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라지지 않는 최초의 세대

기억되지 않았던 조상, 기억되는 나

by 니노의성

나는 내 선조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어릴 땐 가끔 궁금했다.
나와 닮은 사람이 몇백 년 전에도 있었을까?
그 사람은 어떤 얼굴로 웃고, 어떤 목소리로 말했을까?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했을까?

하지만 나는 그걸 절대 알 수 없다.
그들의 얼굴도, 말투도, 삶의 흔적도
모두 아무런 기록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저 ‘조상’이라는 말로만 남은 존재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기록되는 최초의 평범한 세대다.
한때는 왕이나 위인만이 이름과 얼굴을 남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와 얼굴을 남긴다.

셀카, 음성 메모, 문자, 브이로그, 인스타그램.
우리는 매일 우리의 삶을 조각처럼 남기고 있다.
의식하든 말든 우리는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내 조상을 모르지만,
내 후손은 나를 알 수 있다.

내 잘생긴 얼굴, 바보 같은 말투,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울던 밤.
내가 아끼며 살았던 집, 그 안에 놓인 작은 사물들까지도.

그들은 내가 남긴 수많은 조각들을 통해,
생생하게 나의 삶의 조각들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그건 조금 무섭기도 하고,
그들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그들에게,
어떤 나를 남기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남겨야 할까?

나는 매일같이 사진을 찍고,
어딘가에 말을 남기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그 모든 조각들이
정말 '나'를 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예쁘게만 꾸민 얼굴,

의도적으로 고른 단어,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 행동들.
그런 순간들만 남는다면,
그건 진짜 나일까?

그들은 나를 기억하겠지만,
그게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니라면
그건 결국 또 다른 허상이 아닐까.

나는 오히려,
그런 허상을 걷어낸 나를 남기고 싶다.

아기마냥 즐거워하며
나이 서른 먹고 놀이기구를 타는 내 동영상.

실수로 다른 이에게 전화 걸어버린 내 통화내역.
시험공부로 초췌해진 모습의 내 사진.

지극히 인간적인 이런 나의 모습들을
후손들은 부끄러워할까?

아니,
오히려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보며
"내 조상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구나"
하며 위안을 받을지도 모른다.

똑같이 유치하고,
똑같이 걱정하고,
똑같이 울고는 사람

그래서 나는 진심을 남기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어리석은 말실수, 감정에 휘청인 하루,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기록.
그 모든 것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이룰 것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나의 생각도 내 후손들은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나란 사람에 대해 더 느끼고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기록되는 세대'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될 수 있는 세대'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조상이 된다.

그때,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 나는,
예전에 '물어보살'에 나왔던 사람이다.
나는 한 아름다운 조지아 여자를 사랑했고,
결혼해 지금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될 수 없다고 말한 사랑이었다.
우린 그들의 조롱과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나는,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다.

누군가를 다치게 한 적도 상처를 준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조건 없는 사랑을 했을 뿐이다.

오히려 나는 후손들이 나의 그런 사랑을 영원히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들의 시작점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눈부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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