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반추] 버트란트 러셀, 행복의 정복(2)

행복에 관한 소고

by 알리오올리오



책의 서두에 러셀은 행복에 들어가기에 앞서, 불행을 초래하는 유인에 대해 소개하는데, 그 중 나에게 깊게 와닿았던 것은 다음이다.



#1. 자기 안에 갇힌 사람


러셀은 첫 문장부터 정곡을 찌른다.


"짐승은 몸이 성하고 배가 부르면 행복하다. 흔히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러셀은 정확히 현대사회, 아니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불행의 문제를 지적한다. 지나친 쾌락에의 탐닉, 조급한 심리, 경쟁만 생각하는 심리, 무력감, 주변사람을 무시하는 태도.. 러셀은 결국 이러한 심리적 문제가 개인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트라우마에 기인할 수도 있고, 혹은 현대 사회의 제도적 문제에 기인할 수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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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안에 갇힌 사람은 크게 '죄인''자기도취자', 그리고 '과대망상자'로 나뉘는데, 유형은 달라도 이 세 부류의 공통점은 결국 자신이 삶의 지향점, 만족이라는 부분을, 오로지 지나친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이다.


화가가 되면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화가지망생이 된 화가이야기, 그러나 그에게 그림은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했다. 그 화가지망생은 자신을 돋보일지에 대한 관심만 존재하지 그림 자체에 대한 애정과 만족이 없었다. 아무리 기법에 대해 연구를 하고 탐독을 한들, 결국 그것이 그 지망생이 바라는 소위 '결과물'로 귀결되지 않는다면 그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만약 행복을 가져다줬다고 해도,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기법, 더 특유의 기법을 찾아 탐닉할 것이며, 그렇지 못한다면 그는 불행할 것이다.



나는 어떠했는가?


이 구절을 읽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의 불행의 원인은 거의 정확하게 위의 원인과 다르지 않았다. 최근 내가 탐닉했던 '이직'과 '금전'의 문제. 내가 과연 그 과정 자체를 본질적으로 즐겼냐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직은 나의 사회적 지위 상승과 불공정한(?) 처우 개선을 위한 수단이었다. 정말로 내가 원하고 근무하고 싶던 분야와 회사가 있어서 준비했냐면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공부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여건과 맞물려, 이 과정은 더욱 나를 옥죄었고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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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 이슈 또한 그렇다. 내가 진정으로 돈 버는 과정을 즐겼냐하면 결코 아니다. 물론 부동산 공부는 일정 부분 재미는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부동산 침체경기, 그리고 자주 매매하기 어려운 부동산의 특성상, 직접적인 결과물이 없던 부동산 공부의 흥미도 오래가지 않았다. 주식 공부는 더할나위 없다. 내가 왜 나의 시간을 희생해서 이 딱딱한 재무제표와 산업분석을 해야하는 지, '금전'이란 보상을 제외하면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진정한 고수와 행복을 찾는 자들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다. 구독하는 주식블로거는 20대 때부터 주식공부와 투자를 시작했다고 했다. 물론 초보시절 손해는 자주 보았으나, 그 과정 자체가 재밌었다고 하였다. 다른 유명 주식투자자는 육아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주식공부에 투자한다고 했다. 과정 자체가 흥미롭지 못한다면 결코 할 수 없을 행위다.(실제로 현상을 분석하고 맞춰서 결과물을 획득하는 과정에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유명한 부동산유튜버인 부읽남 또한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위 과정 자체를 즐긴다고 하였다. 최근 넷플릭스의 '데블스 플랜'을 보면, 하석진과 이시원 배우는 큐브퍼즐을 맞추고 감옥에서 새로운 게임에 도전한다. 지면 바로 탈락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겠다며 도전하게 된다.


이들이 바로 과정에서 행복을 찾는 자들이다. 순간 저 상황에 나를 대입해보았으나, 나라면 저렇게 선택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안전주의와 리스크 최소화를 고려하는 나의 특성상, 합리적인(?) 방식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닌, 리스크를 최소화하여 감옥을 탈출해 최종상금을 획득하는 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과가 중요한 사람들도 물론 있다. 만약 그 사람이 나처럼 행복에 관해 예민하지 않고, 자신은 오로지 그 과정만을 향한 일념으로 달릴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나는 그렇게 하라고 권하고 싶다. 실제로 그것은 내가 희구했던 인물상이기도 하니깐.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인물상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그 과정도 못지 않게 중요했고, 무엇보다 그 목표를 위한 여러 희생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위 삶의 방식을 내게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결국 나에게 있어선, 내 삶의 지향점을 결과물의 성취만을 목표할 것인지, 아니면 추구하는 과정을 중시할 것인지 정하고 이에 나의 행복을 맞춰가는 삶을 사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자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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