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반추] 버트란트 러셀, 행복의 정복(1)

행복에 관한 소고

by 알리오올리오


요즘 나의 관심사는 '행복'이다.

과거(라고 해도 사실 그리 멀지 않은 이전)만해도, 나에게 행복은 그다지 큰 고려요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행복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별로 생각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20살 이후, 아니 그 전부터 나의 삶은 그저 주어진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는 느낌이었다.


고3때는 왠지 대학을 가야할 것 같아서 공부했고, 대학에 가서는 그냥 해야 할 것 같아서 학점을 관리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졸업할 때가 되자 취업을 해야할 것 같아서 원서를 넣던 중 취업이 됐고, 회사를 다니면서 주어진 업무를 하다보니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모든 선택은 내가 했지만 알고보니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각 단계에 참여를 한 것은 나다. 그러나 그 참여의 과정과 동기에는 큰 목적성은 없었다. 왜 이 학교여야 하는지, 왜 이 학과여야 하는지, 왜 이 회사여야 하는지, 각 단계를 통해 내가 이뤄내야 하는 목표물은 무엇인지.. 이 모든 것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고민을 쎄게 하고있는 중이다. 어떻게보면 고민을 미룬 것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고 있다고 봐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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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는 왜 서른 중반을 앞둔 이제와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

라는 물음에, 나의 답은 "내 삶의 목적성과 방향성이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같아서" 라고 하겠다. 매 단계마다 열심히는 살았다. 그러나 큰 실체를 그려놓고 열심히 산 게 아니라, 그저 주어진 단계에 충실했던 것 뿐이었다. 문제가 없던 상황에서는 이상이 없었다. 소위 잘 프로그래밍 된 회로에서 오류없이 산출(?)이 나타나고 있었으니깐. 문제는 문제가 나타나버렸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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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회로가 드디어(?) 고장나버린 것이다. 최근 1년 반 동안 회사에서 맡았던 업무가 나에겐 너무 과중하면서도 어려웠고, 소위 공석이었던 전임자의 짬처리(?) 비슷하게 당하게 되면서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 지금이야 이렇게 단순하게 '과부하' 한 마디로 모든 것을 표현하지만, 그 안에는 정말정말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각종 민원부터 시위, 싸움, 돈, 그 외 여러가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슈들..


그 와중에 나에게는 다행히도(?) 사랑스러운 새 생명이 생겨난 것인데, 사랑과는 별개로 내가 케어를 해줘야하는 여러가지 가정 내 이슈들까지 맞물리면서, 나로써는 소위 '멘탈붕괴' 직전까지 갔던 상황이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빈번하게 있었다.


그래서 뭐 그거랑 니 행복이랑 어쩌라고?

너무 서두가 길었다. 결론은 위와 같은 상황으로 인해 나는 부득이 존재론적 고민(?)을 마주하게 되었고, 도대체 행복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사는가? 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에 빠져들게 되었다. 사실 무너져가는 나를 다잡기 위해 '행복'을 갈구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지 않을까?


원래는 이번 포스팅에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인용하며 나의 행복관에 잠정적으로 정리하고자 했으나, 글이 너무 길어졌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