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책 (16): 바티칸 시국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과 괴테의 시선으로 본 바티칸 시국

by 향지소피아


1. 괴테의 시선으로 본 바티칸시국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라가 있다. 바로 바티칸 시국이다. 바티칸 시국에 입성해보고자 하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고자하는 마음때문이다. 정작 바티칸시국의 시스티나성당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 되어 있기 때문에 <천지창조>는 눈으로만 보고 마음에만 새겨 돌아와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천지창조>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안에 수록되어 있으니 그걸 참고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그리고 이 글편에서는 미술, 조각에 관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책 이야기 위주로 글을 써내려 가고자 한다.


바티칸 시국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이곳이 ‘신의 나라’라기보다 시간의 창고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도하는 사람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기둥의 반복과 비례, 공간을 지배하는 구조의 질서였다. 이 감각은 자연스럽게 요한 볼프강 폰 괴테를 떠올리게 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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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국 근처의 로마 시내의 오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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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좌) :바티칸 시국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사진 (우): 바티칸 시국과 로마를 분리하는 국경선이자 성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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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국의 출입국 심사처

바티칸 입구.jpg 바티칸 시국의 영토 안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단순한 문화 체험이나 휴식의 시간이 아니었다. 이 여행은 그의 문학과 사유, 예술관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킨 정신적 분기점이었다. 괴테는 1786년부터 1788년까지 약 2년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했으며, 이 경험은 이후 그의 삶과 작품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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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의 괴테는 이미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였고, 동시에 바이마르 공국의 고위 관료였다. 명성과 사회적 역할은 그에게 안정과 권위를 제공했지만, 창작자로서의 그는 점차 피로와 정체를 느끼고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은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이었으며, 그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조용히 길을 떠났다. 이 여행은 외부 세계를 향한 이동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다시 구성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바티칸은 종교적 열광의 무대가 아니다. 그는 신앙의 감정에 몸을 맡기지 않는다. 대신, 바티칸을 고전이 가장 치밀하게 보존된 장소로 바라본다. 그에게 이곳은 기도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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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광장의 반원형 회랑은 그 시선을 단번에 설명해 준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이 공간은 군중을 포용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기둥은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질서를 설득한다. 괴테라면 이 광장에서 감탄보다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왜 이런 비례인가, 어떻게 이 반복이 안정감을 만드는가.



성 베드로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압도적인 스케일이 펼쳐진다. 그러나 괴테의 시선은 ‘압도’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는 거대한 네이브와 발다키노를 보며 감정의 파동을 기록하기보다, 구조가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지를 살핀다. 성스러움은 신앙에서 오지 않는다. 이해된 형식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괴테가 바티칸에서 선택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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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에 이르면 그 태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고대 조각과 지도, 회화가 집적된 이 공간에서 괴테가 본 것은 교회의 권위가 아니라 고전 세계의 연속성이다. 그는 기독교가 고전을 파괴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고전이 이곳에서 살아남아 다시 읽힐 기회를 얻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바티칸은 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고대의 아카이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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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점은, 괴테의 시대에는 오늘날의 ‘바티칸 시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본 것은 국가가 아니라 교황령의 일부였고, 그 안에서 그는 종교 정치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관심은 오직 하나, 형식과 규범이었다. 그래서 그의 바티칸은 차분하다. 열광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배우는 자리로 남는다.


이 시선을 따라 바티칸을 걷다 보면, 나 역시 기도하는 여행자가 아니라 공부하는 방문자가 된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감동하기보다, 기둥 사이의 간격을 눈으로 재고, 공간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몸으로 느낀다. 감정은 배제되지 않지만, 언제나 이해 뒤에 온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바티칸에서 괴테는 신을 찾지 않았다. 대신 고전을 다시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바티칸은 여전히 신의 도시이지만, 동시에 인간이 형식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했던 가장 치밀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이 도시를 괴테의 눈으로 읽는 일은, 여행을 감상의 차원에서 사유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바티칸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를 단련시킨다.



2. 괴테와 이탈리아 여행의 영향



이탈리아에서 괴테가 가장 크게 변화한 지점은 ‘무엇을 느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게 되었는가’였다. 여행 이전의 괴테는 고전을 주로 책과 이론을 통해 접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이상화된 이미지로 존재했고, 예술은 감정과 상상력의 자극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그는 조각과 건축, 자연을 직접 마주하며, 예술이 감동의 대상이 아니라 형식과 구조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괴테는 자신의 여행 기록인 <이탈리아 기행>에서 반복적으로 “이제야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그의 예술관 변화의 핵심을 드러낸다. 아름다움은 즉각적인 감정의 폭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비례와 질서, 균형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인식된다는 생각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때부터 괴테에게 예술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대상이 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그를 기존의 질풍노도적 경향에서 벗어나 고전주의적 태도로 이끌었다. 감정의 분출과 주관적 열정을 중시하던 시기를 지나, 절제와 조화, 형식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마주한 고대 조각과 건축은 그에게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었다.


이 여행은 괴테의 작품 세계에도 구체적인 변화를 남겼다. 이후 집필된 『파우스트』에서는 감정의 격정 대신, 인간 욕망이 보다 구조화된 비극적 질서 속에 배치된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는 개인의 성장이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훈련과 형성의 과정으로 묘사된다. 또한 그는 자연 연구에서도 혼돈이 아닌 형태와 변형의 연속성에 주목하며, 식물 형태학과 같은 과학적 탐구로까지 사유를 확장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이탈리아 여행 이후 괴테가 예술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다시 확립했다는 점이다. 그는 관료적 역할에서 한 걸음 물러나, 창작과 사유의 균형을 회복했다. 이탈리아는 그에게 영감을 즉각적으로 제공한 장소가 아니라, 자기 규율과 시선을 재정립하게 한 공간이었다.


요컨대, 괴테에게 이탈리아 여행은 감동의 축적이 아니라 인식의 재구성이었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었고, 그 변화는 독일 문학의 흐름을 낭만에서 고전으로 이동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에서 괴테는 예술을 사랑하는 법이 아니라, 예술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여행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여기서 무엇을 보느냐고, 무엇을 배웠냐고? 나는 섣부르게 답 할 수 없었다. 압도와 경이에 멀미를 느꼈을 뿐이다. 여기서 본 것들은 여행과 건축, 예술 편에서 다루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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