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휴대전화기를 부수고 나는 다시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안 처음 그날처럼 남편을 향해 수시로 분노를 표출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지도 않고 울다가 화내다를 반복했다. 남편은 부서진 전화기를 고치는 비용이 더 들었는지 새로운 휴대전화를 사들고 왔다. 내 눈앞에서 다시 커플앱을 깔아보였지만 난 그런 게 무슨 소용 있냐며 화를 내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다시 앱을 깔자고 하고 싶었는데 알아서 까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안도하였다.
앞에 글에서 밝혔듯이 내가 끊어내야 할 것은 의심과 염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불속에서 남편에 대한 염탐이 시작되었다. 지난번 그 일이 있은 후로 내가 염탐을 하게 된 사람은 한 명에서 둘로 늘어났다. 바로 남편과 상간녀였다. 나는 수시로 아니, 눈을 뜨고 있는 순간에는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커플앱을 켜서 남편의 위치와 누구와 통화를 하였는지, 누구와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를 수시로 염탐했다. 나아가 상간녀의 메시지 프로필과 사진, sns 등을 수시로 체크했다.
수년 전, 이미 끝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둘이 이 일을 계기로 다시 만나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 무엇도 믿을 수가 없었다. 상간녀 손해배상 청구소송 이후 줄곧 상간녀의 프로필은 빈 사진과 아무 글도 없었다. 그렇게 몇 달, 1년 정도 지나니 이제 그녀도 슬슬 사람답게(?) 살고 싶었는지 사진과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의 염탐도 더욱 심해졌다. 어떤 날은 남편보다 상간녀를 염탐하는 일이 더 잦아졌다.
어떤 날은 일진이 사나웠는지 불행한 듯한 글이 올라오면 나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래. 신이 있다면 이 여자가 행복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야. 패배자는 내가 아니라 너여야만 해.’
어떤 날은 기분 좋은 듯한 글과 사진이 올라오면 나는 불행해졌다.
‘나는 아직도 너란 여자 때문에 이렇게 불행하게 살고 있는데, 친구들을 만나 디저트 카페를 간다고? 네가 인간이면 숨 죽여 살아도 모자랄 판에. 이 친구들은 알까? 네가 유부남 꼬셔서 만난 상간녀인지.’
분노하며 시간을 보냈다. 염탐을 하면서 그녀가 기분 좋은 날은 일주일에 몇일인지, 기분 나쁜 날은 몇일인지를 세려 보고 좋은 날보다 안 좋은 일들이 많은 것을 보고 기뻐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가 며칠, 몇 시에 어디서 누굴 만났는지가 파악되면 그날에 남편의 행적을 쫓아 둘이 만났을 가능성을 가늠해보기까지 했다. 당연히 만날 가능성은 ‘제로’였다. 지리적으로도 그 둘은 서울과 파주.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는 수시로 상간녀를 염탐하다가 이윽고 그녀의 주변 인물들까지 염탐이 이어져갔다. 상간녀의 남자 친구, 절친, 직장상사 들의 프로필과 sns 등을 수시로 체크하며 그녀의 동선을 파악하기에 이르렀고 폐인 아닌 폐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와 주변 인물들을 염탐하면서 상간녀가 다시 나의 남편을 만날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히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멈출 줄 모르는 나의 염탐이었다.
나쁜 행동은 쉽게 습관이 되어 버린다. 아닌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왔을 때도 나는 염탐을 끊지 못하였다. 물론 처음보다 빈도수는 줄어들었다. 매일 보던 것을 의도적으로 줄이려 노력하였다. 일주일에 서너 번,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두 번, 한 달에 한번. 그렇게 말이다. 그러다 거의 일 년 넘게 보지 않게 되었는데… 그날은 정말 어쩐지 갑자기 그녀를 염탐하고 싶어진 것이다. 나는 차단까지 해 놓았던 그녀의 프로필을 차단 해지하고 친구로 추가하여 프로필을 보았다.
여자의 촉은 이래서 무서운 것일까. 거의 일 년 넘어서 들어가 본 그녀의 프로필에 웨딩사진과 함께 이렇게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0000년 00월 00일 00시. 000홀. 결혼합니다.’
‘뭐? 결혼을 한다고? 그때 그 남자 친구랑 결국 결혼을 하는구나’, ‘드디어 복수의 때가 왔다. 내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면서 이날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판결문을 가지고 결혼식장을 찾아가서 예비 시부모님과 친척,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지’, ‘남의 결혼생활은 이렇게 망쳐놓고선 뻔뻔하게 결혼을 한다고? 자신은 행복하게 살겠다고?’ 분노하다가도 ‘이미 수년 전 일이고, 다 끝난 일이잖아. 남자 친구도 이 사실을 알고서도 결혼하겠다는데 내가 뭐한다고 그 사이를 껴들어. 이제 와서 다시’, ‘행복하게 살기는 빌어주기는 싫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래, 너도 첫 아이 임신했을 때 남편이 바람이나 펴라!’ 하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일 년 넘게 안 보고도 잘 살았는데 내가 왜 다시 보았을까. 결혼을 할 거란 사실을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늘 이 순간만을 기다려오지 않았던가, 결혼 전 미리 알게 된 것은 이것은 하늘이 내게 복수하라고 준 기회이다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마음이 다시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 내리락을 하면서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그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프로필을 차단하였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분명 아침에 눈을 떴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의 결혼식장에 가 있어야 했다. (실제로 판결문을 출력해놓았다-) 하지만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엄마, 오늘 쉬는 날이야?” 하며 그 작은 팔로 나의 목을 감싸고 까르르 웃는 둘째 녀석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 곁에 있기를 결심했다. 한동안은 가서 결혼식장을 엎어놓지 못한 게 후회가 되기도 하였지만, 그때 정말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안 하려 한다.
내가 스스로 나를 그 지옥불로 밀어 넣을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그 여자로 인해 나의 삶이 흔들리는 것이 싫었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이니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나는 나의 행복을 최우선 순위로 하기로 마음먹었고 복수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기분이 좋아질지는 몰라도, 결국 나의 행복을 위한 길이 아님을 알았다. 이 모든 것이 단번에 변하지 않는다. 나 역시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경험했기에…….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은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라도 나를 바쁘게 만들고 다른 것에 관심을 돌려서라도 끊어내야 한다. 그래야 온전한 내 삶을 살 수가 있다.
어느 날인가 난 알게 되었다. 내 하루의 시간 중 많은 시간을 두 사람을 염탐하는데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한 번 더 좌절했다. 과거의 일로 아직까지도 휘둘리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의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오늘, 그리고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는 나는 나의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위해 쓰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남편과 나의 폰에 깔아 두었던 커플앱을 지우고 상간녀를 차단하였다.
의심과 염탐, 그것은 내가 온전히 나로 서기 위해서 반드시 끊어내야 할 나쁜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