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책 (14)

사유가 축척된 공간 옥스퍼드와 <옥스퍼드 살인사건>

by 향지소피아

옥스퍼드는 어떻게 시작된 도시인가



런던은 시간이 빠르게 소비되는 도시라면 옥스퍼드는 시간이 고여서 사유가 되는 공간인 것 같다. 런던이 끊임없이 말을 거는 도시라면, 옥스퍼드는 끝내 말을 아끼는 도시다. 런던의 시간은 수평으로 퍼져 나가며 사람을 밀어내지만, 옥스퍼드의 시간은 수직으로 쌓여 사람을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거리에는 광고보다 종소리가 먼저 닿고, 발걸음은 목적지보다 생각에 이끌린다. 이곳의 정적은 고요함이라기보다 집중의 상태에 가깝다. 소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소음이 허락되지 않는 분위기. 런던에서 사람은 도시를 소비하지만, 옥스퍼드에서는 도시가 사람을 오래 바라본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걷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늦춰지고, 질문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대신 생각이 남는다. 옥스퍼드는 그렇게, 활기 대신 사유를 선택한 도시다.





(중세 시대 교수형이 이루어지던 장소라고 함)


옥스퍼드는 처음부터 대학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는 아니었다. 강을 건너는 나루터, 시장이 형성된 작은 마을이 먼저 있었다. 도시 이름 역시 ‘소가 강을 건너던 곳(Oxen-ford)’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지식은 나중에 이곳에 도착했다. 12세기, 파리에서 돌아온 학자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옥스퍼드는 서서히 방향을 바꾼다. 왕이나 교황이 세운 계획도 아니었고, 웅장한 비전이 먼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모였고, 책이 쌓였고, 그 결과 도시의 성격이 굳어졌다.




“가르침이 금지되자, 대학이 태어났다”


옥스퍼드가 오늘의 모습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12세기 말이다. 1167년, 영국 왕 헨리 2세가 정치적 이유로 영국 학생들의 파리 유학을 금지하면서, 돌아온 학자들과 학생들이 옥스퍼드에 모여들었다. 이때부터 옥스퍼드는 자연스럽게 ‘배우는 사람들의 도시’가 된다. 누군가가 대학을 세운 것이 아니라, 공부가 사람을 불러 모았고, 사람이 도시를 바꾸었다.


대학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는 사실


중세의 옥스퍼드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캠퍼스’와는 전혀 다른 형태였다. 하나의 중앙 대학이 아니라, 학자와 학생들이 모여 살던 공동체들이 점차 칼리지(college)라는 독립된 단위로 발전했다. 기숙, 식사, 학습을 함께하는 이 칼리지들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자리 잡았고, 이 구조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옥스퍼드는 하나의 대학이면서, 동시에 수십 개의 작은 대학이 공존하는 독특한 체계를 갖게 되었다.

신학에서 과학으로, 전통의 확장 중세 옥스퍼드는 신학과 철학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며 고전 인문학, 자연철학, 법학, 의학으로 학문의 폭을 넓혀 갔다. 특히 17세기에는 실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새로운 학문 태도가 자리 잡으며, 근대 과학의 토대가 이곳에서 다져졌다. 이 시기의 옥스퍼드는 ‘과거를 보존하는 도시’이자 ‘미래를 실험하는 공간’이었다.



돌로 지은 시간




옥스퍼드를 걷다 보면, 특정 시대의 건축 양식만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된다. 중세 고딕, 튜더 양식, 바로크, 신고전주의까지—도시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고, 세기가 겹겹이 쌓이며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곳의 건물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이야기가 축적된 공간


크라이스트처치와 그레이트 홀을 걷다 보면, 옥스퍼드가 왜 ‘공부만 하는 도시’로 불리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이곳의 공부는 조용하지만 고립되지 않았고, 엄숙하지만 상상력을 억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서가 단단할수록, 이야기는 더 멀리 날아갔다. 그레이트 홀은 그래서 식당이 아니라, 옥스퍼드라는 도시가 품어온 정신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옥스퍼드에서도 유난히 ‘이야기가 많은’ 공간이다. 왕이 세운 칼리지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특별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권력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와 문학이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며 흘러간 장소다. 그 중심에 그레이트 홀이 있다.







그레이트 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시간의 무게다. 높은 천장, 길게 늘어선 식탁, 벽면을 가득 채운 초상화들. 이곳은 식당이었고, 연회장이었으며, 동시에 수백 년 동안 학문과 권위가 의례처럼 반복되던 공간이다. 초상화 속 인물들은 모두 한 시대를 대표했던 학자이자 성직자, 권력자들이지만, 그 얼굴들은 말없이 현재를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우리는 지나갔고, 너희는 지금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 엄숙한 공간은 뜻밖에도 가장 자유로운 상상력의 출발점이 되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찰스 도지슨, 즉 루이스 캐럴은 이 홀과 이 칼리지의 일상을 배경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탄생시켰다.


그레이트 홀의 긴 테이블과 높은 천장은, 현실의 질서를 상징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 질서가 뒤집힐 수 있음을 암시하는 무대가 된다. 엄격한 규칙과 형식 속에서 오히려 기묘한 상상이 자라났다는 점이, 이 공간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이곳이 오늘날 또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이유도 비슷하다.


그레이트 홀은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시각적 영감이 된 공간으로 자주 언급된다.


마법학교의 식당이라는 설정은, 사실상 중세 대학의 생활을 현대적 판타지로 번역한 결과다. 학문은 주문이 되었고, 교수는 마법사가 되었으며, 학생들은 여전히 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같은 규칙을 공유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배움이 의례처럼 반복되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크라이스트처치와 그레이트 홀을 걷다 보면, 옥스퍼드가 왜 ‘공부만 하는 도시’로 불리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이곳의 공부는 조용하지만 고립되지 않았고, 엄숙하지만 상상력을 억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서가 단단할수록, 이야기는 더 멀리 날아갔다. 그레이트 홀은 그래서 식당이 아니라, 옥스퍼드라는 도시가 품어온 정신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분위기가 이야기를 낳다-<옥스퍼드 살인 사건>


이처럼 고요하고 질서 정연한 도시는 작가의 상상력을 작동시킨다.

옥스퍼드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면?

옥스퍼드의 정적은 모든 것을 숨기기보다 오히려 노출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이 도시를 무대로 한 살인은 우발적이지 않다. 계산되고, 추론되며, 사유의 언어로 설명되어야 한다.

<옥스퍼드 살인사건>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수학과 논리, 학문의 전통이 일상처럼 흐르는 대학도시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이 소설에서 범죄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사고 실험처럼 제시된다.

옥스퍼드는 여전히 조용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질문은 점점 더 날카로워진다. 누가 범인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그리고 이 질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경이 바로, 말 대신 사유를 선택해 온 이 도시라는 사실을, 소설은 끝까지 잊지 않는다.


<옥스퍼스 살인사건>의 작가 기예르모 마르티네스는 문학과 수학을 동시에 사유하는 작가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그는 소설가이면서도 수학을 전공했고, 실제로 옥스퍼드에서 연구 생활을 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범죄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사고의 구조를 시험하는 장치에 가깝다. 감정의 동요보다 논리의 균열에 주목하고, 범인의 심리보다 추론의 과정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마르티네스의 소설은 전통적인 추리소설과 미묘하게 결을 달리한다.


〈옥스퍼드 살인사건〉은 그런 그의 이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옥스퍼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논리와 학문, 증명과 반증이 일상처럼 오가는 사고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마르티네스는 이 도시의 정적과 엄격함을 빌려, 인간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합리성은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그의 문장은 차갑고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 이성이 가진 오만과 취약함에 대한 깊은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범인을 추적하는 일이기보다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의심해보는 경험에 가깝다.


옥스퍼드 살인사건 줄거리


옥스퍼드에 머무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젊은 수학 연구자 ‘나’는 세계적인 논리학자 아서 셀던 교수의 세미나에 참석하며 학문적 긴장 속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셀던의 집 근처에서 한 노파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가 남겨진다. 셀던은 이 기호를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논리적 메시지의 일부로 해석하며 사건에 관심을 보인다.


이후 옥스퍼드 곳곳에서 연쇄 살인이 이어지고, 각 사건마다 서로 다른 기호와 패턴이 등장한다. 경찰의 수사와 별개로, 셀던은 살인들이 우연이 아니라 수학적·논리적 구조를 따라 설계된 범죄라고 주장하며 다음 사건을 예측하려 한다. 화자는 그의 추론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논리가 진실에 다가가는 도구인지, 아니면 현실을 왜곡하는 위험한 장치인지 점점 혼란을 느낀다.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은, 논리가 실패해서가 아니라 논리를 절대적인 것으로 믿은 태도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범인은 감정에 휘둘린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가 완벽히 옳다고 확신한 사람이다. 소설은 사건을 해결하면서도 통쾌한 결말을 주지 않는다. 대신 옥스퍼드라는 조용한 대학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 이성이 어디까지 유효하며 어디서부터 위험해지는지를 묻는 질문을 남긴다.


〈옥스퍼드 살인사건〉은 범죄 소설이 아니라, 이성이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려놓는 이야기다. 런던에서 추리는 사건을 해결하는 기술이라면, 옥스퍼드에서의 추리는 생각 그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경험에 가깝다.


런던에서 추리는 사건(셜록 홈즈 시리즈)을 해결하는 기술이라면, 옥스퍼드에서의 추리는 생각 그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경험에 가깝다.


다양한 시대의 지층이 중첩된 옥스퍼드에서 한 계절 지낸다면 당신은 뭘 하고 싶은가? 난 그저 책이나 읽고 틈틈히 글쓰고 싶다.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선 옥스퍼스 대학시를 빠져 나와 근처의 템즈강변에서 마음을 환기시킨다. 여행 중에도 쉼표가 필요하다. 템즈강의 백조들을 보면서 눈과 마음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마치 성찬 후에 가벼운 차로 후식을 즐기는 기분이랄까.


옥스퍼드는 템즈 강의 상류에 자리한 도시다. 런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은 이곳에서 아직 폭이 좁고 물살도 완만하며, 옥스퍼드에서는 전통적으로 템즈를 ‘이시스(Isis)’라고 부른다. 이 구간은 강이 ‘도시의 배경’이기보다 대학과 일상의 일부로 스며드는 지점이다. 강변에는 보트가 느리게 오가고, 대학의 초원과 산책로가 물가까지 이어지며, 템즈는 제국의 대동맥이 되기 전의 조용한 시작점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템즈 강의 백조 역시 옥스퍼드에서는 런던과 다른 의미를 띤다. 이곳의 백조들은 왕실 의례나 도시의 상징으로 드러나기보다, 대학 도시의 일상적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물론 전통적으로 템즈의 백조는 왕실과 연결된 관습 아래 놓여 있지만, 상류인 옥스퍼드에서는 그 위계가 거의 체감되지 않는다. 백조는 관리되는 상징 이전에 지식의 도시를 유유히 통과하는 생명으로 보이며, 이는 옥스퍼드가 권력이나 시간의 중심이 아니라 사유와 질문의 출발점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템즈 강의 백조는 영국에서 단순한 야생 조류가 아니라, 법과 관습 속에 위치한 존재다. 중세 이래 영국에서는 템즈 강에 서식하는 백조를 군주의 소유물로 간주해 왔으며, 이 전통은 오늘날에도 상징적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이는 자연을 사적 소유로 삼겠다는 의미라기보다, 왕권이 질서와 책임의 최종 주체임을 드러내는 상징적 관념에 가깝다. 그래서 템즈 강의 백조는 자유롭게 떠다니지만, 동시에 보호와 관리의 대상이 되며, 함부로 해치거나 소유할 수 없는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이 전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의례가 바로 Swan Upping(백조 조사 의식)이다. 매년 여름, 템즈 강에서는 영국 왕실과 관련된 인원들이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이동하며 백조의 수를 조사하고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과거에는 왕실 자산을 점검하는 행정 행위였지만, 오늘날에는 백조 보호와 생태 기록을 위한 문화적 의례로 이어지고 있다. 이 장면은 영국이 자연을 대하는 독특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템즈 강의 백조는 완전히 길들여지지도, 완전히 방치되지도 않은 채, 자유와 규율 사이의 균형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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