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라는 이름의 벽들

장애가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 세상

by 윤호근

차별이라는 이름의 벽들


차별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종차별, 빈부격차로 인한 차별, 소수자에 대한 차별, 민족 간의 차별,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까지.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차별이 존재한다.


나는 어린 시절에는 차별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아니, 정확히는 모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내 삶 곳곳에 차별이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가족과 깨댕이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내가 만났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차별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들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국민학교 3학년 1학기 학교 가기 싫어서 가방을 바다에 던져버렸던 일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친구들의 눈초리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들 속에는 호기심과 동정, 때로는 회피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중학교 때는 체육수업을 하고 싶었다. 친구들과 함께 운동하고 싶었다. 하지만 체육선생님은 나를 교실에 남겨두고 자습을 시켰다. 배려라는 이름의 차별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다 하는 미팅에 한 번도 끼워주지 않았다.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또래들처럼 만남을 원했지만, 아무도 나를 그런 자리에 초대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비슷했다. 후배 남직원이 있었는데, 후배 여직원이 그에게 미팅과 소개팅을 주선해 주었다. 그 후배는 결국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까지 했다. 나는 그 후배 여직원과 몇 년을 함께 근무했지만, 단 한 번도 소개팅이나 미팅 제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차별이 있었다. 성가대 지휘자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목사님은 내가 장애가 있어서 성도들이 싫어할 것 같다고 하셨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배웠는데, 현실은 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시험을 보고 면접을 봤을 때도 탈락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장애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차별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 깨땡이 친구들, 그리고 몇몇 여사친들은 유일하게 차별 없이 나를 대해주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그저 한 명의 사람일 뿐이었다. 장애인이 아닌 그냥 친구였고, 가족이었다.


우리 사회는 많은 법안들이 있다. 그중에서 장애인복지법, 장애인 차별금지법, 이 시행되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진정한 차별 없는 사회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멀리 있는 것 같다. 법으로는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편견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차별이 없는 세상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서로 다르고,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할 때 차별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겪은 차별은 단순한 개인적인 차별이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차별이다.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차별 말이다. 개인의 편견은 교육과 만남을 통해 바뀔 수 있지만, 사회적 차별은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해결될 수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차별이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삶의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는 일일 수 있다.


내가 겪은 차별들을 되돌아보며 느끼는 것은, 차별받는 사람의 아픔을 정말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차별받아본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형태의 차별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더 깊은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차별은 받는 사람에게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다. 차별하는 사람도, 그것을 방관하는 사회도 함께 병들어간다.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희망한다. 언젠가는 장애가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 세상이,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그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내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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