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주 전만 해도 우리집에는 귤이 단 한 개도 없었다.
그 사이에 아버지 아는 분이 작은 상자 하나, 어머니 아는 분이 조금 큰 상자 하나, 또 언니 아는 분이 한 봉지를 주셨다 한다. 사람도 본성이란 것이 있듯이 원래 당도 높은 귤 종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귤이란 신선도가 생명이다. 갓 땄을 때가 가장 맛있는 법이다. 세 종류의 귤들, 신선도는 아직까지 큰 차이는 없지만 하루하루, 한 주씩 지날수록 이들은 점점 맛이 떨어질 것이다. 본래 당도가 가장 높은 녀석들을 찾아 바로 지금 먹어야 한다. 지금이 올 들어 내가 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귤을 먹을 다시 못 올 순간이다.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우선은 가장 새롭게 들어온 언니의 봉지에서, 겉모양이 가장 탐스러운 녀석 하나를 고른다. 그리고 이 녀석의 출처를 잘 기억해 둔다. 하지만, 겉모습으로만 귤을 고르는 것은 너무 어렵다. 큰 것, 작은 것, 윤기가 흐르는 것, 아닌 것, 끝이 뾰족한 것, 매끈한 것, 이렇게 다양한 모습들인데 그 중 하나만 고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이때 확률이란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하나만 먹어보고 그 안에 담긴 수십 개의 다른 귤들을 한꺼번에 평가내릴 수는 없다. 녀석과 한 무리 중, 둘, 셋 쯤 더 집어온다. 신선한 과즙이 마음에 들지만, 고개를 끄덕일 맛은 아니다. 첫 번째 먹은 귤이 충분히 달았다면 나는 만족했을까? 나는 다시 두 번째 아버지의 작은 상자에서 귤을 골라온다. 귤을 반으로 가르고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처음과 비교한다면 신선도는 떨어지지만, 조금 더 달콤한 듯 하다. 하지만, 그 차이는 미미하여 우열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 사이에 내 뱃속은 충분히 배가 불렀지만 나의 눈과 손은 자연스럽게 다시 귤을 까고 있다. 사람은 감정이 앞서면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귤에 대한 나의 의지는 거의 탐욕에 가깝다. 어느 새 통틀어서 우리 집에 있는 수십 개의 귤 중, 가장 맛있는 단 하나의 귤이라도 찾겠다는 태세다. 마지막 어머니의 큰 상자에서 꺼내 온 녀석까지 맛보고 나서야 먹는 일을 멈춘다. 그 중, 가장 맛있었던 귤은 있었지만, 수북이 쌓인 귤껍질 더미에서 녀석의 출처가 분명히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맛있는 귤 상자를 찾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무리 속에서 가장 달콤한 녀석이 있지는 않을까라고 묻고 있었다. 처음 베어 물었을 때의 그 감동이 그 귤의 마지막 알을 먹을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느냐 한다면 또 그렇지도 않다. 그 달콤함이란 것 또한 금세 잊혀져 버리기도 한다. 가졌다면 그것은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은 늘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나 보다.
그렇다면, 사람이 가장 욕심내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내가 지금 가장 욕심내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