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냐 여행 후에 다시 읽는 <돈키호테>
2023년 겨울 크리스마스와 연말, 2024년 신정을 낀 10여일의 일정으로 포르투칼과 에스파냐 여행을 다녀왔다. 포르투칼의 리스본과 에스파냐의 세고비야,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몬세라토,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가우디의 건축 컬렉션이 있는 바르셀로나! 어느 한 곳인들 마음에 들지 않은 곳은 없었다. 잘 차려 놓은 성찬에 초대 받은 느낌이었다. 포르투칼에서 에스파냐로 국경을 넘어갈 때 끝없이 펼쳐졌던 안개, 안개속의 올리브 나무, 코르크 나무, 오렌지 빛 혹은 적갈색의 토양, 마치 다른 행성에 도착한듯 했다.
포르투칼에서 에스파냐로 가는 길에 버스에서 찍은 안개 낀 시골마을.
광활한 시골 마을
에스파냐 여행을 다녀 온 뒤 줄곧 내 손에서 떠나지 않은 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돈키호테>였다. 물론 <돈키호테>를 처음 읽은 것은 아니다. 여러 버전의 번역 책들이 있기에 이미 여러번 읽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록 번역판이긴 하지만 성인용 완역본으로 된 것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이 1, 2권으로 이루어진 책인 줄 몰랐다. 1권이 출간하고 난 뒤 십년 후에 2권이 출간되었다. 독서회 모임에서 같이 읽고 논의하기로 한 책이라 한달 동안 줄곧 이 책만 읽었다.
<돈키호테>는 너무 많은 기사이야기를 읽어 기사이야기를 현실로 생각하고 급기야는 자신도 오십의 나이에 편력기사가 되겠다고 길을 나서는 시골 귀족의 이야기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너무 게임을 많이 하면 온통 머릿속이 게임의 세계로 가득차 있듯이? 아니다. 내 경험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 좀더 설득력이 있겠다. 나도 인상적인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며칠동안 머릿속에 그 책이나 그 영화 이야기로 가득하고, 그 세계에 푹빠져 산다. 이런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돈키호테도 이해할만하다.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돈키호테는 기사가 되어 세상의 불의와 싸우고, 정의를 바로 잡겠다고 길을 떠난다.하지만 온갖 포폭절도하고 가슴 철렁한 우여곡절을 겪고, 죽음의 문턱에서야 제정신을 찾는다.
<돈키호테 1>저자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미겔 데 세르반테스출판시공사발매2015.05.29.
<돈키호테>는 현대소설의 효시로 지칭되어지는 소설이다. 출생지는 에스파냐이며, 지은이는 세르반테스이다. 출생년도는 지금으로부터 400년전이란다. <돈키호테>는 총 2권으로 된 책이다. 그 볼륨에 있어서도 압도적이지만, 1,2권이 발행된 시차 또한 범상치 않다.
< 돈키호테 2>저자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출판시공사발매2015.05.20.
1권이 출간된 뒤 10년이나 흐른 뒤에 책이 나왔고, 2권이 출간 된 지 얼마지나지 않아 저자인 세르반테스는 세상을 떴다. 50세란 나이에 돈키호테 1권을 출간했고, 10년 뒤이면 60세 정도에 타계를 한 셈이다. 추측컨대 2권을 쓰느라고 혼신을 다했고, 영혼을 갈아 넣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여파로 세상을 떠났을까? 공교롭게도 세르반테스가 타계한 날 세익스피어도 세상을 떴고, 그 두 문호의 죽음을 맞이한 날을 세계 책 (4월 23일)의 해로 정했단다. 성경 책 다음으로 세계문학 작품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약 5억부이상 팔렸단다.
에스파냐의 수도 마드리드 시내로 진입하는 중이다.
에스파냐의 수도 마드리드의 관문
돈키호테와 시종 산초 판사의 동상이 보이고, 그 뒤에는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의 동상이 보인다.
에스파냐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유산이자 정체성을 상징하는 조각상이다.
세르반테스의 앞에 이상주의인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인 시종 산초판사의 동상이 대비되게 표현되어 있다.
스페인 광장에 있는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상 정면 (1929 년 제작) / 동상의 뒷면
실제로는 농부의 딸인데 돈키호테가 귀공주라고 착각한 둘시네아 (풍자 표현이다)
현실의 둘시네아.
좌에 앉아 있는 귀부인이 들고 있는 책도, 우측의 인물들이 보고 있는 책도 <돈키호테>이다. 성경책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책이 바로 <돈키호테>이다. 그것을 조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세르반테스, 그가 오른팔에 가지고 있는 하얀 석판은 자신이 지은 <돈키호테>이다. 결코 범상치 않는 삶을 경험했고, 그러한 경험들이 <돈키호테>속에 녹여 있다. 그리고 지금 세르반테스는 세계적인 대문호가 되었다.
에스파냐 사람들이 사랑하는 국민작가로 대접받고 있는 세르반테스의 동상 앞에서.
마드리드에서 몬세라토로 가던 중에 ( 돈키호테가 늙은 말 로시난테를 타고 저 광활한 평원을 달렸을까?)
에스파냐 여행 후에 돌아와서 <돈키호테>1, 2권을 한 달 정도 읽으면서 행복했다. 소설 속에서 돈키호테가 편력을 하는 과정 중에 나오는 지명들이 나를 다시 한번 설레게 했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고향인 라만차에서 출발하여 , 엘 토보소, 몬티엘 평원(풍차 사건 장소), 시에라 모레나(산악지대), 바르셀로나를 거쳐서 다시 라만차로 돌아온다. 그 외로 소설 속에서 톨레도, 그라나다, 사라고사 같은 지명이 언급되는 데, 여행 중에 이곳들을 둘러 봤기에 머리속에서 장면들이 그려졌다. (물론 400년 전의 공간과는 많은 격차가 있겠지만.)
사실 돈키호테의 고향인 라만차 마을인 콘수에그라 성과 콘수에그라 언덕의 12개의 풍차가 있다고 한다.
우리 여행자들은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산등성이에 있는 풍차를 관망만 했어야 했다. 버스에서 순간포착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돈키호테>가 단순히 황당한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생각했지만, 세대를 달리하면서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인생을 꽉 채워서 살고 난 이즈음 다시 읽어보니 정말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번에는 <돈키호테>를 지은 작가 세르반테스가 내게 실존적으로 다가왔다. 세르반테스는 시공을 통해 검증받은 대문호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재발견한 것은 작가 세르반테스의 삶의 여정이었고, 그 삶이 고스란히 <돈키호테> 책 속에 녹여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어도 힘이 세다. 불멸을 작품을 남기고 간 죽은 자를 산 자는 이길 수가 없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인하여 순문학의 입지가 약해지는 이 시대, 문학인들이 문학 본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스토리셀러로 전향하는 이 시대에도 당당히 대문호로서의 위상을 굳히고 있는 거장의 명작을 다시 접하고 정좌한다. <돈키호테>는 내 서재에 간직될 것이며, 십년 후에 다시 읽어볼 셈이다. 그 때는 어떤 느낌일까? 여러분은 여행 후에 다시 읽고 싶었던 책이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