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푸드트럭에 미쳐 전세계 푸드트럭 견학을 다니던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나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약 1년정도 일하고 있었다. 영업 사원어서 연봉과 인센티브도 나름 괜찮았고 재택근무였기에 내 시간도 유연하게 쓸 수 있었다. 그런데 평생 열정적으로 살아오던 나였는데 무언가 재미와 열정을 느끼지는 못하였다.
그 때, 약 2년간의 푸드트럭 견학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종이 한 장에다 휘황찬란한 그림을 그리더니 푸드트럭을 하자고 하였다. 꿈은 멋있어 보였지만 현실적으로 뚜렷하거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또한 푸드트럭? 그걸로 사업을? 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OK를 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그 친구의 진정성이었다. 푸드트럭을 하고 싶어서 배낭하나 매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돌아이가 또 있겠는가. 두 번째는 내적 동기였다. 나는 어릴적부터 '팀'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동네 친구들과 축구를 하면 나는 경기를 하는 것도 좋았지만 같이 하는 친구들과의 훈련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대한민국 민속놀이가 된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 게임을 하는 것도 물론 좋았지만 그것보단 길드를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하였다. 오죽했으면 길드 카페를 만드려고 밤새도록 코드를 찾아 넣으며 카페를 구축했다. (길드 마스터가 중학생이라하면 사람들이 가입을 안할 것 같아 나이까지 속였다...) 대학교 밴드 활동 할 때도 기타치고 노래부르는 것도 너무 좋았는데, 밴드가 더 좋은 환경과 좋은 기회에서 공연을 하는 장을 만들고 실력이 부족한 친구들을 트레이닝하는 일을 더욱 즐겼다. 그래서 나는 멋있는 '팀'을 만들고 싶어서 창업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입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2018년 4월 벨기에 감자튀김이란 아이템의 '벨지움트래블' 이란 푸드트럭을 만들어 전국 축제를 누비며 열심히 감자튀김을 팔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재밌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정말 고생하였다. 무더운 여름 야외 현장에서 180도가 넘는 튀김기 3구가 있는 트럭 위에 있으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감자튀김이란 아이템으로 같이 입점한 트럭들을 모두 제치고 매출 1위를 달성할 정도로우리는 열정적이고 재밌게 장사를 하는 팀이었다. 그 때 함께 했던 팀원들 모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함께 해주고 있는 팀원들이 있다. 너무 감사한 친구들이다.
벨지움트래블을 운영하면서도 우리는 '판'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기에 푸드트래블이라는 법인을 만들고 지역 축제 푸드존 기획 및 운영, 자체 푸드트럭 페스티벌 기획 등 푸드트럭으로 오프라인 F&B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병행했다. 이 모든 걸 4명이서 했기에 감자튀김 튀기다 미팅가고, 트럭 뒤에 테이블깔고 노트북켜서 급한 행정업무 처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우리는 푸드트럭이 뛰어놀 수 있는 판을 계속 만들면서 우리 브랜드도 그 판 위에서 함께 뛰어 놀았다.
그렇게 성장하던 중 2019년 12월 그 녀석이 왔다. 코로나19
우리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였고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페스티벌이 핵심이었다. 거기다 대학가에 벨기에 펍 컨셉의 벨지움트래블 매장을 만들었다. 오픈한지 두 달만에 대학교 수업은 모두 비대면으로 대체되었다.
암담했다.
처음에는 3개월 뒤면, 조금만 지나면이라고 생각하며 이악물고 버텼다. 그런데 6개월쯤 지나니깐 이대로 가다가는 회사를 문닫아야 할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살 방법을 강구했다. 할 줄 아는 것은 푸드트럭 뿐이었다.
이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연예인 커피차' 였다.
신기했다. 코로나였는데도 촬영장은 계속 운영이 되었고 연예인 커피차 시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도 연예인 커피차 쪽으로 진출하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평생 아이돌에 관심없던 내가 팬클럽과 커뮤니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디씨갤러리, 다음&네이버 카페, 트위터 등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보고 어떤 심리와 프로세스로 커피차를 선물하는지 학습하였다. 약 2주간 공부를 미친듯이 하였고 내린 결론은 '여긴 들어가면 안된다' 였다. 팬클럽들은 가장 민주적인 집단이었다. 커피차에 현수막 문구 하나까지도 투표로 진행한다. 우리는 직접 푸드트럭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주요한 비즈니스는 전국에 있는 푸드트럭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오프라인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연예인 커피차 쪽을 우리가 마케팅과 세일즈를 해서 유치한다고 했을 때, 팬클럽들의 수준 높은 요구 사항들을 다 반영하면서 트럭 대표님들에게 고객을 연결시켜 줄 수가 없었다.정확하게 말하면 ROI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기업으로 선회하였다.
건설 현장, 제조업 현장, 유통사 현장 등 현장 근로자분들을 위한 맛있는 선물을 주는 것이 어떨까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블로그를 공부하고 하나씩 키워드를 노출시키며 마케팅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1통의 전화가 왔다. "커피차 가능한가요?" "무조건 됩니다" 간절했다. 안되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1개의 전화가 오던 것이 5개, 6개로 늘어나더니 어느덧 하루에 많개는 40개 이상의 문의가 외게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고객은 단연 포스코였다.
회사서 가장 오래된 팀원이 우리가 기업용 푸드트럭 단체주문 서비스를 운영한지 7개월쯤 되던 시기에 갑자기 허겁지겁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200곳에 가야합니다' 라고 하였다. 우리는 바로 회의실에 모여서 작전 회의를 하였다. 일단 바로 다시 전화해서 어떻게 해서든 고객사의 메일주소를 받아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고객사에게 오후 2시까지 가능한 방법 찾아서 연락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3가지 정도의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보고 가능한 방향을 찾게되었다. 그리고 반신반의하던 포스코에서 긍정적인 목소리로 '내일 바로 미팅하시죠' 라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부산에 위치한 회사다. 거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바로 서울행 기차를 탔다. 그리고 포스코 전국 200개 고객사 감사 커피차 이벤트를 수주하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우리는 선물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의 비용을 투자해서 현장 스케치 영상을 제작했다. 그리고 포스코에게 영상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 담당자는 다음해 승진하였다.
그렇게 이어진 포스코와의 인연은 4년째 계속되고 있고 처음에는 마케팅팀에서 사용하였는데 지금은 포스코의 5개 팀 이상과 함께 하고 있으며 계열사, 협력사로까지 확장되었다. 간절함. 이 하나의 스노우볼이다.
그렇게 회사는 2020년 연말에 시작한 기업 푸드트럭 단체주문 서비스로 2021년부터 현재 2023년까지 빠르게 성장하여 현재는 26명의 팀원이 함께 일하는 회사가 되었다.
2024년 회사는 또 다시 변화의 필요를 외치고 있다.
우리는 축하, 감사와 같은 좋은 날, 즐거움이 배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콘텐츠 비즈니스이다. 즉 기업이 호황일 때 함께 좋아진다. 요즘 대기업부터 모든 기업들이 미래 생존에 대해 고민과 어려움이 많은 시기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코로나 때의 우리팀과 지금의 우리팀은 다르다.
대한민국 최고의 푸드트럭 전문팀이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했던 팀원들이 있다. 더 이상 나와 동업자 둘만의 회사가 아니고 우리 둘이서 해결하지 않는다. 팀원들이 종종 나에게 말한다. 혼자 다 짊어질 필요 없다고, 본인들도 같이 하겠다고. 내가 느끼는 최고의 성취이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인의 일에 몰입하고 사랑하고 열정있는 사람들이 모인 팀.
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내일은 월요일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설레임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이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한다. 축복같은 일주일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