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책 (15):로마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아스>와 로마를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by 향지소피아

로마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2023년 1월, 우기에 도착한 이탈리아는 매일 다른 얼굴을 보여 주었다. 로마에서는 우산을 쓴 채 젖은 돌길을 걸었고, 베네치아에서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장갑을 샀다.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가 폼페이에 이르렀을 때, 겨울임에도 민들레가 피어 있었다. 같은 나라, 같은 계절 안에서 이렇게 다른 기후를 만난 경험은 이탈리아라는 땅이 지닌 복합성을 몸으로 이해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로마는 특별한 도시였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흘러간다는 느낌보다, 시간이 겹쳐 있다는 인상이 먼저 다가온다. 고대의 기둥 곁으로 중세의 교회가 서 있고, 그 옆으로 오늘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로마는 과거를 정리해 전시한 도시가 아니라, 과거를 그대로 살아 있게 둔 도시다. 그래서 이 도시는 언제나 질문을 던진다. 로마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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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르 강은 로마에 생명줄을 제공했고, 일곱 언덕은 로마에 시간을 견딜 구조를 주었다. 로마는 일곱개의 언덕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길은 로마의 시원인 '일곱개의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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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기원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도 강력한 서사는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에서 출발한다.

불타는 트로이를 떠나 늙은 아버지를 업고 바다로 나선 그는, 방랑 끝에 새로운 땅에 도착해 훗날 로마의 시조로 이어지는 혈통의 출발점이 된다. 이 이야기를 문학으로 완성한 이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였다. 그의 서사시 『아이네이아스』는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 서서, 로마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고자 했는지를 보여 준다.


『아이네이아스』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다. 이 작품은 트로이 전쟁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개인의 고난을 통해 한 도시의 정당성을 서사화한다. 아이네이아스는 영웅이지만,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이자 생존자로 출발한다. 그의 여정은 영광을 향한 돌진이 아니라, 신의 명령과 개인의 감정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고통의 선택들로 채워진다. 로마는 이렇게 탄생부터 이미 운명과 책임의 도시로 그려진다.



신화와 역사가 뒤섞여 있던 시대에 우리는 늘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어디까지가 신화이고, 어디부터가 역사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사실 여부를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기원을 어떻게 설명해 왔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고대인들에게 신화는 허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직 역사라는 언어가 완전히 분화되기 이전에, 세계를 이해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설명하던 가장 진지한 서술 방식이었다.



아이들이 즐겨보는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는 이 경계선을 흥미롭게 보여 준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트로이의 함락이다. 불타는 도시, 그 폐허를 등지고 떠나는 트로이의 장군 아이네이아스. 그 순간까지는 ‘그리스 신화’의 세계다. 신들이 개입하고, 운명이 인간을 이끌며, 서사는 전적으로 신화의 논리로 움직인다. 그러나 아이네이아스가 바다로 나아가 새로운 땅을 향하는 순간, 설명은 이렇게 덧붙는다. 아이네이아스는 이제 로마의 조상이 되기 때문에, 그 이후의 이야기는 역사다. 그렇게 만화 속 신화는 끝이 난다.



이 단순한 설명은 흥미로운 사실을 드러낸다. 신화는 거짓이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낳았기 때문에 끝난다는 점이다. 아이네이아스의 여정은 여전히 신들의 명령과 예언 속에 놓여 있지만, 그 결말이 로마라는 실제 도시, 실제 문명으로 이어지는 순간, 서사는 ‘기원 서사’로 성격을 바꾼다. 신화는 더 이상 목적지가 아니라,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로마의 시작은 언제나 모호하다. 아이네이아스는 신화 속 인물이지만, 그를 통해 로마는 자신을 설명한다. 신화와 역사의 경계는 사실의 선이 아니라, 의미의 전환점에 가깝다. 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말 있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디에서 왔다고 믿는가”였다. 로마는 그렇게, 신화를 버리지 않고 품은 채 역사로 나아간 도시였다. 이 점에서 로마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역사는 과연 신화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가, 아니면 언제나 신화의 언어를 빌려 자신을 설명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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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포룸을 내려다보는 자리에서, 나는 이 서사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기둥은 남아 있으나 지붕은 사라졌고, 길은 이어져 있으나 목적지는 희미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 로마는 여전히 말을 건다. 베르길리우스가 신화로 시작한 이야기는, 돌과 폐허의 형태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로마는 읽는 도시이기 이전에, 응시하게 되는 도시다. 그리고 『아이네이아스』는 그 응시의 방향을 처음으로 제시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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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보는 로마 - 포로 로마노


이 자리에서 로마는 더 이상 도시가 아니라 풍경이 된 역사다. 발아래로 펼쳐진 포로 로마노는 한때 제국의 심장이었지만, 지금은 돌과 풀, 그리고 침묵으로 남아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권력의 중심이었던 장소조차 하나의 지형처럼 보인다. 로마는 이렇게 높이를 바꾸는 순간, 의미를 바꾸는 도시다.

아래를 향한 시선은 판단이 아니라 사유를 부른다. 무엇이 위대했는가보다, 무엇이 남았는가를 묻게 된다. 신화로 시작해 제국으로 확장되고, 폐허로 귀결된 시간들이 한눈에 겹친다. 내려다본다는 것은 지배가 아니라, 거리 두기다. 이 거리 덕분에 로마는 설명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 된다.



로마를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 변신, 운영, 쇠망


로마를 이해하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다. 이 도시는 신화로 시작해 제도로 유지되었고, 역사로 해부되었다. 오비디우스, 시오노 나나미, 에드워드 기번은 각기 다른 시대와 언어로 로마를 바라보았지만, 세 사람의 시선을 겹쳐 놓을 때 로마는 비로소 입체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로마는 아직 하나의 도시라기보다 세계관에 가깝다. 이 작품에서 신과 인간, 자연과 문명은 고정된 경계를 갖지 않는다. 인간은 나무가 되고, 신은 인간의 감정에 휘둘리며, 질서는 끊임없이 다른 형태로 옮겨 간다. 로마는 이 변화의 끝에 등장한다. 즉, 로마는 처음부터 완성된 질서가 아니라, 무수한 변신을 거쳐 도달한 결과다. 오비디우스에게 로마는 영원한 제국이 아니라, 끊임없이 모습이 바뀌는 세계의 한 국면이다. 이 시선 속에서 로마는 견고함보다 유연함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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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 (만신전) 외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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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 내부 모습:>

로마의 판테온은 현존 건물이 서기 118~125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재건된 것으로, 고대 로마 콘크리트 기술의 정점과 완벽한 기하학적 비례를 보여 주는 건축물이다.

지름과 높이가 동일한 원형 돔, 그리고 하늘로 열린 오쿨루스는 그리스 신전의 외형 중심 건축과 달리 내부 공간을 우주의 축소판으로 구성하며, 인간을 거대한 질서 속에 위치시키는 로마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시간에 따라 이동하는 빛은 공간을 끊임없이 변화시키지만, 그 변화는 혼란이 아니라 안정된 구조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유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가 보여 주는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변신이야기』에서 변화는 파괴가 아니라 존재 양식의 전환이며, 신·인간·자연이 하나의 연속된 질서 속에서 서로 이동한다. 판테온은 이 시적 사유를 직접적으로 차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로마가 세계를 이해하던 동일한 사유 지평—질서 속의 변화, 통합된 우주—을 건축이라는 언어로 구현한 공간이라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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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내를 관통하는 수도교: 로마의 수도교는 공화정 시대인 기원전 312년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이후 제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확장된 장기적 공공 인프라였다. 이 시설의 핵심 기능은 도시와 군대에 안정적인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공중목욕탕, 분수, 위생 시설이 운영될 수 있었다. 수도교의 궁극적 목적은 단순한 물 공급을 넘어,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 로마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고 제국의 행정·군사·생활 체계를 뒷받침하는 데 있었다.>


반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를 철저히 현실의 도시로 끌어내린다. 신화와 상징의 베일을 벗기고, 도로·법·군단·행정이라는 구체적인 장치들을 통해 로마를 설명한다. 여기서 로마는 더 이상 변신하는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위대함을 도덕이나 이념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타자를 편입하는 유연성, 실패를 제도로 보완하는 실천에서 로마의 지속성을 읽어 낸다. 그의 로마는 이상적인 제국이 아니라, 잘 작동했던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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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과 콜로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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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외벽의 모습>


이에 비해 역사가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로마는 질문의 대상이다. 기번은 로마의 몰락을 신의 뜻이나 운명의 필연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시민 정신의 약화, 권력 집중, 제도의 경직이라는 구조적 원인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기번의 시선에서 로마는 찬미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가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사례다. 이때 로마는 더 이상 살아 있는 도시가 아니라, 해부대 위에 놓인 문명이다.



이 세 개의 시선을 함께 놓으면 로마는 하나의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 오비디우스는 로마를 변신의 결과로 보았고,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를 운영의 성취로 해석했으며, 기번은 로마를 쇠망의 교훈으로 읽었다. 그러나 이 시선들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로마라는 도시는 변화할 수 있었기에 운영될 수 있었고, 운영되었기에 몰락할 수 있었으며, 몰락했기에 다시 읽히는 도시가 되었다.



그래서 로마는 끝난 적이 없다. 신화 속에서, 제도의 기록 속에서, 역사서의 페이지 속에서 로마는 계속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로마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강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 개의 시선은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남긴다. 로마는 무엇이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로마를 어떻게 읽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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