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멤피스> 퇴근길 리뷰
만약 뮤지컬 <멤피스>가 한국에서 10년 전에 올라왔으면 어땠을까요?
제 생각엔.. 쫄딱 망했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이 작품이 2023년 대한민국에서 가치 있는 이유는 우리의 현재가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칼날들로 서로를 겨누고, 편가르고, 배척하는 폭력적인 순간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안타깝죠? 1950년대 멤피스가 겉으로 보이는 피부색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시대였다면, 개개인의 가치 판단의 기준이 무한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모두가 서로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품 속 인물들이 그렇듯, 모든 변화는 자신이 누리는 자유가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선 자유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서 시작하는데요.
휴이라는 인물은 백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안락에서 벗어나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인물입니다. 허울 좋은 울타리 바깥을 떠도는 부랑자이자 영혼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인물이죠.
실제 1950년 대 멤피스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남부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흑인들이 정착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백인과 흑인은 같은 공간을 사용하지도, 서로의 일상을 공유할 수 없었지만 색도, 무게도, 옳고 그름도 없는 '문화'는 멤피스라는 도시 속에서 부지런히 뒤섞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흑인들의 블루스와 백인들의 컨추리가 절묘하게 조화되어 새롭게 탄생한 장르이자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시대의 아이콘을 탄생시킨 로큰롤의 기원이 '멤피스'라는 점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다.
펠리샤와 휴이의 만남 사이에 그들의 피부색이 중요하지 않듯, 휴이와 펠리샤는 영혼을 긁어대는 무형무색의 음악을 끝없이 실어 나르고(그리고 넘버가 진짜 영혼을 긁어줍니다!) 라디오 부스의 두터운 유리 너머로 서로의 언어는 오고 갈 수 없지만 음악을 품은 부드러운 전파는 두터운 유리벽을 지나 누군가의 영혼 깊숙이 새겨지기도 하죠.
변화의 순간들을 상징하는 장면들이 정말 많은 작품이었지만 유독 백인과 흑인이 함께 하나의 리듬 속에서 줄넘기를 하는 장면이 오랫동안 가슴 한켠에 남아있습니다. 백인과 흑인 아이들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서 서로의 심장 박동을 느끼고,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들이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는 별 다를 것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인데요. 그 순간만큼은 그들을 가로막은 두터운 유리벽이 잠시나마 사라지고 서로의 손을 맞잡는 환상의 순간처럼 다가왔습니다.
이 작품은 흑백을 떠나(물론 포함해서) 갈등이 범람하는 지금, 보이지 않는 칼날에 위협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은 돌멩이 하나를 쥐여줍니다(돌멩이는 극 중 DJ 휴이가 애청자들을 부르는 애칭입니다.)
그 돌멩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돌멩이가 되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돌멩이가 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작품은 어떤 선택도 틀린 선택은 없다고, 어떤 선택도 존중받아야 할 ‘나의 그리고 너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치열하게 갈라져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서로의 심장 박동을 공유하는 음악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뮤지컬 <멤피스>가 건네는 음악과 내 심장 박동이 동기화되는 순간을 통해 우리 모두는 같은 영혼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뮤지컬 <멤피스> 세 줄 요약
� 영혼을 긁어대는 음악과 춤(논-레플리카)
� 음악 미침, 앙상블 미침 (어떤 캐스트로 봐도 후회 없을 듯)
� 휴이는 영업왕이고 맥주는 건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