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책 (13)

영국의 런던 성과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by 향지소피아


"순한 양이 인간을 잡아 먹는다"

-『유토피아』중에서-



템즈강 유람선 위에서 바라본 런던은 걷는 도시와는 다른 질서를 드러낸다. 강 위에서는 거리의 세부보다 도시의 구조가 먼저 보인다. 남쪽 강변에는 거대한 관람차인 '런던 아이'가 천천히 회전하고, 물가에는 한때 제국의 이동을 상징하던 왕실의 배들이 정박해 있다. 움직이지 않는 배와 회전하는 관람차는, 이 도시가 더 이상 확장하지 않는 권력과 그것을 조망하는 현재의 시선을 동시에 보여준다.



시선을 동쪽으로 옮기면 유리와 철골로 이루어진 금융 빌딩들이 강변을 따라 솟아 있다. 이곳에서는 성벽도, 해자도 필요하지 않다. 투명한 외관과 수직적 상승은 자본의 흐름이 더 이상 방어가 아니라 가시성을 통해 작동함을 말해준다. 템즈강은 이 지점에서 경계가 아니라 금융과 정보가 오가는 도시의 동맥으로 기능한다.



유람선이 다시 서쪽으로 향하면 '웨스트민스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국회의사당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강을 향해 나란히 서 있으며, 정치와 의례, 종교 권력이 오래전부터 이 강을 무대로 자신을 드러내 왔음을 보여준다. 강 위에서 바라본 웨스트민스터는 접근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완결된 권력의 풍경처럼 보인다.




템즈강은 이렇게 서로 다른 시대의 구조물들을 하나의 흐름 안에 병치한다. 관람차와 왕실의 배, 금융 빌딩과 중세의 사원과 의회가 같은 강변에 서 있다. 강 위에서의 시선은 런던이 단절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 위에 형성된 도시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템즈강을 따라 흘러온 시선은 결국 하나의 장소에 닿는다. 금융 빌딩과 관람차, 국회의사당과 사원이 병치된 강변의 풍경이 끝나는 지점에서, 강 북안에 자리한 '런던 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성은 더 이상 확장하지 않는 권력이나 조망의 장치가 아니라, 권력이 인간을 직접 가두고 제거하던 공간이다. 강 위에서 보았던 런던의 구조가 제도와 상징의 배열이었다면, 런던 성은 그 제도가 개인의 삶에 실제로 작동하던 지점이다.


이 성은 토머스 모어가 지나간 장소이기도 하다.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 치하에서 최고위 관료로 활동하며 국가의 질서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인물이었지만, 국왕 수장령을 거부한 이유로 이 성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구상했던 사회가 현실의 권력 안에서는 결코 허용될 수 없음을 몸으로 증명해야 했다.


모어가 남긴 『유토피아』는 흔히 ‘어디에도 없는 이상향’으로 읽히지만, 실제로는 당대 영국을 정밀하게 반영한 비판적 텍스트다. 사유재산, 형벌, 권력과 종교의 결합에 대한 문제 제기는 모두 런던 성과 같은 공간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유토피아』는 성 바깥에서 상상되었고, 그 상상은 결국 성 안에서 봉쇄되었다. 템즈강 위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그렇게 이상과 권력이 충돌하는 가장 구체적인 장소로 우리를 이끈다.

“순한 양이 인간을 잡아먹는다”

이 말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이다.

양을 기르기 위해 농지를 울타리로 둘러치는 인클로저 때문에
농민들이 땅을 잃고 떠돌이가 되고, 그 결과 범죄자가 된다는 현실 비판을 한 것이다. 즉, 순하고 이익만을 상징하던 ‘양’이 사회 구조를 통해 인간을 파괴하는 존재로 변했다는 말이다. 모어는 범죄자를 비난하지 않고,

범죄를 만들어내는 경제 구조와 권력의 탐욕을 문제 삼았다.



런던 성을 거쳐 간 인물 가운데 앤 볼린은 토머스 모어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그러나 같은 방식으로 이 성에 도달했다.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였던 그녀는 정치적 필요 속에서 반역 혐의를 뒤집어쓰고 수감되었고, 결국 성 안에서 처형되었다. 왕비였던 신분은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이 성에서 권력은 신분을 가리지 않았고, 침묵을 강요하는 방식은 동일했다.


토마스 모어와 앤 볼린을 나란히 놓으면, 런던 성의 성격이 또렷해진다. 한 사람은 양심과 신념을 이유로, 다른 한 사람은 정치의 계산 속에서 제거되었다. 이유는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런던 성은 설득이 실패했을 때 작동하는 권력의 마지막 장치였고, 개인의 선택은 이곳에서 생의 종결로 환원되었다.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이 말은 처형 직전, 모어가 사형 집행인에게 건넸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담담하고, 냉소적이며, 동시에 품위가 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그가 끝까지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태도의 표현이다.

신념을 버리지는 않지만 증오로 맞서지도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판단의 주체로 남는 태도.

그래서 이 말은 순교자의 비명이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의 마지막 문장으로 남았다.


토마스 모어와 앤 볼린의 구금과 처형.

이 병치는 헨리 8세의 통치가 지닌 이중성을 드러낸다. 그는 웨스트민스터에서 의례를 통해 권력을 정당화했고, 런던 성에서 처벌을 통해 그 권력을 완결했다. 『유토피아』가 제시한 질문—권력은 어떤 사회를 허용하는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현실의 답을 얻는다. 이상은 성 바깥에서 상상될 수 있었으나, 성 안에서는 끝내 허락되지 않았다.


유토피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상 사회의 세부가 아니라, 그 사회가 무엇을 제거함으로써 성립하는가이다. 유토피아에서는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시민은 노동을 분담하고 생산물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이는 평등의 선언이라기보다, 빈곤과 범죄를 동시에 낳는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이다. 모어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제도보다, 범죄를 만들어내는 제도가 더 문제라고 보았다.


형벌 제도 역시 영국 현실과 정면으로 대비된다. 당시 영국에서는 절도에 사형을 선고하는 일이 흔했지만, 유토피아에서는 범죄를 사회적 실패로 간주하고 교정과 노동을 중심으로 다룬다. 이는 관용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의 문제다. 유토피아의 형벌은 권력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을 목표로 설계되어 있다.


종교 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유토피아에서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며, 신앙은 국가 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는다. 이는 헨리 8세 시대, 국왕의 의지가 곧 신앙의 기준이 되었던 영국 현실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다. 종교적 관용은 이상적 미덕이 아니라, 권력이 신념을 독점하지 않도록 막는 장치로 제시된다.


이러한 제도들은 유토피아를 ‘완벽한 사회’로 만들기보다, 현실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거울로 작동한다. 그리고 이 거울은 런던 성과 같은 공간 앞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잔혹한 형벌을 거부하며, 종교 권력의 독점을 경계한 사상은 바로 그런 공간에서 허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의 급진성은 제도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 제도가 현실의 권력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드는가에 있다.



『유토피아』가 헨리 8세 체제에서 위험했던 이유는, 그것이 반란을 선동해서가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헨리8세의 통치는 웨스트민스터에서 의례와 법을 통해 정당화되고, 런던성에서 처벌을 통해 완결되었다. 이 체제에서 사유재산의 부정은 귀족적 질서의 토대를 흔들었고, 형벌의 완화는 공포에 기반한 통치 수단을 무력화했으며, 종교적 관용은 국왕 수장령이라는 권력의 핵심을 직접 겨냥했다. 『유토피아』는 왕을 비난하지 않았지만, 왕이 필요로 하는 통치의 전제—불평등, 공포, 신앙의 독점—를 제거함으로써 체제를 성립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혁명적 구호 없이도 위험했고, 그 위험성은 저자에게 되돌아왔다. 토마스모어가 같은 성 안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은, 『유토피아』가 관념의 실험이 아니라 현실 권력이 견딜 수 없었던 질문이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런던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성의 바깥을 걸으며, 그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떠올렸다. 이 성은 단순한 중세의 유적이 아니라, 권력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고, 언제 그것을 제거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소다. 앤 볼린과 토머스 모어는 서로 다른 이유로 이곳에 도달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런던 성은 설득이 실패했을 때 작동하는 권력의 마지막 장치였다.



이 성의 경계에 서서 유토피아를 떠올리면, 이 책의 성격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그린 책이 아니라, 현실의 권력이 끝내 허용하지 않았던 사회를 사유한 기록이다. 그 사유는 왕을 직접 비판하지 않았지만, 왕권이 의존하던 통치의 조건을 하나씩 제거했다. 그래서 이 책은 위험했고, 그 위험성은 결국 저자의 삶으로 되돌아왔다.


템즈강 위에서 본 런던은 시간의 층위가 겹쳐진 도시였고, 런던 성은 그 층위가 가장 잔혹하게 응축된 장소였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계에 머물렀다. 그러나 바로 그 거리 덕분에,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질문은 더 또렷해졌다. 이상은 언제나 중심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의 바깥, 성의 경계에서 조용히 사유될 뿐이다.

토마스모어, 앤볼린, 헨리 8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사라져 갔으나 런던성만 조용히 버티고 서있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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