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책 (23):그리스편

아테네와 힘이 센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Περὶ ποιητικῆ>

by 향지소피아


'카타르시스κάθαρσις (katharsis)'의 어원지인 아테네를 방문하다.


-플롯의 본질은 카타르시스 (κάθαρσις (katharsis)다

아리스토텔스의 <시학> 중에서-


하늘에서 내려다 본 아테네의 모습

아테네 공항의 모습

아테네 공항의 근처의 모습



아테네시로 접근하는 중 버스 안에서 찍은 모습들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 아크로 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아테네 시가지의 모습, 멀리 하얗게 보이는 덩어리들은 모두 집들이다.)



(밤에 카페에서 본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아크로폴리스로 이어지는 플라카의 골목길은 한여름의 열기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에 밀려 일행들을 놓칠까봐 잰 걸음으로 올랐다. 그러는 중에도 발걸음을 붙잡는 장면이 있었다. 고대복장 키톤을 연상시키는 옷차림으로 춤 추고 있는 무희였다. 붉은 키톤 위에 긴 하얀 망사천으로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 강렬해서 바쁜 중에도 시선을 뺏았다. 마치 우리나라의 살풀이 같은 느낌의 춤이었다. 고대 신전의 무녀가 제례를 올리기 전에 추었던 춤이었을까? 찰나적인 순간이어서 사진 한장도 못 남기고 사람들에 밀려 아크로폴리스로 향했다. (지금도 그 점이 매우 아쉽다)



(이 사진은 아프로디테 신전 앞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사진이다. 아프로디테신전에도 제의를 올릴 때 무녀들이 춤을 추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침 아프로디테 박물관에서 필자가 찍어 둔 사진이 있고, 파르테논 신전 가는 길에 무희들이 추던 춤이 비슷해서 이 사진을 대신해 봄)



올리브 나무의 안내를 따르면서 아크로폴리스의 중턱쯤 올랐을 때 저 멀리 파르테논 신전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가장 높은'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말처럼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 시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아테나신을 모셨던 파르테논 신전은 맨꼭대기에, 신전 위에는 태양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중해의 태양은 하얬다.




(팻말 뒤로 보이는 나무가 올리브 나무다. 올리브잎은 앞면은 담청인데 뒷면은 그리스의 태양빛을 닮은 하얀 느낌이 난다.)


(그리스에 왔음을 실감나게 해주는 현장이다. 어디서든지 희랍어를 볼 수 있다. 철학 박사 공부 시절, 지도교수님께서 희랍어 알파벳을 가르쳐 주시고, 아주 기본적인 철학 개념 단어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 덕분에 서양철학의 기본이 되는 고대 그리스 자연 철학의 개념어들을 희랍어로 익힐 수 있었다. 그렇게 책으로만 접했던 희랍어를 아주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이렇게 그리스에 여행을 와서 일상어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벅찼다.)




아크로폴리스의 디오니소스 극장가는길의 푯말(아크로폴리스, 남쪽 경사면, 디오니스소스극장)



파르테논 신전 오르는 길


파르테논 신전 후면



(푸른 하늘 눈부신 하얀 태양이 좋아서 에렉테이온 신전 후면에서 포즈를 취하다.)

(헤로데쿠스 극장: 헤로데스 아티쿠스극장, 서기 161년 로마시대 정치가이자 귀족인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세움)




아크로폴리스 지역에서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은 디오니소스 극장이었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남쪽에 위치하고 있고, 1,7000명 정도를 수용했던 노천 원형극장이다. 그곳에서 기원전 5세기경 무렵 디오니소스 축제기간 중 유명한 그리스 삼대비극작가의 연극들이 초연되기도 했으며, 그 외도 수없이 많은 연극 공연이 이루어졌다. 내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주인공인 책인 <시학>이 탄생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공연되었던 그 연극들 때문이었다.



(디오니소스 극장 :그리스 아테네의 고대 유적지인 아크로폴리스지구 안에 있음. 디오니소스극장은 기원전 6세기 말경~기원전 4세기에 석조로 확장) 디오니소스 극장이 먼저 세워지고 파르테논 신전이 기원전 447~432년에 지어짐)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 사람들은 대부분은 비극 폐인이었다. 디오니소스 축제기간동안 경합형식으로 행해지는 15편 정도의 비극을 감상하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스비극은 고대 아테네 사람들에게 전반적인 삶에 영향을 주었다. 그런 문화 풍조를 당대의 철학자 플라톤은 매우 못마땅하게 보았으며, 비극을 “정치적 들러리”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플라톤은 (비극을 포함한) 시를 이데아(진리)의 모사인 현실세계를 모방한 것이며. 이데아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보았다. '시는 영감에 사로잡힌 채 읊조리는 비이성적, 비윤리적인 것' 이라며 공격을 퍼부었고, <국가>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시인 추방’을 주장한다. 한편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 생각이 달랐다. <시학>은 그런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에게 제출한 일종의 반론서이다. 그는 그리스비극의 황금기에 공연되었던 비극 작품집을 매우 꼼꼼하게 분석하고 난 뒤에 <시학>을 썼다.


‘시학’은 그리스어로는 포이티케 (Ποιητική)이며, ‘창작기술’이라는 뜻이다. 총 2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1장에서 5장까지는 시의 일반적 본질과 그 종류와 각 종류의 기능, 시의 구성 요소를 논의하고 있다. 6장부터 22장까지는 비극의 정의와 그 여섯 가지 구성 요소인 플롯, 성격, 사상과 주제, 언어, 음악, 장경에 대해서 상세 기술한다. 그 중에서 플롯이 가장 중요하며, 비극의 본질은 이 플롯에 있다. 플롯의 본질은 카타르시스이며, 배설될 감정들은 연민과 공포라고 알려준다. 23장에서 26장까지는 서사시의 구성 법칙을 논의하는데 서사시보다는 비극이 연민이나 공포라는 감정을 배출시키는 시적효과가 더 크다고 주장한다.


'카타르시스'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쓴다. 이 말이 그리스어(희랍어)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라는 책에서 기원이 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말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으로 창조한 말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도 그 말은 사용되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말을 <시학>에 남겼기 때문에 유명해졌고, 책 좀 읽는다는 사람, 시 좀 쓴다는 사람, 이야기 좀 쓴다는 사람들은 시공을 초월해서 다 알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322)의 <시학 Peri poietikes>은 힘이 세다. 출생 신고 된지 이천 삼백년이나 지났지만 시공을 초월한 많은 문하생을 거느리고 있는 책이다. 필자 역시 이 책의 문하생이다. )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의 시론에 반론하고 있는 것을 요약해보면, 첫째, 시는 단순한 영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술에 의해 제작된 것이기에 이성적 활동이다. 또한 시가 플롯을 통해 목적을 이루기 때문에 시는 매우 지성적인 활동이다. 둘째, 시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모방이지만, 단순한 모방 (mimic)이 아니라 이상화된 모방(mimesis)이다. 셋째, 시는 인간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끼치는 ‘연민과 공포’라는 감정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오만에 대한 경고를 하는 교훈적인 것이다. 이에 나아가서 <시학> 제 9장에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라고 강변한다. 이 말은 시적 활동의 의미와 가치를 세워주는 선언이다. 이로써 본인이 의도했던 아니든 철학자가 인류 최초의 문학평론서의 전범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시학>은 이후 문학도의 지침서 혹은 드라마 작법서의 바이블이 되었다. 이는 <시학>에서 문학이 추구해야 할 본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십 오년 전 철학박사과정 중 <시학>을 텍스트로 분석해서 읽었는데, 그 뒤로도 가끔씩 이 책을 다시 펼쳐들 때가 있다. 소설가로서의 방향성과 푯대가 모호해 질 때, <시학>을 정좌하고 읽어본다. 올 해가 딱 그 시점이었다. 그리스를 다녀오고 난 뒤 다시 <시학>을 펼쳐 들었다.



그리스에 가보는 것! 철학박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가지게 된 소망이었는데 , 2023년 여름에 그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 2023년 여름은 생애 최고의 여름이었다. 푸른 지중해, 하얗게 부서지던 햇살, 올리브 나무, 전국토에 널려 있던 신화 이야기, 아크로폴리스의 신전과 원형 극장... 꿈을 꾼 것 같은데, 사진이 남아 있다. 기억이 희미할 때 사진을 꺼내 보면서 그때의 사실을 확인해 본다. 여전히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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