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전 집에 가고 싶은데요

by 쇼쉐이

"네? 집에 못 간다니요? 저 왕복 티켓 예매했고, 날짜도 제대로 맞춰서 왔는데 왜 안 된다는 거죠?"
"죄송합니다, 고객님. 고객님의 고향 행성에 현재 비행선이 착륙할 수가 없어요. 쇄국정책 지지 시위가 일어나서 공항이 폭격당했다고 하네요. 저희도 도와드리고 싶지만, 착륙할 곳이 있어야 비행선을 운영할 수 있거든요. 우선은 여기 공항에서 며칠 머무실 수 있는 숙소를 제공해드릴 테니, 사태가 잠잠해질 동안 그곳에서 지내세요."
"아니 전 집에 가야 하는데... 꼭 여기 예매한 공항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냥 스트라이파 행성에 있는 데면 아무데나 좋으니까 남는 티켓 없나요? 행성까지만 가면 돼요. 제가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고객님이 예매하신 공항이 위치한 지역뿐만 아니라 행성 전역에서 벌어지는 시위라 현재 스트라이파 행 비행선은 아예 운영을 중단한 상태예요. 현재로선 기다리실 곳을 제공해드리는 것말고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스트라이파 행성에 가는 비행선 운영이 재개되면 곧바로 알려드릴게요."

직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무언가를 타닥타닥 컴퓨터에 입력하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내게 카드와 종이 몇 장을 건넸다.
"여기요. 카드키에 쓰인 번호가 고객님이 묵으실 숙소 번호고요, 식권 몇 장도 드리니 당분간은 그걸 사용하시면 됩니다. 고객님을 스트라이파 행 비행선 대기 목록에 등록해두었으니 연락 기다리시면 되고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불편하신 점 있거나 물어보실 게 있으시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직원은 생긋 웃으며 '이제 내가 할 안내는 끝났으니 가주시겠어요?'라는 뜻을 전달했고, 나는 시무룩하게 발을 질질 끌며 데스크를 떠났다.

망할. 난 집에 가야 한다. 집에 가야 고향 행성 폭력 사태를 끝낼 수 있단 말이다. 당신들은 그 이유를 모를 테니 조금 설명해보겠다. 우리 행성은 우주 상 가장 우수한 연료인 프리모의 원료 프리모티가 펑펑 솟아나는 곳이다. 조상들은 이 연료를 두고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었다. 한쪽은 프리모티를 개발하기 위해 외부와의 교류가 필요하단 입장이었고 다른 쪽은 우리가 직접 개발해서 제한적으로 수출해야 한단 입장이었다. 확실히 우리에겐 기술력이 부족하긴 했다. 모두가 이 연료를 탐내는 바람에 서로 싸워대느라 우리 행성에는 쳐들어올 생각도 못하는 게 무력과 기술이 부족한 우리에겐 천운이었고.
하지만 외부 세력들의 다툼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정리되었고, 천천히 우리 행성은 외부 세력들의 공통 타겟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흐름을 읽은 사람들은 더 격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쇄국을 고집하는 무리들은 행성을 절대적으로 봉쇄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와의 교류를 아예 끊고 우리끼리만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의견은 국민 다수의 힘을 얻어 주류가 되었고, 개방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 수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우주 여행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었고, 심지어 허가제로 전환되었다.
모두가 우주를 제집처럼 놀러다니는 마당에 여행 허가제라니. 나는 연료 기술을 연구하는 학자였고 간신히 허가를 얻어내 기술 제국을 이룩한 행성 테크넬에 와서 수년 간의 연구를 했다. 그리고 이제야 그 연구의 결실을 얻어 스트라이파의 프리모 자력 생산을 눈에 앞뒀는데...
망할 정치인들. 점점 좁아지는 입지에 위기감을 느낀 개방파가 헐값에 프리모티 개발권을 팔아넘기는 조약을 맺으려 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분노해서 공항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결과 공항에 발이 묶였다. 미치겠네.


스트라이파에 어떻게든 연락을 해야 하는데 지금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를 모르겠다. 내 비자는 기간을 다해가니 연락을 하겠다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간 불법 체류자로 잡힐지도 모른다. 공항 안에서 이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최고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와 나는 숙소로 가 침대에 털썩 누워버렸다. 일단 눕고 생각해보자. 사태를 파악하려 나는 숙소의 TV를 켜서 뉴스를 봤다. 공적 연락은 허가제로 운영. 사적 연락은 모두 금지. 스트라이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적 연락만 가능이라... 공적 연락을 하려면 대사관이 제일이지. 근데 우리 행성에는 대사관이 없는 나라가 훨씬 많았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대사관도 얼마 없고. 테크넬 대사관은 있기야 하지만 이 상황에 굳이 껴들고 싶진 않겠지. 게다가 테크넬은 자기들 기술을 스트라이파에 수출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는 중인데 나를 도와줄 리가. 그러니 플랜 A는 안 된다.
그럼 플랜 B. 스트라이파 근처 행성으로 간 다음 방법을 찾는 것. 이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밀항을 시도해야 할 텐데 쇄국정책으로 싸우고 있는 나라에 폭격을 감수하며 착륙할 비행선을 구하려면 내 전재산을 줘야겠지. 그것도 선불로. 근데 내 전재산은 고향 은행에 있고, 계좌 거래는 행성 전역을 휩쓸고 있는 시위로 잠시 막혀 있을 거다. 대가를 지불할 수 없으니 태워주질 않겠지. 이것도 포기다.
그렇다면 플랜 C만 남는다. 공항에서 빈둥빈둥 기다리기. 계획이 없으면 안절부절못하는 내 성격에는 최악의 계획. 사적 연락이 금지되어 있으니 가족들에겐 고사하고 내가 소속된 대학에도 연락할 길이 없다. 근데 공무원도 아닌 내가 사적 연락 없이 어떻게 공적 연락을 할 수 있지? 내가 여기서 기자회견을 하면 그건 전달되려나? 근데 스트라이파가 프리모 자력 개발을 할 수 있다고 공표하면 내 고향 행성이 대비할 틈도 안 주고 다들 쳐들어올 텐데. 내가 귀향할 때면 스트라이파는 망하기 직전 상태이겠지. 며칠만 늦게 시위가 일어났다면, 아니 조약 체결을 미뤘다면 이럴 일이 없는데.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각하던 나는 가장 가능성이 낮고 그나마 실현 가능한 계획 하나에 다다른다. 스트라이파에 성간 연락을 하자. 그러려면 성간 우주 발신기를 만들어야 하고, 그걸 스트라이파의 누군가가 수신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게 가장 나은 방법이다. 지금 갖고 있는 행성 내 발신기에 이것저것 붙이면 성간 우주 발신기로 대강 기능할 테고, 수신자는 대학으로 맞추면 된다. 과학 괴짜가 가득한 그곳에선 분명 누구 하나는 외부 신호를 감지하려 애쓰는 기계 하나 정도는 켜두고 있을 것이다.
침대에 흐늘흐늘 늘어져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성간 우주 발신기에 필요한 부품을 종이에 쓴다. 증폭기. 이건 찾기 쉽겠군. 각종 전선. 내가 가진 물건들 몇 개 뜯으면 된다. 나사와 공구. 이건 내가 갖고 있고. 프리모 엔진. 이건... 찾기 어렵겠는데. 일단 찾아보고 안 되면 뭘 개조하든 해야지. 성간 연락의 동력이 될 만한 건 프리모 엔진이 유일하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엄청나게 넓고 천장이 없는 곳. 성간 신호를 방해할 장애물이 없어야 하고 프리모 엔진의 어마어마한 동력을 버틸 곳. 공항이니 그런 곳은 찾기 쉽다. 들어가는 게 문제지.

이제 할일이 생겼으니 부품을 찾아보자. 필요한 전선은 내가 가진 시계, 충전기, 여분의 행성 내 발신기(어차피 쓸 일도 없으니까)를 분해해 얻었다. 증폭기는 혹시 남는 걸 가진 사람이 있을까 싶어 숙소 내 식당에서 사람들을 지켜본다. 테크넬에 입국하는 사람들 중 기술을 연구하러 오는 과학자는 엄청 많고, 그들 중 증폭기를 예비로 몇 개씩 갖고 다니는 사람은 흔하니까. 며칠 동안 식당에 살다시피 하고 나서야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 테크넬에서 잠시 같이 연구했던 동료, 버로테우스다.
"버로테우스!" 하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나를 돌아본다. "아 너구나! 오랜만이네."
나는 그에게 합석을 권하고, 그는 스스럼없이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행성의 문제에 대한 위로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의 끝없는 개인사로 이어졌다. 맞다. 버로테우스는 수다쟁이였다. 하지만 난 증폭기가 필요하니 말없이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의 이야기는 가족사를 거쳐 지금 작업 중인 행성 내 발신기에 다다랐고,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혹시 너 남는 증폭기 있어? 내가 숙소에만 있으려니 심심해서 기계나 좀 만지려 하는데, 증폭기를 다 써버렸지 뭐야. 근데 증폭기는 공항에 있는 일반 철물점에서는 잘 팔지를 않잖아."
"증폭기? 그러지 뭐! 몇 개나 필요한데? 지금 10개 있는데 5개까진 줄 수 있어."
"그럼 4개만. 나중에 꼭 갚을게."
"됐어. 나도 빌려간 게 몇 개인데. 그거 갚는 셈 치지 뭐." 버로테우스는 주머니에서 증폭기 4개를 꺼내 건넨다.
"고마워." 난 내 빈 컵을 슬쩍 내려다보며 말한다. "난 이제 일어나야겠다. 차도 다 마셨고. 테크넬에서 여행 잘해."
"응. 다음에 또 보자고."

증폭기를 구하자 발신기 개조는 금세 진행되었다. 이제 남은 건 엔진과 장소. 비행선 하나를 빌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비행선들이 늘어선 활주로와 비행선의 엔진은 성간 우주 발신기에 딱이었다. 근데 이걸 어디서 빌린담?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미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여기 가득한 게 활주로 위의 비행선인데 하나 빌리면 되지. 평소 같으면 미친 생각이라 했겠지만, 스트라이파의 상황 보고는 갈수록 뜸해졌고, 직원은 찾아갈 때마다 현재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만 했다. 한번은 비행선 엔진을 잠깐 쓸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미친 사람 보듯 보아서 얼버무리고 자리를 떠났다. 미친 선택을 하긴 싫었다. 하지만 난 정말로 집에 가야 한다. 가족들이 무사한지도 걱정되고, 걱정에 오랫동안 찌들어 살다보면 사람은 미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미친 과학자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활주로 점령 계획을 세웠다. 발신기에 달고 남은 증폭기 1개를 컴퓨터에 달아 공항 안내 방송 네트워크를 해킹했다. 현재 모든 비행선의 착륙을 잠시 금지한다는 방송을 내보냈고, 다들 어디서 나온 방송인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발신기를 들고 활주로로 나갔다. 과학자와 기술자는 입고 다니는 옷이 비슷했고, 나는 안내 방송 문제를 해결하러 뛰어다니는 기술자들 사이에 섞여 활주로로 슬그머니 향했다.
이제 활주로에 왔으니 비행선 하나만 찾으면 된다. 마침 노는 비행선 하나가 있다. 나는 엔진을 연결해 발신기를 작동시킨다. 신호를 입력하고 발신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꼼짝마! 손들어!"

지금? 진짜? 타이밍 한번 끝내주네. 귀향하는 것부터 타이밍 끝내주더니. 나는 손을 들고 돌아본다. "무슨 일이죠?"
경찰들은 공무집행방해죄니, 묵비권이니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았다. 발신만 하면 되는데. 그러다 단어 하나가 귀에 들어왔다. "테러범"
테러범? 난 테러범이 아닌데? 그래서 나는 "잠시만요" 하며 경찰의 말을 끊었다. 말을 끊을 줄 몰랐던지 경찰은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걸 말을 해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말을 이어나갔다. "난 테러범이 아니에요. 그냥 성간 연락 좀 하려는 거라고요. 발신 버튼만 누르게 해줘요."
벙찐 경찰은 날 한참 보았다. "왜 성간 연락을 하려는 건데요? 우리 행성에 무슨 짓을 하려고요? 스트라이파처럼 공항을 폭격하려고요?"
"아뇨 전 집에 가고 싶은데요. 집에 가려면 공항이 필요한데 왜 이걸 폭격하겠어요. 스트라이파의 사태를 진정시킬 방책이 저한테 있는데, 그걸 알리려면 지금 성간 연락 말곤 방법이 없거든요."

경찰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옆의 동료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뭔가 의논하는 듯 하더니, 다시 나를 보았다. "근데 그러려면 공항에 문의를 하셨어야죠. 이렇게 활주로를 점령하시면 어떡해요."
"사정이 급해서요. 이렇게 된 건 죄송하지만 비행선을 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정말 집에 연락하려는 거 맞아요?"
"정확히는 집은 아니고, 제가 일하는 대학인데요. 원하시면 입력한 신호 읽으셔도 돼요."
경찰들은 고개를 숙여 신호를 읽었다. 내 말이 맞다는 걸 확인했는지 다시 자기들끼리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 사이에 버튼 누르면 안 되려나? 내가 잠시 고민하던 사이, 경찰들은 의논을 끝냈는지 다시 나를 보았다.

"그러니까 스트라이파 사태 해결책을 갖고 계시고, 그걸 알려야 하는데, 스트라이파에 공적 연락이 불가해서 직접 연락하려 했다는 거죠?"
"네. 테크넬은 사적인 성간 연락이 불법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근데 활주로 점령은 불법이거든요. 원하시는 건 집에 가는 거고요?"
"네, 맞아요. 집에만 가면 돼요."

경찰들은 이 미친 짓을 벌이고도 얌전한 과학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들은 일단 상부에 내 상황을 알릴 테니 성간 연락은 중단하라 말했다. 나는 말을 듣는 게 낫겠다 싶어 주섬주섬 내 물건을 챙기고 일어섰다. 주변을 살펴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중간중간 카메라도 보이는 걸 보니 기자들도 있었다. 구경꾼들을 의식했는지 경찰들은 내 팔을 부드럽게 잡더니 공항의 어느 사무실로 나를 데리고 갔고, 거기서 전화 몇 통을 했다. 나는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전화를 끝낸 경찰들은 내게 상황을 전달했다. 뉴스에 이미 내 활주로 점령 사건이 나갔고 아까 경찰과의 대화도 그대로 방송됐다, 아마 스트라이파에도 이 소식은 전달될 테니 공적 연락은 필요 없을 거다, 스트라이파에서 연락이 올 동안 나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공항 구치소에 잠시 구금되어 있어야 한다, 다만 사태를 참작해 스트라이파와 연락이 끝나면 심각한 처벌 없이 집으로 돌려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흠. 집에 가고 싶던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데. 그래서 나는 경찰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정말 며칠 후에 스트라이파에서 나를 데리러 왔고, 나는 행복하게 집으로 갔다. 나를 태우러 온 사람들은 미친 과학자의 눈치를 보느라 행복하진 않은 것 같았지만. 뭐 난 집에 가니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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