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사고자. 입원 기간 2주
시간을 삼켜 내는 것이
삶을 삼켜 내는 일이
턱
턱
턱
가슴에 걸려, 얹혀 내려가지 않는다.
구역질처럼 생이 넘어 올라온다.
토악질처럼 올라오는 소화되지 못한 생을
참아낸다. 삼켜낸다.
토사물 같은 나의 삶을 그렇게,
참아내며. 매 순간을
빼앗긴 물품 목록
안대 : 따듯한 보온 안대를 가져왔는데, 끈이 길어서 반납했다. 죽으려 하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구나.
닌텐도 : 안될 것 같다고 했잖아. 어쨌든 시도는 좋았다.
스테인레스 컵 : 그냥 텀블러 가져올걸. 아니다 그것도 똑같나?
철제 책 스탠드 : 설마 했는데 역시나. 어쩔 수 없지.
끈나시 : 끈이 달려서 안된단다.
이렇게 별별 도구로 죽을 수 있었으면, 나는 왜 그렇게 죽는 방법에 골몰했을까. 우습다. 죽기는 정말 쉽구나.
7월 3일
몇 번째 일기인가? 아마 내 일기는 버려지기 위해 쓰이는지도 모른다. 문득 내가 썼던 글들, 가슴에 남아 홧홧한 눈가를 누르며 옮겨 적었단 문장들이 떠오른다. 나 떠난 후 누가 볼까 허둥지둥 버렸으면서, 꼭 이런 때 가끔씩 아쉬워지는 것이다. 과연 이 일기는 버려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 글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드디어 바야흐로 폐쇄 병동에 입원했다. 코미디도 이런 촌극이 따로 없지. 어쩌자고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구름이, 꼭 나의 현실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도 알 수 없는 방. 커튼 하나 없는 병상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수없는 검사를 하러 간다. 이제 나는 간호사가 대동하지 않으면 함부로 어디도 갈 수 없다. 웃기지. 난 내 발로 걸어 들어왔는데. 이렇게 가로막으니 괜스레 뛰어 나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첫날엔 심전도, 엑스레이를 찍었다. 이 검사 비용은 또 얼마일까. 내 생활 예치금, 전화카드, 비급여 치료비를 가족들이 감당하고 있는데. 습관 같은 죄책감이 또 목을 움켜쥔다. 이게 나의 병인가. 병동에는 심각한 사람도, 명랑한 사람도, 어린 사람들도 있다.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중학생 여자애의 어미가 과자를 한가득 들여보냈다. 딸 애의 빨랫감을 가져가고, 빨래를 새로 하고, 생때같은 어린 딸을 이곳에 보낸 사연은 무엇일까. 어미는 무슨 마음으로 과자를 사고,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딸을 두고 집으로 돌아갔을까. 이곳에 가족을 강제로 입원시킨 사람들, 사연들이 너무 무겁고 하염없어 나의 마음이 힘들다.
이곳엔 샤워 호스가 없다. 줄, 끈, 쇠붙이는 전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젠 오히려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이곳의 화장실은 단 한 칸. 문이 온전치 못하고 밑이 뻥 뚫려있다. 면회도 금지. 하나뿐인 공중전화는 간호 스테이션 앞에 있다. 내일부턴 뇌를 자극하는 전기치료를 받는다. MRI도 뇌파 검사도 한다. 정신과 초진 입원 환자는 MRI가 보험 처리가 된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얼마큼 미쳐 보일까.
평생 해 본 적 없는 생각이 든다.
7월 8일
오늘은 웬 환자가 실내 자전거에 오줌을 지렸다. 그야말로 가지가지 지옥! 일에 시달려 땀 투성이가 된 가엾은 남자 간호사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닦아도 닦아도 불결해서 휴지를 잔뜩 깔고 바이크를 탔더랬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식후 자전거를 타는 것이 의식처럼 굳어졌다. 빼먹겠다 생각하니 영 몸이 찌뿌둥하고, 애써 지킨 약속을 깨는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땀을 빼고 샤워를 하고, 조금 젖은 머리로 창 앞에 앉았을 때 후두둑 빗줄기가 떨어졌다. 이내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고 우릉 쾅쾅 천둥까지 요란하게 한바탕 치는 것이었다. 시끄러운 소리. 역설적이게도 완벽한 고요와 평화. 얼마 만에 느끼는 평화로움인지!
아이들의 단체 게임이 끝나면 깨질 찰나의 평온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귀한 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아예 몸까지 창쪽으로 틀어 본격적으로 감상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참 신기하지. 이곳을 마치 수련회나 동호회쯤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수없이 들락거려 친분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리를 만들어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사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저리 모여 웃고 떠들고 있다. 정신병원 폐쇄병동 안에서도 웃음이 저렇게 거리낌 없이, 아무 상관없다는 듯,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냥 웃음'이 있다. 평범한 웃음이 있다.
세상은 말로 쓰인 것보다 가볍다. 언어가 단정하는 의미의 위압감. 그 무게는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우스갯소리 같다. 아마 감옥도, 매춘굴도, 깡패 소굴도, 내가 모르는 공포가 도사리는 그 모든 장소들도, 생활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그저 웃긴 소리.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 서려있는 코미디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정신병자가 소리를 지르고, 자전거에 오줌을 싸고, 각자의 가정을 부수고 들어왔을 인간이 있음에도 인간처럼 산다. 그리고 나 또한 그 구석에서 그저 나처럼. 내 세계를 무너뜨릴 뻔하고 왔음에도 천연덕스럽고 염치없이, 멀쩡한 나처럼 살려고 한다. 그리고 저들을 삐쭉한 눈으로 흘기며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라며 끌끌 혀를 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