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책(22) : 밀라노편

딜레탕뜨가 체류자가 되는 도시 밀라노, 스탕달의 밀나노살이.

by 향지소피아

글 순서



Ⅰ. 감탄이 유예되는 도시, 밀라노

Ⅱ. 1816년 9월 24일 저녁 7시

Ⅲ. 라 스칼라 극장

Ⅳ. 딜레탕뜨 스탕달

Ⅴ. 체류의 시작, 밀라노

Ⅵ. 내가 본 밀라노

Ⅶ. 여행에서 체류로

Ⅷ. 딜레탕뜨가 체류자가 되는 도시







Ⅰ. 감탄이 유예되는 도시, 밀라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동상. 이 동상은 밀라노 스칼라 광장(Piazza della Scala)에 세워져 있으며, 뒤로 보이는 건물은 라 스칼라 극장이다).



밀라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이성적인 도시이면서 동시에 가장 세속적인 열정을 품은 도시이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흔적 위에 산업과 금융, 패션과 디자인이 겹겹이 쌓여, 신의 도시나 고대의 기억보다는 지금 작동하는 현재가 먼저 보이는 곳이다. 그래서 밀라노는 감탄을 강요하기보다, 오래 머물수록 신뢰가 쌓이는 도시, 예술과 노동, 사유와 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도시로 다가온다.


나에게 밀라노는 오랫동안 개념으로 먼저 알고 있던 도시였다. 세계 패션 산업의 중심지, 혹은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밀라노 칙령의 장소. 이름은 분명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밀라노는 기대도, 환상도 크지 않은 채로 다가왔다.

실제로 처음 마주한 밀라노에 대한 감정의 파고는 그리 높지는 않았다. 로마처럼 과거가 말을 걸지도 않았고, 베네치아처럼 풍경이 감탄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거리는 분주했지만 과장되지 않았고, 건물들은 웅장하기보다 단단했다. 사람들은 도시를 보여주기보다, 이미 정해진 리듬 속에서 자기 갈 길을 정확히 알고 걷는 듯 보였다. 밀라노는 ‘보는 도시’가 아니라, 이미 작동하고 있는 도시였다.


그래서 이 도시는 도착과 동시에 감탄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요구한다. 잠시 머무는 여행자에게는 무심하지만, 오래 머물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도시. 이 첫인상은, 훗날 내가 스탕달의 밀라노 사랑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스탕달은 1814년부터 1821년까지, 약 7년간 밀라노에 머물렀다. 잠시 스쳐지나간 것이 아니라 체류하며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밀라노의 무엇이 스탕달을 그토록 붙들게 했던 것일까?


Ⅱ. 1816년 9월 24일 저녁 7시, 여독 속에서도 라 스칼라로 달려간 스탕달의 도착.




1816년 9월 24일 저녁 7시, 스탕달은 긴 여정 끝에 밀라노에 도착한다. 몹시 피곤한 상태였지만 그는 숙소로 향하지 않는다. 대신 곧장 라 스칼라 극장으로 뛰어간다. 이 장면은 그의 기행기 《로마, 나폴리, 피렌체》에서 유난히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스탕달은 라 스칼라 극장을 보고 이렇게 적는다. 그것은 “가장 동양적인 상상력으로 꿈꿀 수 있는, 매우 특이하고 감동적이며 극도로 풍부한 건축미를 보여 주는 모든 것”이었다. 이 감동은 단발적인 인상이 아니었다. 그는 사흘 연속으로 같은 극장을 찾았고, 이후에도 라 스칼라는 그의 밀라노 생활의 중심이 된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극장의 위대함 그 자체가 아니다. 도착하자마자 머물 곳이 아니라, 머무를 시간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스탕달에게 밀라노는 처음부터 ‘통과의 도시’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이곳에서 살아볼 가능성을 직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Ⅲ. 라 스칼라 극장, 예술이 숭배가 아닌 일상이 되는 건축




예술이 일상이 되는 건축 라 스칼라 극장은 1778년에 완공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외관은 화려하지 않고, 장식은 절제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내부에는 음향과 시야, 좌석 배치까지 계산된 치밀한 구조가 숨겨져 있다. 이 극장은 궁정의 사치품이 아니라, 도시가 예술을 조직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스탕달이 이 극장에 매혹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오페라를 숭배하지 않았다. 대신 반복해서 관람했고,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기꺼이 고가의 비용을 지불했다. 스칼라 극장에서 상연되던 오페라 〈청동머리〉를 여러 차례 다시 본 것도, 새로운 작품을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시간을 다시 살기 위해서였다.

이때 스탕달은 더 이상 가벼운 예술 애호가, 즉 딜레탕뜨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예술을 삶의 중심으로 옮기고, 도시의 리듬을 자신의 하루에 맞춘다. 밀라노는 이렇게 한 사람을 딜레탕뜨에서 체류자로 이끄는 힘을 지닌 도시였다.


Ⅳ. 딜레탕뜨 스탕달, 예술을 사랑했지만, 아직 머무르지는 않았던 시간


밀라노에 오기 전의 스탕달은 전형적인 딜레탕뜨였다. 그는 음악가도, 전문 비평가도 아니었지만, 오페라와 회화, 연극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작품을 분석하기보다는 자신의 감각을 신뢰했고, 이론보다 몸의 반응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에게 예술은 연구 대상이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는 감각의 자원이었다.

그러나 딜레탕뜨라는 말에는 언제나 머무름의 한계가 있다. 감각은 예민하지만, 생활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태. 예술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아직 삶의 형식으로 굳어지지는 않은 단계다. 스탕달 역시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열정적으로 예술을 소비했지만, 그 열정은 대개 순간의 강도로 남았다.

밀라노에 도착했을 때의 스탕달도, 처음에는 그런 딜레탕뜨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이 도시는 그를 그 자리에 머물게 두지 않았다.


Ⅴ. 체류의 시작, 밀라노. 반복, 비용, 자리: 삶으로 들어간 오페라


스탕달이 1816년 9월 24일 밀라노에 도착했을 때 나이는 만 33세였다. 이미 젊은 혈기만으로 움직이는 나이는 지났고, 그만큼 도시를 소비하기보다 받아들일 준비가 된 나이였다. 그래서 밀라노에 대한 그의 애정은 즉각적인 열광이면서도, 동시에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랑이 될 수 있었다.

스탕달은 1814년부터 1821년까지, 약 7년간 밀라노에 머물렀다.

여행자의 체류가 아니라, 실제로 살며 일하고 사랑했던 시간이었고, 그래서 밀라노는 그의 기록 속에서 단순한 방문지가 아니라 가장 행복했던 삶의 장소로 남게 된다.


스탕달이 밀라노에서 보여 준 변화는 거창하지 않다. 대신 반복적이고 사소하다. 그는 라 스칼라 극장을 다시 찾고, 같은 오페라를 여러 차례 관람하며, 더 좋은 자리를 위해 비싼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하루의 중심이 이동이 아니라 저녁의 오페라 시간으로 재편되는 순간, 그의 삶의 축이 바뀐다.

이때부터 밀라노는 더 이상 방문지가 아니다. 그는 이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살아낸다. 극장과 거리, 살롱과 산책로가 하나의 리듬으로 연결되고, 그 리듬 속에서 그는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이것은 관광의 쾌락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만족이다.


밀라노는 스탕달에게 자유를 약속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지배하의 도시는 정치적으로 억압적이었고, 검열과 감시는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도시에서 살고 싶어 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밀라노는 사적인 열정과 공적인 질서가 균형을 이루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 균형이야말로, 스탕달을 체류자로 만든 결정적 조건이었다.


Ⅵ. 내가 본 밀라노, 위대한 것 아래를 걷는 도시


(두오모 광장과 두오모 성당: 밀라노 두오모 성당은 1386년 비스콘티 공작 시대에 착공되어, 수세기에 걸쳐 증·개축이 이어진 끝에 19세기 말에야 현재의 외형을 갖춘 성당. 프랑스 고딕의 영향을 받은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을 기본으로 하되, 이탈리아적 장식과 르네상스·바로크 요소가 층층이 더해져 한 시대가 아니라 여러 시대의 신앙과 권력이 응축된 건축이 됨. 순백의 칸돌리아 대리석으로 치장된 수백 개의 첨탑은, 밀라노가 정치·종교·예술의 중심 도시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줌.)




내가 만난 밀라노 역시, 처음부터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 도시였다. 두오모는 압도적이었지만,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은 담담했고, 라 스칼라는 성지라기보다 일상의 동선에 가까웠다. 트램은 극장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광장은 언제나 사람들의 생활로 채워져 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위대한 것들이 언제나 조금 낮은 자리에 놓여 있다. 신의 건축은 배경이 되고, 예술의 전당은 지나가는 풍경이 된다.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하루를 살아간다. 밀라노는 감탄을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도시였다.

이 점에서 내가 본 밀라노는, 스탕달이 사랑했던 밀라노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세기가 달라도, 도시의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Ⅶ. 여행에서 체류로, 밀라노인처럼 살아보기


밀라노는 스탕달을 딜레탕뜨에서 체류자로 변모시켰다. 그것은 이 도시가 특별히 친절했기 때문도, 낭만적이었기 때문도 아니다. 밀라노는 보여주지 않았고, 대신 살 수 있게 했다. 감탄을 유예하는 대신, 시간을 허락했다. 그래서 밀라노는 한 번에 사랑받는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머물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조금씩 마음을 연다. 스탕달이 그랬듯, 이곳에서 사랑은 순간의 열광이 아니라 생활의 결과로 도착한다. 밀라노는 방문한 사람을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머문 사람의 정체성을 완성시키는 도시였다.


스탕달은 밀라노에 체류한 이후 문학적 성향에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이전의 그는 여행과 예술 감상의 인상을 중심으로 감탄과 정서를 기록하는 데 익숙했지만, 밀라노에서의 생활을 거치며 문학의 관심을 삶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으로 옮겨 간다. 이 시기 이후 그의 작품에서는 개인의 열정과 욕망이 사회적 제도와 권력,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변형되는지가 중요한 주제가 되며, 이는 《적과 흑》과 《파르마의 수도원》에서 나타나는 현실 감각과 심리 분석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밀라노 체류는 스탕달을 감상의 작가에서 생활과 현실을 분석하는 소설가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외지인이 밀라노에 와서 살면서 자신의 성체성을 완성시킨 사례는 또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피렌체의 천재에서 밀라노의 종합적 르네상스 인간으로 성장했고, 베르디는 라 스칼라를 중심으로 국민 작곡가로 자리 잡았으며, 만초니는 이곳에서 이탈리아 국민문학의 언어를 정제했다. 오늘날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기업가로, 현대 남성복과 미니멀한 럭셔리의 기준을 만든 인물인 아르마니에 이르기까지, 밀라노는 언제나 성공의 무대이기보다 체류를 통해 사람을 깊게 만드는 도시로 기능해 왔다.


스탕달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여행지에서의 ‘한 달 살기’, 혹은 몇 년간의 체류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여행 방식이 아니라, 여행을 삶으로 전환하려는 오래된 욕망이다.

나 역시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도시는 다시 오고 싶어지고, 다른 계절의 시간을 살아 보고 싶어진다. 며칠 머무는 방문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장소들이 있다. 그곳에서는 풍경보다 리듬이 먼저 기억에 남고, 감탄보다 생활의 가능성이 먼저 떠오른다.

스탕달이 밀라노에서 느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여행자가 아니라, 이미 그 도시의 시간을 살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Ⅷ. 딜레탕뜨가 체류자가 되는 도시, 밀라노의 힘- 배경보다는 능력과 성취를 중시하는 태도


오늘날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꼽힌다. 금융과 패션, 디자인, 미디어와 스타트업 등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집중되어 있어, 밀라노는 과거를 보존하는 도시가 아니라 현재가 계속 생산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무엇보다 출신 지역이나 배경보다 능력과 성취를 중시하는 도시 분위기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밀라노를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 체류하며 자기 삶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도시로 만들고 있다.

밀라노는 그렇게, 딜레탕뜨가 체류자가 되는 도시로 남는다. 그리고 그 변화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점에서 밀라노는 여전히 딜레탕뜨를 체류자로 바꾸는 도시이고,
그 힘은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밀라노에 남는다면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볼까?




다음 회는 하얀 태양의 나라 그리스 편으로 넘어 갑니다. 그리스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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