결국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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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럴 거면, 국가가 존재할 이유 자체가 있는가?
약자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
지킬 생각조차 없는 정치,
살아남은 자만 축하받고 축하하는 사회.

우리는 그런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국가를 세웠다.

만약 이게 우리가 남길 미래라면,

우리는 왜 이 땅에서 버티고 있는 걸까?

이미 그들이 지켜야 할 국가는, 무너진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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