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상징, 빅벤과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Ⅰ. 도버 해협을 건너며 ―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들어가는 길은 공중이 아니라 지하에 있다. 유로스타는 영국 해협 가운데에서도 가장 폭이 좁은 도버 해협 아래를 통과한다. 해저터널을 지나는 동안 창밖에는 풍경이 없다. 국경을 넘는 순간은 시각적으로 표지되지 않고, 이동은 조용히 지속된다. 이 시간은 도착보다 통과에 가깝다.
열차 안에서 제공되는 간단한 조식은 이 이동의 성격을 드러낸다. 식사는 정착의 행위가 아니라, 이동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일상이다. 영국은 환영의 장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경계의 통과 속에서 시작된다.
파리 북역(Gare du Nord):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도버해협을 해저터널아래로 기차(유로스타) 타고 갈 것이다.
-유로스타(고속열차)안에서 제공한 간단한 조식을 먹을 것이다.-
Ⅱ. 런던의 공간 배치 ― 권력·전통·시간
런던에 도착해 마주하는 핵심 공간은 세 요소가 밀집된 장소다. Palace of Westminster는 입법 권력의 중심이며, Westminster Abbey는 왕권과 종교적 전통의 무대다. 그 사이에 Big Ben이 서 있다.
이 배치는 우연이 아니다. 정치적 결정, 역사적 의례, 공적 시간이 한 장소에 병치되며, 런던은 국가가 작동하는 핵심 원리를 공간으로 드러낸다. 빅벤은 이 공간에서 풍경이 아니라 기준으로 기능한다.
영국 런던의 웨스터민스터 사원
(국회의사당 근처에 있는 보수중인 빅벤)
(템즈강에 바라본 런던성,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국회의사당, 빅벤은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국회의사당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그리고 빅벤이 모여 있는 이 일대는 영국에서 ‘웨스트민스터’라 불리며, 정치와 의례, 공적 시간이 한 공간에 결집된 장소다.)
Ⅲ. 빅벤의 성립 ― 근대 국가와 공적 시간
Big Ben은 19세기 중반 웨스트민스터 궁전 재건 과정에서 탄생한 영국의 대표적 시계탑으로, 산업화와 행정 국가의 확장 속에서 요구된 공적 시간 제도를 상징한다. 본래 ‘빅벤’은 시계탑 내부의 대형 종을 가리키는 이름이었으나, 점차 시계와 탑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이 되었다. 이 종소리는 개인의 시계보다 앞서는 국가의 표준 시간을 런던 전역에 알렸고, 빅벤은 시간을 측정하는 건축물을 넘어 국가가 시간을 조직하고 배포하는 장치로 자리 잡았다.
내가 런던을 찾았을 때 Big Ben은 보수 공사 중이었다. 시계탑은 철제 구조물에 둘러싸여 있었고, 오랜 시간을 견뎌온 노장처럼 쇠철근을 주렁주렁 단 모습이었다. 도시의 시간을 가장 정확히 알리던 상징은 그 순간만큼은 침묵 속에 묶여 있었다. 이 장면은 빅벤이 단순히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닳고 보수되어야 하는 역사적 구조물임을 분명히 드러내 보였다. 절대적 기준처럼 보이던 시간이 실제로는 관리되고 보수되는 제도적 산물임을 환기한다. 종이 울리지 않는 시간은 의미를 유예한 채 존재한다.
이 경험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서 빅벤이 상징하는 시간의 성격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소설 속에서 빅벤은 변함없이 울리는 객관적 시간의 표상이지만, 현실의 빅벤은 수리와 중단을 필요로 한다. 영원히 동일한 리듬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던 공적 시간 역시, 실제로는 유지와 관리, 중단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는 근대 도시의 시간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손에 의해 지탱되고 조정되는 제도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보수 중인 빅벤의 모습은 철학자 폴 리쾨르가 말한 ‘서사로 통합되지 않은 시간’의 감각과도 맞닿아 있다. 종이 울리지 않는 시간, 가려진 시계는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채 존재한다. 그 앞에서 시간은 더 이상 질서나 규율로 작동하지 않고, 잠시 멈춘 구조로 남는다. 이 침묵의 빅벤은 『댈러웨이 부인』이 드러내는 근대적 시간의 긴장, 즉 개인의 삶을 지배하면서도 스스로는 결코 완전하지 않은 시간의 현실을 조용히 증언한다.
빅벤은 19세기 중반, 국회의사당 재건과 함께 완성되었다. 산업화와 행정국가의 확장은 정확하고 공유 가능한 시간을 요구했다. 시계탑은 장식이 아니라 제도였다. 하루의 분할을 도시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장치로서, 시간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공의 기준이 된다.
‘빅벤’이라는 명칭이 대형 종에서 시계와 시계탑 전체로 확장된 과정은, 이 장치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국가적 상징으로 수용되었음을 보여준다.
Ⅳ. 『댈러웨이 부인』 ― 종소리와 의식의 중단
버지니아 울프의 Mrs Dalloway에서 반복적으로 울리는 Big Ben의 종소리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다. 이 소리는 인물들의 감정이나 기억과 무관하게 정해진 간격으로 울리며, 런던이라는 도시 전체에 동일한 시간의 리듬을 부여한다. 소설 속에서 빅벤의 소리는 개인의 내면에서 생성되는 시간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공적·객관적 시간의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종소리는 인물들의 의식 흐름을 반복적으로 중단시킨다. 클라리사 댈러웨이와 다른 인물들은 기억과 감정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다가도, 빅벤이 울리는 순간 현재로 되돌아온다.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는 내면적 시간은 이 소리에 의해 분절되고 재배치된다. 따라서 빅벤은 시간의 흐름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매개가 아니라, 의식의 연속성을 끊는 외부의 개입으로 작동한다.
Paul Ricœur가 이 소설을 중요하게 분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리쾨르는 『댈러웨이 부인』에서 시간이 아직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지 못한 상태를 본다. 빅벤의 소리는 개인의 삶을 의미 있는 서사로 엮어 주지 않고, 오히려 의미화되지 않은 시간의 압력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소설에서 빅벤이 상징하는 것은 시간을 이해하거나 극복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근대 도시 속에서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제도적이고 분절된 시간의 현실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서 빅벤의 종소리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종은 배경음이 아니라 의식의 흐름을 중단시키는 외부의 개입이다. 인물들은 기억과 감정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다가도, 종이 울리는 순간 현재로 호출된다.
이 소설의 시간은 연속적으로 서사화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는 종소리에 의해 분절되고 재배치된다. Paul Ricœur가 지적하듯, 이 작품은 시간이 아직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지 못한 상태를 보여준다. 빅벤은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가 아니라, 의미 이전의 시간 압력을 드러낸다.
Ⅴ. 『80일간의 세계 일주』 ― 기준시와 시간의 정복
쥘 베른의 Around the World in Eighty Days(80일간의 세계 일주)에서 빅벤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빅벤은 런던의 기준시이자 세계를 측정하는 절대 좌표다. 여행의 성패는 경험의 밀도가 아니라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에 의해 결정된다.
이 작품에서 시간은 계산 가능하고 정복 가능한 대상이다. 세계는 체계화되고, 시간은 관리된다. 『댈러웨이 부인』이 시간에 포획된 인간을 보여준다면,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시간을 포획하려는 인간의 확신을 제시한다.
Ⅵ.소결 ― 빅벤 아래에서의 사유
빅벤은 하나의 의미로 수렴하지 않는다. 『댈러웨이 부인』에서 그것은 개인의 의식을 가르는 압력이며, 『80일간의 세계 일주』에서 그것은 세계를 재는 기준이다. 같은 시계탑은 압력으로서의 시간과 기준으로서의 시간을 동시에 드러낸다.
빅벤 아래에서의 사유는 근대가 시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인간이 어떤 위치에 놓였는지를 묻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