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리 도리아 러셀, 『스패로』
작년 민음북클럽 하반기 패밀리데이 때 재작년 패밀리데이보다 수가 적어진 황금가지 책 목록을 아쉬워하며 뒤적이다 발견한 책인데, 철학적인 SF라는 말에 끌려 사서 읽게 됐다. 종교와 SF의 만남이라니 굉장히 신선하고 흥미로워 보여서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책을 펼쳤는데, 채 100페이지도 읽지 않았을 때 온몸에 전율이 왔다. 이 책은 걸작이다.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지만 이 책은 훌륭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책의 극 초반부만 읽은 셈인데도 탄탄한 구성과 치밀한 철학이 책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예감대로, 이 책은 끝까지 모든 게 그 자체로 완벽했다.
『스패로』는 2019년과 2060년 두 시간대를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이야기의 현재 시점인 2060년, 2019년 전후로 라카트라는 외계 행성에 나갔던 예수회 소속 탐사대 중 에밀리오 산도즈 신부 단 한 명만 살아 돌아온다. 예수회 소속의 탐사대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지구의 정부들이 뒤이어 보낸 탐사대가 발견하여 귀환하게 되었다. 산도즈는 라카트의 매춘굴에서 완전히 망가진 손과 함께 자신을 돌봐주던 라카트의 아이 아스카마를 살해한 직후에 구출되었는데, 총명하고 기민하던 그가 신체와 정신이 무너진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에 놀란 사람들은 라카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산도즈가 이렇게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산도즈는 예수회 신부들의 설득에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데...
한편 2019년, 푸에르토리코의 아레시보 천문대에서는 인간들을 AI 프로그램으로 대체할지 말지 그 경계에 서게 된다. 동료들을 내보내고 싶지 않던 지미 퀸은 AI와 자신의 연구를 대조해 더 능률적인 쪽을 택하자고 제안하고, 이 제안을 계기로 세계적인 프로그래밍 천재 소피아 멘데스와 일하게 된다. 경쟁자로 만났지만 멘데스에게 호감을 느낀 지미는 그녀를 친구들인 앤과 조지 에드워즈 부부, 산도즈에게 소개하고 이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지미는 외계에서 들려온 음악 소리를 프로그램으로 걸러내게 되고, 이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 연구가 시작되는데... 과연 어쩌다 산도즈는 언어 천재이자 아름답고 선량한 신부에서 외계 행성의 어느 매춘굴의 살인자로 변하게 된 걸까? 라카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책은 아주 조용하게, 하지만 아주 강렬하게 시작한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사망한 외계 행성 탐사대, 순결을 비롯한 모든 서약을 어기고 매춘굴에서 매춘부의 복장을 하고 아이를 죽인 살인자로 발견된 유일한 생존자이면서도 의문투성이인 자신의 과거에 대해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으려는 신부. 산도즈가 쉬이 입을 열지 않기에 조용하지만, 그 저류에는 굉장히 강하게 맥동하는 흐름이 느껴지는 도입부다. 게다가 이 모든 의문을 해결해줄 과거 시점의 이야기는 탐사대에 속한 모두가 행복한 상태로 시작하기에 현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더욱 독자의 흥미를 돋운다.
독자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하는 산도즈의 회상과 그에 맞물리는 과거 시점의 이야기를 번갈아 읽으며 차근차근 라카트의 퍼즐을 맞추게 된다. 어떻게 라카트가 신을 믿고 그 뜻에 따라 세상이 흘러간다고 믿던 신부가 감히 신을 의심하게 만들었는지, 왜 산도즈를 제외한 탐사대원들은 죽었는지 천천히, 하지만 치밀하게 작가가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SF이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종교적 고찰의 깊이가 엄청난다. 외계에 있는 행성으로 향하는 호기심 많은 인간들은 흔한 소재이지만, 이 책은 그 외계의 행성을 신의 존재를 믿는 이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체험하며 미지의 세계에 대해 인간이 느끼는 종교적 경이로움과 절망감을 신의 섭리라는 측면에서 그려낸다는 점이 새롭다.
산도즈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참새로 설명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한낱 참새가 떨어지는 것에도 신의 섭리가 작용한다는 말을 믿으며 살아왔다. 자신이 그 어느 곳에서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돌며 13가지의 언어를 배운 것에도, 빈민가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던 소년으로 살던 것에도, 수많은 직업 중 예수회 소속 신부가 되기를 택한 것에도 신의 뜻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 모든 게 자신을 라카트로 이끌기 위한 신의 계획이었고, 자신은 그 계획에 따라 외계의 존재들과 지구의 존재들을 이어줄 다리로 선택받았다고 생각한다.
신의 섭리가 작용한다는 생각은 예기치 못한 동료들의 죽음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그를 이끌었다. 깊은 슬픔이 가슴에 사무치지만, 그들이 그저 헛되이 사망한 것은 아닐 거라고, 신에게 필시 어떠한 뜻이 있어 일찍이 거두어가신 거라고 보면 조금은 아픔이 무뎌졌으니까. 적응하기 어려운 외계의 사회가 장벽으로 느껴질 때에도 이곳도 신의 창조물이라 생각하며 그들의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애썼다. 마태복음에도 나오듯, 한낱 참새의 추락에도 신의 뜻이 있는데 하물며 이 모든 생명체와 행성에는 어떻겠는가? 당연히 어떠한 뜻이 있을 테고 그는 그 뜻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거라고, 신이 안배하신 대로 따라가면 그 목적이 나올 거라고, 그 과정에서 동료들을 잃은 것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그는 동료들을 질병에, 알 수 없는 살해자에게, 외계 사회의 규칙에 잃어가면서도 신이 자신에게 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그가 도달한 곳은 짐승만도 못한 삶이었다. 인간으로서 자신과 다른 존재들과 같이 살아가고 그들을 이해하려 애쓰고 그 안에 담긴 신의 섭리를 들으려 애쓴 산도즈에게 주어진 건 차마 인간의 것이라 못할 삶이었다. 신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를 이곳으로 내몬 것일까? 무엇을 위해 산도즈는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라카트에 왔으며, 이곳에 적응했으며, 이곳이 안겨준 슬픔을 견뎌낸 걸까? 산도즈는 그 답을 찾지 못해 미쳐간다. 그는 신에 대한 딜레마에 부딪힌다. 신을 믿는다면, 신이 그만큼 잔혹하다는 걸 인정하고 신을 증오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는 신을 증오함으로써 자신이 살아온 삶의 원리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이토록 잔혹하게만 군 신을 사랑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에는 신의 뜻이 있었어야 하는데, 과연 이런 일에 신의 뜻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신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한낱 참새가 되어버린 산도즈는 자신의 추락을 신이 지켜보고 있었는지, 만약 그렇다면 왜 자신을 추락하게 두었는지 고민한다. 자신은 신을 사랑해야 하는지, 증오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신에게 바친 삶이 자신에게 준 결과를 곱씹고 이해하려 애쓰며. 삶은 모두에게 의문투성이이지만, 산도즈에겐 유독 의문투성이였다. 생각지 못한 일들이 일어닜고, 변덕스러웠다. 하지만 신을 믿었기에 모든 것이 설명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일어난 이유는 없고, 삶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면? 정말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외계에 만약 생명체가 존재하고 인간들이 그들을 만나러 간다는 단순한 설정에서 시작해 신과 인간의 섭리에 대한 깊은 철학과 고찰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작가의 섬세하고 치밀한 구성과 서사에 깊이 배어든 철학, 고찰이 정말 흥미롭고 아름다운 책이라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2. 이유리, 『구름 사람들』
북클럽 문학동네 서평단에 선정되어 읽게 된 책인데, 작가의「담금주의 맛」단편을 인상깊게 읽어서 기대하던 책이다.
이 책은 유독성 물질이 뭉쳐져 만들어진 "구름"에서 살고 있는 구름 사람들 중 하나인 오하늘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부모가 이미 구름에서 살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구름 사람이 된 하늘은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알바를 전전하며 생업 전선에 뛰어든다.
하늘에겐 평범한 삶은 사치와도 같디. 냉장고조차 가질 수 없는 구름에서 잘 차린 밥상이란 손에 꼽는 일이고, 학업에 집중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의무 교육을 마치면 곧장 돈을 벌어야만 하고, 돈을 벌기 전까지는 그저 쓸데없는 덩어리에 불과하다.
인형 하나, 꽃다발 하나, 네일 한 번, 치킨 한 마리가 일상이 아니라 몇 번의 고민을 거쳐야만 할 수 있다는 현실이, 그런 현실에서 탈출하는 법이 추락하는 법밖에 없다는 것이 하늘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런데 그 와중에 구름이 일조권을 침해한단 이유로 시는 인공 강우제를 뿌려 구름을 없애겠다고 통보를 한다. 어린 동생을 데리고 갈 곳이 없는 하늘은 완전히 막다른 길에 몰리고 만다.
책을 읽다보면 하늘의 삶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핑크빛 구름 위에 살지만 절대 화사하지 않은 풍경이, 구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하찮은 취급을 받는 것이, 발버둥을 쳐도 탈출할 곳이 없는 구름이 하늘의 숨통을, 읽는 사람의 숨통을 조여온다.
구름의 존재는 불행이 되어 눅눅하고 축축하게 하늘을 따라다닌다. 어딜 가나 하늘은 구름 사람일 수밖에 없고, 무슨 말을 해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의 삶은 사람들이 잘난 척할 기회로, 선한 척할 기회로, 비난을 퍼부을 기회로 사용된다. 하늘에게 자신의 삶을 쓸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하늘은 순간순간 얻어낼 수 있는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의존해 버텨낼 뿐이다.
생각한 것보다 무거운 분위기여서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지만, 읽어나갈수록 현실적인 심리 묘사가 마음에 와닿는 책이었다. 이 책의 끝을 해피 엔딩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하늘이 행복하길 바라게 되는 책이다.
*북클럽 문학동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3. 레이 네일러, 『터스크』
위즈덤하우스 서평단에 선정되어 읽게 됐는데, 테드 창, 켄 리우, 어슐러 K. 르 귄을 잇는 작품이란 말에 홀려 서평단을 신청한 책이다.
이 책은 상아 사냥으로 코끼리가 멸종하고, 과학이 발전한 먼 미래에 매머드를 되살려낸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매머드를 되살리는 건 성공적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이 갓 태어난 매머드들에게 생존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많은 방법을 고민한 끝에 코끼리 전문가 다미라의 정신을 이용하기로 하는데... 과연 매머드들은 상아 사냥에서 살아남고 지구상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상상력이 정말 놀라웠고, 환경 보호와 인간의 욕심이라는 주제를 강렬하고 깊게 다룬 게 인상깊은 책이었다. 휴고상 수상작답게 재미도 있었다. 특히나 생물을 되살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이후의 생존과 번영도 고려한다는 점이 세심하고 좋았다.
하지만 띠지에 내건 테드 창, 켄 리우, 어슐러 K. 르 귄을 잇는다는 말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다. 주제의식의 깊이에 비해 이야기의 전개는 많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분명 좋은 주제이지만, 너무나 산발적으로 이야기를 다루고 뚝뚝 끊는 느낌이 강하다. 조금 더 다듬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다미라를 제외한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에는 설명이 적어서 아쉬웠다.
주제적 측면에서는 정말 좋았고, 소재도 참신했지만 전개가 조금 아쉬웠던 책이다. 현대 사회에 필요한 주제의 책이지만 좀더 매끄럽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1권
마르케스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으로 만났다가 질기다 못해 지긋지긋한 광기의 짝사랑에 질려 다시는 읽을 엄두를 못 내던 작가인데, 『백년의 고독』은 꼭 읽어야 한다는 말이 많아서 큰 마음 먹고 도전하게 됐다.
그런데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다. 마콘도에 정착한 부엔디아 가문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데, 수많은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들의 등장 그리고 난무하는 근친상간이 빚은 혼란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술술 넘긴 책이다.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부답게 현실에선 불가능한 전개를 태연자약하게 이끌어가는데, 마치 온갖 말도 안 되는 요소가 가득하지만 재밌는 옛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남미의 실제 역사를 비현실적인 마콘도와 교묘하게 이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선보이는 작가의 솜씨가 정말 감탄스러웠다. 혀를 내두를 만큼 능수능란한 전개와 그 사이에 슬쩍 숨겨둔 블랙 유머가 참 매력적인 책이다.
걱정한 것과 달리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책이라 2권은 또 어떨지 기대되는 책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버금가게 요상한 족보를 가진 이상한 가족이지만, 나도 모르게 정이 가는 부엔디아 사람들이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