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와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기>
—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기와 튀르키예 -
인천에서 두바이까지 약 10시간, 두바이 이스탄불 약 6시간 포함해서 16시간 시간이 드디어 튀르키예 땅에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그 긴 시간동안을 예상해서 기내에 들고 간 책이 있다.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기>이다. 16시간의 비행기 내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장거리 비행기를 탈 때면 항상 이처럼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 한권씩을 들고 다닌다. 이번에 들고 간 책은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은 그리스 여행 중에 가이드의 언급도 있었고, 박사과정 중에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언급받은 책이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꼭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기』는 고고학 보고서이기 이전에, 신화가 장소가 되는 과정을 기록한 텍스트다. 19세기 유럽에서 『일리아드』는 오랫동안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로 취급되었지만, 슐리만은 이 서사를 실제 역사로 믿었다. 그는 호메로스의 시구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지명과 지형, 항구와 바다의 묘사를 단서 삼아, 오늘날 튀르키예 차나칼레 인근의 히사를륵 언덕을 트로이의 유력한 위치로 지목하고 발굴에 착수했다. 『트로이 발굴기』는 바로 그 집요한 탐색과 확신의 기록이다.
이 책에서 트로이는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여러 시대의 도시가 겹겹이 쌓인 다층적 장소로 드러난다. 슐리만의 발굴을 통해 트로이가 단일한 전설 속 공간이 아니라, 반복해서 파괴되고 다시 세워진 실제 인간의 거주지였음이 밝혀졌다. 오늘날 학계에서 말하는 트로이 I층부터 IX층까지의 개념 역시 이 발굴에서 출발한다. 동시에 이 책은 논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슐리만은 성급한 발굴로 상층 유적을 훼손했고, 특정 유물을 ‘프리아모스의 보물’로 단정하는 등 과도한 동일시를 남겼다. 『트로이 발굴기』는 위대한 발견의 역사이면서, 확신이 불러온 위험을 함께 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의미는 고고학적 성과 그 자체보다, 인간이 왜 신화를 현실로 끌어오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슐리만은 책을 들고 땅을 팠고, 나는 책을 품고 바다를 건넜다. 고린토 운하와 산토리니의 바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항구 도시 나플리오 앞바다를 지나며 떠올린 것은 줄곧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이야기였다. 짙은 코발트빛 바다 위를 떠다니며,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던 수많은 그리스인들이 이 바다를 건너갔을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일리아드』는 트로이를 뜻하는 ‘일리온(Ilion)’의 서사이며, 그 시발점에는 헬레네와 파리스의 도주가 있다. 이 사건으로 아가멤논은 연합군을 조직해 트로이로 향하고, 전쟁은 수많은 영웅들을 소환하며 장기화된다. 전쟁의 끝에서 트로이는 멸망하고, 아이네이아스는 탈출해 새로운 트로이, 곧 로마의 기원이 된다. 이 전쟁은 동시에 오디세우스의 방황을 낳는다. 그는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려 했으나, 포세이돈의 분노로 수년간 바다를 떠돌며 귀향하지 못한다.
산토리니의 선셋 아래에서 배들이 일제히 항구로 돌아가는 장면을 보며 울컥했던 감정은, 바로 이 귀향의 서사와 맞닿아 있다.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친 풍랑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항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지는 산골에서 밥짓는 연기가 오르는 풍경을 보고 느꼈던 감정처럼, 바다는 인간의 기억과 귀환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트로이 발굴기』는 이렇게 신화, 장소, 인간의 집요한 기억이 만나는 지점에 놓인 책이다. 나의 튀르키예 여행기와 이 책이 만날 때, 트로이는 더 이상 교과서 속 유적이 아니라 신화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다시 개인의 기억으로 연결되는 공간이 된다. 신화는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누군가의 발걸음과 사유를 이끌며, 오늘도 바다와 땅 위에서 다시 읽히고 있다. 트로이는 발굴된 유적지가 아니라 믿음의 결과이다.
이 책을 다 읽고도 한 잠 자고 난 뒤에 드디어 비행기는 튀르키예 상공을 접근하고 있었다.
(두근두근 드디어 튀르키예 상공을 접근하고 있다)
튀르키예에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두 개의 트로이 목마가 있다. 하나는 트로이 유적지 안에 서 있고, 다른 하나는 차나칼레의 해안가에 놓여 있다. 두 목마는 같은 신화를 말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불러낸다.
튀르키예 트로이 유적지 내부에 세워진 관람용 목마는 고대 유물이 아니라, 『일리아드』의 마지막 계략을 공간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재현물이다. 내부에 출입구와 계단이 있어 관람자가 직접 들어가 볼 수 있게 설계되었고, 이는 ‘이야기를 보는’ 차원을 넘어 몸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장치라는 성격을 분명히 한다. 주변의 낮은 성벽 잔해와 대비되며, 발굴된 돌의 시간과 서사의 시간이 한 자리에서 겹쳐진다.
이 목마는, 『일리아드』의 마지막 계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이곳에서 목마는 유물이 아니라 해석이다. 겹겹이 쌓인 성벽의 흔적과 나란히 서 있는 이 나무 구조물은, 발굴된 돌의 시간과 이야기의 시간이 어떻게 한 장소에서 겹쳐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눈앞의 돌은 말이 없지만, 목마는 말을 건다. “이 도시는 이렇게 무너졌을지 모른다”고.
튀르키예의 트로이 유적지는 오늘날 차나칼레 주(州)에 속한 히사를륵(Hisarlık) 언덕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튀르키예 북서부, 에게해와 다르다넬스 해협을 잇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고대에는 헬레스폰토스라 불리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바다를 등지고 넓은 평원을 내려다보는 이 지형은 교역과 군사 이동에 유리해, 선사시대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도시가 반복해서 세워지고 파괴되었다. 바로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트로이는 『일리아드』 속 전쟁의 무대로 설득력을 얻었고, 신화가 특정 장소에 고정된 역사적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차나칼레 해안가의 목마)
반면 차나칼레 해안가의 목마는 현대가 만든 기억의 상징이다. 이 목마는 고대의 것이 아니라 영화 <트로이 >촬영을 위해 제작된 소품으로, 2004년 이후 해안가에 기증·설치되었다. 거칠게 이어 붙인 목재와 두꺼운 밧줄, 바다를 향해 숙인 말의 머리는 승리의 환희보다 침묵과 애도의 정서를 전한다. 요트와 항구의 풍경 속에 놓인 이 목마는, 트로이가 더 이상 과거의 전쟁이 아니라 지금도 소비되고 해석되는 이야기임을 드러낸다.
이 두 목마의 차이는 분명하다. 유적지의 목마가 신화를 이해하기 위한 교육적 장치라면, 해안가의 목마는 신화를 기억하는 방식 그 자체다. 하나는 질문을 던지고, 다른 하나는 상징으로 남는다. 하나는 과거를 재현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감각으로 과거를 끌어온다.
차나칼레 해안가에 설치된 영화 〈트로이〉의 트로이 목마와 히사를륵 언덕에 있는 트로이 유적지는 서로 멀지 않다. 두 장소는 같은 차나칼레 주에 속하며, 차량으로 약 30~40분 정도면 이동할 수 있는 거리다. 항구에 놓인 목마가 현대의 영화와 관광을 통해 기억되는 트로이라면, 히사를륵의 유적지는 발굴된 돌과 지층을 통해 과거의 트로이를 증언한다. 짧은 이동 거리 안에서 여행자는 신화가 재현된 현재와, 신화가 땅에 남긴 흔적을 연속해서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튀르키예의 두 트로이 목마는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트로이는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계속해서 다시 만들어지는 기억이라고. 돌과 나무, 발굴과 영화, 유적과 항구—이 모든 것이 겹쳐질 때, 트로이는 여전히 살아 있는 이야기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