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건축 (신전편)-1화

고린토스의 평지의 아폴론신전

by 향지소피아


1. 산이 아니라 평지에서 시작하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동부, 코린티아(Corinthia) 주에 속한 고린토스.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약 80킬로미터, 두 바다—에게 해와 이오니아 해—를 잇는 지협 위에 놓인 도시다. 지도 위에서는 가느다란 연결부처럼 보이지만, 고대 세계에서 이곳은 동서 교역의 결절점이었다.

긴 해안선과 돌산 사이를 가르며 한참 달리던 버스는 마침내 고대 고린토 유적지에 도착했다. 창밖으로는 은빛 잎을 흔드는 올리브 농원이 펼쳐졌고, 멀리 삼각형으로 솟은 바위산의 윤곽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크로코린토스. 돌처럼 단단한 그 산은 이 도시의 배경이자 방패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신전이 그 산 위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폴리스에서 가장 높은 아크로폴리스는 언제나 신성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보다 위에, 도시보다 높은 곳에 자리하는 것이 고대 그리스의 일반적 공간 감각이었다.

그러나 고린토스는 그 예상을 뒤집는다.

신전은 산이 아니라 평지에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매우 넓다.

고대 고린토스의 유적지에 들어서면 먼저 시야를 채우는 것은 험준한 경사가 아니라 광활한 터전이다. 그 위에 굵은 기둥들이 서 있다. 산은 뒤늦게 배경으로 물러난다. 이곳에서 『여행과 건축』은 평지에서 시작된다.


2. 아폴론, 도시의 질서가 되다



이 평지 한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기원전 6세기 중엽에 세워진 아폴론 신전의 기둥들이다. 현재는 일곱 개의 도리아식 기둥만이 남아 있으나, 한때 이곳은 도시의 중심이었다.

아폴론은 단순한 예언의 신이 아니다. 그는 빛과 조화, 질서의 신이다. 음악과 수학, 비례와 균형을 관장하는 존재. 고린토스가 선택한 수호신은 바로 이 ‘질서의 신’이었다.

해상 교역으로 번영하던 항구 도시, 동서의 물자가 교차하던 전략적 지점. 고린토스는 활기와 욕망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그러한 도시가 아폴론에게 신전을 바쳤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번영을 유지하려면 질서가 필요하다. 욕망을 통제하려면 비례가 필요하다.

아폴론은 도시의 윤리이자 구조였다.


3. 생활 세계 한복판에 선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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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박사과정에서 미학을 전공했으며, 소설쓰는 작가입니다. 아이들과 독서 논술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여, 세계여행관련 글을지속적으로 발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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