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
중학교 때 체육시간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체육관이나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던 기억이 없다. 교련 시간은 있었던 것 같다. 군사훈련 같은 걸 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흐릿하다. 아마도 나는 늘 교실에만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다리가 불편한 나를 배려해 주시는 체육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운동장으로 나갈 때 나만 교실에 남아 있는 것을, 나는 특별한 대우라고 여겼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모든 것이 달랐다.
고등학교 체육선생님은 럭비선수 출신이셨다.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우렁차셨는데, 나에게는 특별한 분이셨다. 그분은 내게도 체육시간에 참여하라고 권하셨다.
"야, 너도 나와. 함께 해보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나도 정말 친구들과 함께 체육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선생님의 격려에 용기를 냈다. 그렇게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하는 체육시간이 시작되었다.
물론 모든 종목을 다 할 수는 없었다. 달리기나 축구 같은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철봉만큼은 달랐다. 턱걸이와 평행봉에서만큼은 나도 친구들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잘했다.
다리가 불편한 대신 상체 근력이 발달했던 것 같다.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할 때의 그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평행봉에서 몸을 지탱하며 여러 동작을 해낼 때의 성취감도 마찬가지였다.
체육시간만 되면 나는 철봉과 평행봉으로 달려갔다. 친구들이 농구나 축구를 할 때, 나는 묵묵히 철봉에 매달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턱걸이 횟수를 늘려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우리 때는 대학 입시에 체력장 시험이 있었다. 달리기, 턱걸이, 윗몸일으키기, 던지기 등 여러 종목으로 체력을 측정했다. 나는 달리기만 빼고는 모든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턱걸이와 윗몸일으키기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달리기는... 완주하는 것이 목표였다. 친구들보다 훨씬 느렸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결국 나는 체력장에서 총 20점 만점을 받았다. 달리기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다른 종목에서의 높은 점수가 이를 만회해 주었다. 그때의 성취감은 정말 대단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 체육시간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은, 아마도 내가 늘 교실에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체육선생님은 장애가 있는 나를 배려한다는 생각으로 체육수업에서 제외시키셨던 것 같다. 그때는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진정한 배려가 아니었다는 것을. 고등학교 체육선생님처럼 나에게도 기회를 주고,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진짜 배려였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장애로 인해 배제당하는 것이 훗날 내가 마주하게 될 불평등한 사회의 작은 시작이었다는 것을. 체육시간 하나쯤이야 하며 가볍게 넘겼던 그 순간들이, 사실은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만난 그 럭비선수 출신 체육선생님 덕분에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장애가 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나도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철봉에 매달려 있던 그 시간들이 내게는 꿈을 주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용기를,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주었다.
지금도 가끔 철봉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매일같이 철봉과 평행봉에 매달렸던 그 시절, 그리고 나에게 기회를 주셨던 고등학교 체육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