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N.K. 제미신, 『우리는 도시가 된다』
"위대한 도시들"이라는 2부작 어반 판타지 시리즈의 1부인데, 판타지이지만 SF스러운 요소도 섞여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각 도시들에는 화신이 존재하고, 이 화신의 존재로 인해 도시가 성장하고 안정화된다는 설정을 가진 세계관인데 흥미로운 설정이라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은 수많은 도시들 중에서도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뉴욕의 각 자치구마다 화신들이 탄생하는 지금, 외부의 정체 모를 흰옷을 입은 여자가 갑작스레 뉴욕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 존재를 막기 위해서는 각 자치구의 화신들을 찾고, 뉴욕의 중심 화신을 찾아야 한다지만, 당장 자신이 자치구의 화신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도 힘든데 알 수 없는 위협까지 해결해야 하는 뉴욕의 화신들은 과연 뉴욕을 지켜낼 수 있을까?
각 자치구의 특성을 의인화한 게 굉장히 재밌었다. 월스트리트와 같은 백인 부유층이 많은 곳이지만 실은 흑인들과 원주민들의 무덤 위에 세워진 맨해튼은 흑인으로도, 아시아계로도, 히스패닉으로도 보이는 인물로, 나 자신은 내가 지키고 그 누구도 함부로 내게 덤빌 수 없다는 정신의 브롱크스는 한때 엄청난 시위 운동가였던 예술가로, 수많은 이민자들이 모여 놀라운 발전을 이뤄내는 퀸스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취업의 길을 찾아온 인도인 여성으로 하는 등 각 자치구의 특징을 잘 살린 게 인상깊었다.
뉴욕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도 마치 가본 것처럼 느껴지게 해주는 생동감과 자치구의 특성과 개념을 이용해 벌어지는 전투 등 흥미롭고 재밌는 요소가 많아서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다. 2부가 마지막인데 과연 어떤 결말로 끝맺음을 할지 궁금해진다.
2. N.K. 제미신, 『우리가 만드는 세계』
굉장히 흥미로운 시리즈라 이틀만에 후루룩 2부작을 모두 읽어버렸는데, 결말이 조금 아쉬웠어. 설정에 비해 결말이 살짝 허무한 느낌이었다.
1권에서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하는데, 웬만한 설정은 1권에서 다 설명한 터라 2권에서는 세계관 설명은 줄어들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도시의 화신들은 도시의 특성과 개념을, 이들이 맞서는 적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무기로 쓴다는 게 참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하지만 책이 점점 줄어드는데도 사건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불안해졌다. 그러다 대략 10%를 남겨두고 나서야 빠르게 결말로 나아가는데, 꽤나 탄탄하게 세계관을 쌓아온 것 치고는 너무나 부실하게 느껴지는 결말이라 아쉬웠다. 이럴 거면 굳이 화신들의 전투가 필요했나 싶었다.
설정은 정말 흥미롭고 좋지만 결말이 그에 부응하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던 책이다.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추천하지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3. 오르한 파묵, 『검은 책 1』
지금까지 읽은 파묵의 책 중 유독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그럼에도 손에서 놓기 어려운 매력이 있었다. 서술 방식 등이 어렵지만 묘하게 손이 간달까.
이 책은 갈립이 어느 날 편지 한 장만 남기고는 갑자기 떠나버린 아내 뤼야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갈립은 이유는 없지만 왠지 뤼야가 의붓오빠 제랄과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뤼야의 행방을 알기 위해 칼럼니스트인 제랄이 쓴 칼럼들을 샅샅이 찾아 읽기 시작한다. 하지만 칼럼을 읽으면 읽을수록, 뤼야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갈립 자신에 대한 고민만 깊어지는데... 과연 뤼야는 어디로 간 걸까?
책의 주요 사건은 미스터리와 비슷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달라서 매력 있었다. 미스터리의 특징인 극적인 전개와 흥미진진함, 속도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뤼야의 부재가 불러일으킨 갈립의 변화에 주목하며 내면에 대해 깊이 고찰한다. 뤼야의 실종은 시선을 끄는 소재이자 갈립의 성찰로 이어지는 도화선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갈립의 이야기와 제랄의 칼럼이 번갈아 가며 나오는데, 둘 다 쉽지 않았다. 갈립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중이라 이야기가 혼란스러웠고, 제랄의 칼럼은 쉽지 않은 내용이라 어렵게 느껴졌다. 동서양,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약간은 혼란스럽게 전개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만함보다는 결집력이 느껴져서 계속 읽게 됐다.
과연 2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해서 곧장 2권을 읽어보려고 한다. 쉽지는 않지만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책이었다.
4. 오르한 파묵, 『검은 책 2』
1권에서 이 책의 서술방식에 익숙해져서인지 2권은 1권보다 수월하게 읽었다. 이따금 갈피가 잡히지 않지만 갈피를 잡는 걸 포기하고 읽었더니 오히려 더 잘 읽혔다. 다 읽고 난 지금도 책의 내용이 완전히 파악되지는 않지만, 그런 환상적인 분위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책이다.
1권은 갈립의 뤼야 찾기가 주요 내용이었다면, 2권에서는 뤼야보다는 갈립 자신의 자아를 찾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뤼야를 찾기 위해 제랄을 찾아다니던 갈립은 언제나 마음 한 켠에서 경외심을 품고 있던 제랄의 삶을 따라가기에 이르고, 제랄이 실종된 사이 그의 삶에 완전히 들어간다. 갈립이지만 제랄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갈립은 항상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그래서 좀더 수월하게 제랄의 삶을 받아들인다. 오히려 원래 자신의 삶보다 더 신나게, 즐겁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의 끝에서, 갈립은 길게 이어지던 제랄의 삶이라는 꿈에서 깨어나 자신의 삶으로 돌아와.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건 분명 즐거웠을 거다. 책임감도 덜하고, 스릴도 있고. 그러나 언제까지고 꿈만 꿀 수는 없는 법이거니와 타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에야 본인의 삶을 정확하게 돌아보고 관찰하게 되었다.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보고 나서야 갈립은 마침내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갈립 자신으로서 땅에 발붙이고 서서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었다. 뤼야가 없는 삶도, 제랄이 없는 삶도 그저 자신의 삶의 일부일 뿐임을, 그들이 없는 세상에서 다시 중심을 잡고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그만큼 여운도 길고 주제도 좋았던 책이라 추천한다. 다만 파묵을 처음 읽는다면 이 책 말고 다른 책으로 입문하기를 권하고 싶다.
5. 캘리앤 브래들리, 『시간관리국』
비채 서평단으로 받은 책인데, SF와 블랙코미디의 조합에 이끌려서 신청했다. 서평단 선물로 인물 관계를 정리한 보고서도 같이 왔는데 책을 읽을 때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인물이 조금 많아서 헷갈릴 때 즈음 참고하기에 좋았다.
21세기 영국에는 시간관리국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시간의 문을 열어 추출해온 이주자들이 현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곳인데, 이주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자기가 살던 시간대에서 뜬금없이 현대로 온 거라 혼란스러워 한다. 그런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주인공의 직업인 가교다. 이주자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고, 현대에 적응하는 걸 돕는 역할이다. 이주자들은 자신이 건너 온 시간대로 불리는데, 주인공이 맡은 이주자는 1847, 그레이엄 고어였다.
고어는 북극 탐험대의 일원이었으나 탐험 중 유일하게 사망한 사람이어서 추출되었다.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기록상 영원히 실종되었기 때문에 추출할 수 없었지만, 고어는 탐험 기록에 사망이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추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기술부터 도덕관까지 어느 것 하나 익숙한 게 없는 고어는 적응 초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하지만 현대에서 살아가며 마음에 드는 기술인 스포티파이도 찾고, 요리도 배우며 꽤나 즐겁게 현대에 적응해. 주인공도 고어와 지내며 점차 그와 가까워진다.
그와 같이 추출된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저마다의 적응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1665, 마거릿 켐블은 아주 무난하게 현대에 적응했는데, 그건 바로 그녀가 자신이 살던 시대에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레즈비언인 그녀에게는 17세기의 영국보다 21세기의 영국이 훨씬 살기 좋았거든. 반면 1645, 토마스 카딩엄은 계급제 없이 자유로운 21세기의 영국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인물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그런데 시간관리국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첩자로 지목되며 주인공과 고어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는데, 이주자들은 일종의 타겟이 되어버리고 만다. 게다가 주인공은 첩자의 조력자라는 누명을 쓸 위기에 처하고, 이주자들을 노리는 미지의 인물들마저 등장한다. 과연 주인공은 이 위기에서 살아남아 이주자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렇게 쓰면 이 책의 주요 내용이 시간 여행을 접목한 첩보물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 책은 시간 여행물도, 첩보물도 아닌 로맨스물이다. 사랑을 빼놓고는 그 어떤 이야기도 전개될 수 없다고 할 만큼 사랑이 정말 중요한 책이다. 그런데 이런 전개가 부담스럽거나 SF의 맛을 해치기보다는 오히려 산만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한데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야기 전체의 의미를 만들어준다.
다채로운 인물들과 스릴 넘치는 첩보물, 흥미진진한 시간여행물에 더해 끝내주는 로맨스까지 모든 것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라 정말 추천한다. 두께가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다.
*비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6. 윌리엄 포크너, 『내 죽으며 누워 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라 번역 출간된 작품들은 웬만하면 찾아 읽으려고 하는데, 마침 밀리의 서재에 있었다. 여전히 복잡하고 어렵지만, 여전히 포크너 특유의 날것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서 즐겁게 읽었다.
이 책은 번드런 가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아버지 앤스와 자식들이 어머니 애디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걸로 시작한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번드런 가문이 오래도록 살던 곳이 아닌 애디의 친정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는 애디가 죽기 전에 꼭 친정에 묻어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 길인데도 불구하고 번드런 일가는 마을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애디의 친정으로 향한다.
포크너 특유의 스타일을 따라 이 책의 시간선은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계속해서 넘나든다. 얼핏 보기에는 아내이자 어머니인 애디를 기리며 순례를 떠나는 이들 같지만, 사실 이들은 서로에게 감정이 좋지 않다. 앤스와 애디의 사이는 최악이었고, 자식들도 부모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언제나 삐걱대고 충돌하던 가족이었다.
번드런 가문의 숨겨진 진실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며 천천히 드러난다. 포크너는 번드런 일가의 일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빌려와 밖에서 보는 이 가족의 삶과 실제 삶이 얼마나 달랐는지 보여준다. 그러면서 시선과 관점의 차이가 얼마나 큰 왜곡을 빚어내는지도 보여준다.
포크너의 소설은 항상 복잡하고 시끄럽지만 언제나 섬세하게 삶의 다층적인 부분들을 잡아내며 인간의 본성을 본연 그대로 그려내는 게 매력적이다. 이 소설은 포크너의 다른 소설에 비해서는 시간선과 인물의 관점 변화가 적어서 읽기 꽤나 수월하면서도 포크너 특유의 장점은 다 갖고 있어서 포크너 입문작으로 추천한다.
7. 조이스 캐롤 오츠, 『밤, 네온』
오츠 특유의 예리함이 드러나는 단편들이 매력적이었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들과 달리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이 강해서 조금 아쉽기도 한 책이었다.
이 책은 여성의 현실을 주목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긴 하지만, 남성 화자가 나오는 단편도 같이 실어서 인간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물론 여성이 마주하는 민낯 그대로의 현실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여성이라는 키워드에만 국한하기에는 아쉬울 만큼 인간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오츠는 전반적으로 화자와 관찰자가 일치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둘 사이의 괴리가 느껴지는 서술 기법을 채택하고 있다. 초반에는 관찰자가 화자와 동일한 시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둘 사이의 차이나 괴리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는 본능적으로 화자의 서술에 불쾌감과 반감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뱃속 깊은 속에서 올라온다. 그리고 이런 느낌이 드는 건 그저 오츠가 다루는 문제들이 불쾌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서 화자와 관찰자 간의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화자의 자기 합리화 같은 서술을 관찰자의 시점에서 비판적으로 보게 된다. 화자의 독백에 공감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전에 갖고 있던 공감조차도 버리게 된다.
오츠는 예리하게 불쾌한 현실을 잡아내며 이야기가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독자가 본능적으로 화자와 거리를 두도록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 괴리가 느껴지는 거리에서 독자가 화자를 불안하고 불쾌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만든다.
오츠 특유의 장점과 서술이 돋보이는 데다 주제도 좋은 책이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금 덜 다듬어진 느낌이 아쉬웠던 책이다.
8. 프리즘오브 편집부, 『프리즘오브: 라라랜드』
프리즘오브 잡지에 관심이 많은데, 다 구해 읽기는 쉽지 않아서 관심만 보이던 차에 밀리에 과월호까지 있길래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라라랜드> 편을 읽게 됐다.
좋아하는 영화라서 기대했는데 조금 아쉬웠다. <라라랜드>를 다각도에서 분석하는 건 좋았지만, 그 다각도의 분석이 모두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래도 뮤지컬 영화의 역사와 함께 <라라랜드>가 한 오마주를 하나하나 짚어준 글은 좋았다. 다음번에는 <다크 나이트> 편을 읽어보려고 한다.
9. 프리즘오브 편집부, 『프리즘오브: 다크나이트』
히어로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명작이라 생각하는 영화라 몇 번이고 돌려봤던 작품이라 <다크나이트>를 다룬 이 잡지를 꼭 읽어보고 싶었다.
줄거리 등 간단한 영화 정보를 정리한 글부터 인물들을 분석한 글에 그래픽노블을 다룬 글까지 재밌고 유익한 글이 정말 많아서 즐겁게 읽었다. <다크나이트>는 원래도 깊이 있고 조밀한 영화이지만, 이렇게 세세히 분석한 글들을 보니 이 영화가 얼마나 놀라운 깊이를 갖고 있는지 실감이 났다.
지금까지 <작은 아씨들>, <라라랜드>, <다크나이트> 이렇게 세 편을 다룬 잡지를 읽었는데 세 편 중 이 편이 가장 좋았다.
10.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1』
책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 유명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다. 높은 악명에 걸맞게 정말 이해하기 어렵고 읽기도 쉽지 않지만 묘하게 계속 읽게 되는 책이다.
줄거리랄 게 특별히 없을 만큼 서사 전개의 측면에서는 평범한 책이다. 스티븐 데덜러스와 리오폴드 블룸의 하루를 쫓아가며 그들의 생각을 담아내는 게 주요 내용인데, 이 인물들의 생각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읽다보면 괜찮다 싶은 부분도 있고, 이따금씩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읽게 된다.
『오뒷세이아』가 모티브인 책답게 각 장에 텔레마코스, 네스토르, 세이렌, 키클롭스 등등의 이름이 붙여져 있어서 장의 이름과 내용이 어떤 면에서 이어지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었다. 대부분은 오마주보다는 패러디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촌철살인의 문학을 써내는 데에 능한 조이스답게 패러디조차도 날카롭고 풍자적인 힘이 넘쳐서 『오뒷세이아』와 비교하며 읽으니 훨씬 흥미로웠다.
셀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따옴표도 없어서 대화의 구분도 쉽지 않은 데다 단어를 쓰다가 만다든지, 문장을 중간에서 뚝뚝 끊는다는지 문학적 규범을 깨는 시도가 많아서 분명 읽는 것 자체가 어렵기는 하다. 게다가 의식의 흐름 기법이다보니 더더욱 갈피를 잡기가 어렵고.
그래서 나는 아예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책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대로 읽었더니 오히려 읽기가 더 수월했다. 이 텍스트의 깊이와 층위를 이해할 만큼 아일랜드와 영문학의 역사, 기독교를 알지 못하다보니 괜히 이해하려 애쓰는 것보다는 흐름을 따라가는 게 포기하지 않고 읽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1권만큼이나 두꺼운 2권이 남아서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 어마어마한 책의 끝이 어떨지 궁금해서 끝까지 읽어볼 생각이다. 끊어서 읽으면 오히려 완독이 힘들 것 같아서 2권도 2-3일 안에 완독해보려고 한다.
11.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2』
사실 한 5일 걸릴 생각으로 시작한 책인데, 의외로 두 권 전체 읽는 데에 2일밖에 안 걸렸다. 대신 이해는 10% 정도밖에 못하고 활자를 읽는 수준에 그쳤지만, 그래도 다 읽어서 뿌듯하다.
2권은 1권보다 더 실험적인 문체들이 등장한다. 중세 영어로 시작해 여러 유명 영문학 작가들의 문체를 따라하는 장부터 희곡 형식으로 쓰인 장, 교리문답의 형식을 채택한 장과 마침표가 딱 2개만 존재하는 장까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만큼 독자의 머릿속은 미궁이 되지만,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스토리 속에서도 조이스의 유일무이하고 전무후무한 천재성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실험적인 문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였다.
형식적인 측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책이지만, 내용도 꽤나 흥미로웠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평범하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살아가는 그저 그런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조이스는 놀라운 서사시를 써내. 대단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서사시의 형식을 깨고 현대의 서사시를 창작한다.
조이스의 주인공들은 율리시스처럼 현명하지도, 잔꾀가 많지도 못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조차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언제나 무기력하고, 그래서 언제나 냉소적일 뿐이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인물들의 풍자적인 면모와 냉소는 무기력하게 아일랜드에 머물 수밖에 없는 절망을 가리기 위한 갑옷으로 느껴진다.
읽으면 읽을수록 미궁으로 빠져드는 듯한 서술 사이로 언뜻언뜻 느껴지는 영문학사 전체에 대한 오마주와 패러디, 아일랜드에 대한 사랑과 작가 본인의 천재성이 독자를 이따금씩 사로잡는 책이다. 조이스는 갈피를 잡기 어려운 현대의 서술 방식과 영웅적이지 못하고 지극히 일반인다운 현대의 인물들을 이용해 놀랍도록 고전적이지만 감탄스러울 만큼 현대적인 1920년대 아일랜드의 서사시를 써낸다.
읽는 것 자체가 도전이고, 이해하는 건 넘을 수 없는 산을 오르는 것처럼 절망적이고 힘겹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섣불리 추천할 수는 없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한 번은 도전해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이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은 번역을 해낸 번역가분께 감사와 찬사를 바치고 싶다.
+문학동네 버전으로 읽는다면, 2권의 해설에 각 장의 줄거리 요약과 책 전체의 주요 인물 정리가 있는데 이게 도움이 많이 된다. 각 장을 읽을 때마다 혹은 읽기 전에 줄거리 요약을 읽으면 머리가 조금 정리되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