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함과 마주할 수 있기까지

『도둑 신부』

by 쇼쉐이

나는 마거릿 애트우드를 정말 좋아한다. 그런 내가 《도둑 신부》를 읽은 이유는 딱 하나. 애트우드 작품이어서다. 게다가 애트우드와 동화적 모티프의 만남이라니, 이건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나는 애트우드와 동화 둘 다 좋아한다.)


이 책은 강력하고 유혹적이고 아름다웠던 지니아를 기억하는 세 명의 여성, 토니, 캐리스, 로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세 여성이 기억하는 지니아는 유희 삼아 남의 남자를 뺏어가고는 질리면 버리고 떠나는, 아주 나쁘고 사악한 여자다. 셋 다 지니아의 친구이자 피해자이고, 아직도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럭저럭 일상생활을 해나가던 이 셋은 지니아가 분쟁지역에서 폭탄에 휘말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토록 자신들을 괴롭히던 지니아가 죽었다는 걸 확인하면 그 모든 상처가 아물고 지니아를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니아의 죽음은 오히려 계속해서 지니아를 기억하게 만든다. 예상치 못한 지니아의 죽음은 자꾸만 셋을 붙잡고 놔주지를 않는다.

지니아 때문에 친해지게 된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식당 톡시크에 모여 점심을 먹는데, 지니아가 죽은 후에도 이 모임을 유지한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에 하듯이 톡시크에 모인 토니, 캐리스, 로즈 앞에 살아 있는 지니아가 나타난다. 완전히 살아 있고, 더 강해진 모습으로. 더 강력해진 지니아의 귀환은 이 셋을 두렵게 만들고, 이들은 다시금 지니아와의 기억을 회상하게 된다.

그녀를 싫어해서 그러는지, 떠받드느라 그러는지 모르겠다. 무서워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지니아는 이 기숙사 안에서 유명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기숙사에 친구가 있는건 아니지만 그녀는 눈에 띄는 존재다.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존재인데 토니만 다른 곳을 보느라 몰랐다.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이유는 외모 때문일 것이다. 지니아는 평범하고 펑퍼짐한 여자들이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을 구현한 이상형이다. 그런 여자들은 겉이 훌륭하면 안도 훌륭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머리도 좋고 학점도 잘 받는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도 안 하고 수업도 거의 안 듣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똑똑하고 무시무시하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납고 잔인하기 때문이다.

마거릿 애트우드, 《도둑 신부 1》, pp. 256-257

지니아는 누구나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아름답고, 유혹적이고, 똑똑하고, 당당했다. 남자들은 그녀에게 빠져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여자에게는 그보다는 복잡한 존재였다. 우상이지만 가장 큰 적. 결코 맞설 수 없는 존재. 신비롭고 아름답고 사악한 존재. 동화 속의 마녀, 악당 같은 존재였다. 모두를 유혹하지만 이내 모두를 버리고 마는 사람. 그래서 지니아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사랑할 수는 없지만, 그를 두려워할 수는 있었다. 그 존재감을 느끼고, 그 잔인함을 느낄 수 있는 존재.

토니, 캐리스, 로즈 셋에게는 각자의 아픔이 있다. 토니는 영국에서 캐나다로 이사오게 된 어머니에게 태어날 때부터 일종의 실망이었다. 토니가 아무리 영국인처럼 행동해도 결코 어머니의 마음에 들 수 없었다. 그럼에도 토니는 영국 사람처럼 차를 내리고 어머니가 시키는 일을 다 하며 언젠가는 어머니가 자길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편지와 토니의 몸에는 큰 세일러 원피스만을 남기고 연인과 함께 떠나버린다. 토니는 아버지와 둘이 살게 되지만, 자신에게 말을 하려는듯 결코 하지 않고, 술에 취해 집을 배회하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기숙학교로 도망간다. 토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는 자살했고, 토니는 남겨진 유산을 갖고 살아간다.

토니는 언제나 조금 다른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거꾸로 말을 했다. 예를 들자면, 영원히를 히원영으로 말하거나, 자신의 이름 토니 프레몬트를 트몬레프 니토로 말한다. 그에게 거꾸로 말하기는 일탈이자 저항이었다. 여성 전쟁 역사학자인 토니는 사회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작은 체구를 이용해 자신이 무섭지 않다는 걸 각인시키고, 전쟁을 연구하지만 사납지는 않다는 걸 강조해야만 했다. 아무도 남성에게는 이런 걸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은 그래야만 했다. 그래서 토니는 거꾸로 말한다. 모두가 말하는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뜻을 부여한다. 홀로 조용히 사회의 틀을 거부하고 부순다.

그런 토니에게 지니아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거침없이 행동하고, 자기 뜻대로 사람들을 휘두르는 모습은 토니가 바라던 모습이다. 자길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전쟁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학생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삶이자 결코 가질 수 없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니는 지니아에게 휘둘리면서도 그의 곁에 남는다. 그가 자기를 대신해 세상과 싸우기를 바랐으니까. 나를 이용하는 것조차도 지니아의 매력이었으니까. 사납고 잔인하지만 경외할 수밖에 없는 강인한 여성. 그게 토니에게 비친 지니아의 모습이었다.

캐리스의 원래 이름은 캐런이었다. 캐런은 어머니와 살다가 할머니에게 맡겨진다. 할머니는 농장을 했는데, 캐리스에게 소소한 생활 방식부터 삶을 대하는 법까지 알려준다. 캐런은 그런 할머니를 좋아했지만, 오래 같이 있지 못하고 이모의 집으로 옮겨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캐리스는 이모부에게 지속적인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한다. 이 사실을 이모에게 알렸지만, 이모는 캐런이 거짓말쟁이라며 몰아세울 뿐이었다. 그래서 캐런은 할머니가 알려주고 보여준 치유의 힘을 이용해 나쁜 기억들을 한구석으로 밀어놓는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캐런은 할머니가 남긴 유산을 물려받게 되지만, 이것마저도 이모부에게 뺏기고 만다.

그저 이모부의 집을 떠나고 싶었던 캐런은 할머니의 성경만 챙겨 미련없이 대학으로 향한다. 그리고 캐리스로 이름을 바꾸고, 어둡고 아픈 기억만이 가득한 캐런은 저 깊은 곳에 넣어둔다. 순진하고 밝으면서도 어디론가 날아갈 듯 가벼운 캐리스는 어린 시절의 모든 상처를 봉인하고 얻어낸 존재였다. 캐리스는 대학을 얼마 다니지 않고 자퇴했고, 요가를 가르치며 살아가다가 빌리를 만나게 된다. 빌리와 그 친구들을 먹이고 재우며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던 캐리스의 앞에 어느날 지니아가 나타난다. 수척하고 눈 한쪽에는 멍이 든 상태로. 자신의 아픔 때문에 아픈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캐리스는 암에 걸렸다는 지니아를 집에 받아들인다.

빌리는 지니아를 내보내라고 말하지만, 캐리스는 갈 데도 없는 아픈 사람을 내보낼 수는 없다며 완고하게 버티고, 지니아를 진심으로 보살핀다. 캐리스에게 지니아는 약하고 보살펴야 할 존재였다. 자신의 아픈 어린 시절을 지금 그대로 겪고 있는 사람이었다. 캐리스는 결코 그런 지니아를 외면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보살핀다는 건 캐리스에게 큰 즐거움이자 일종의 사명이었다. 세상은 좋은 곳이 아니라 생각하는 캐리스 앞에 나타난 지니아는 세상에 치여 상처받고 약해진 존재처럼 보였다. 캐런을 늘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는 캐리스에게 또 다른 캐런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니 캐리스는 지니아가 자길 이용할지라도, 보살필 수밖에 없었다. 캐런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으니까.

로즈는 로절린드 그린우드였던 어린 시절, 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하숙집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늘 깨끗하게 하숙집을 유지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 열심히 허드렛일을 하고,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를 따라 가톨릭 학교에 다녔다. 로절린드의 삶을 지배하던 것은 어머니였다. 로절린드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생활했다. 어머니가 열심히 일하니 자신도 열심히 일해야 했고, 어머니가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들은 절대 하지 말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던 아버지가 동료들과 함께 돌아온다.

어머니가 지배하던 로절린드 그린우드의 세계는 아버지가 지배하는 로즈 그룬월드의 세계로 바뀐다. 아버지는 어딘가 수상쩍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회사를 세운다. 바람도 지속적으로 피웠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분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표출하지는 않는다. 참고 참다가 로즈에게 화풀이를 할 뿐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로즈는 여자가 남자를 대하는 법을 배운다. 여자는 결코 남자에게 반항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배운다. 그래서 로즈는 남편 미치가 바람을 피워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바람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준다. 덩치 크고 돈 많은 여성인 로즈는 결코 사나워질 수 없었다. 그러면 여성이 아니라 괴물로 여겨질 테니.

그런 로즈는 미치와 식당에 갔다가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지니아를 만나게 된다. 지니아는 로즈에게 로즈의 아버지에 대해 해줄 말이 있다며 다음에 만나자고 한다. 로즈에게 아버지는 멀리 있는 사람이었다. 한집에 살지만 도통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로즈는 지니아를 만나야만 했다. 자기가 모르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 그렇게 지니아와 만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니아는 미치와 바람을 피운다. 로즈는 금방 끝날 거라며 아무렇지 않은 일로 생각하지만, 사태는 심각해지고, 급기야 미치는 지니아와 함께 집을 나간다. 그러고는 지니아가 떠나자 그를 찾아 헤매다가 다시 로즈에게로 돌아온다. 로즈는 그런 그를 돌려보낸다. 자길 완전히 떠나버린 그를 다시 받아줄 수는 없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미치는 이혼이 진행된지 오래지 않아 사고로 사망한다. 로즈는 자살일 거라 확신하지만.

로즈에게 지니아는 아버지와의 연결고리였다. 어릴 때부터 늘 없던 아버지를 아는 사람. 나는 결코 모를 부분을 아는 사람. 그래서 로즈는 토니와 캐리스에게서 경고를 받고도 그를 집에 들였다. 궁금했으니까. 하지만 지니아는 로즈에게서 미치를 빼앗았다. 로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남성을 지니아가 가진 셈이었다. 아버지의 과거를 알고, 현재의 미치를 가진 지니아. 로즈는 그런 지니아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엄마로서의 로즈를 제외한 로즈의 모든 걸 갖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토니, 캐리스, 로즈는 서로 비슷한 아픔을 지니고 있다. 전쟁으로 힘든 가족사를 겪었다는 것. 외국인 혈통으로 캐나다에서 겉돌았다는 것. 그리고 지니아에게 남자를 뺏겼다는 것. 자신의 결핍을,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이들에게 지니아는 너무나도 강력하고 아름다운 존재였다. 저렇게 되고 싶으면서도 그가 될 수 없기에 질투도 나던 사람. 나와 달리 강하고 당당하고 사나운 사람. 셋을 억누르는 남성 중심 사회를 눈 하나 깜짝 않고 뒤엎는 사람. 지니아는 토니, 캐리스, 로즈에게 영웅이자 악당이었다. 나를 구원해줄 것 같지만,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지니아는 결코 그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녀의 출신과 과거는 모호하다. 토니, 캐리스, 로즈는 모두 각자 다른 지니아의 과거 이야기를 알고 있다. 지니아는 왜 거짓말을 늘어놓고, 사람들을 상처입힐까? 그건 지니아가 무섭고 신비롭고 강력한 존재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지니아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르고 여리고 착한 존재는 짓밟히기 쉬웠으니까. 그리고 모두 지니아가 그런 존재이길 바랐으니까. 지니아의 진실은 그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니아에게는 부여된 역할이 있었고, 그 틀을 벗어나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동안 이 세상의 수많은 지니아가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가 사업에 매진하고, 남자들 호주머니를 털고, 남자들의 환상을 충족시키고 있다. 남자들의 환상, 남자들의 환상, 남자들의 환상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걸까? 우상처럼 떠받들리는 여자도, 무릎을 꿇은 여자도 모두 다 남자들의 환상이다. 남자들이 어떻게 하건 모두 다 감당할 만큼 강한 여자도, 전혀 어쩌 지 못할 만큼 약한 여자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남자들의 환상을 충족하는 데 무관심한 척하는 여자도 남자들의 환상이다. 어느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척, 자기만의 인생이 있는 척, 다른 데가 아니라 자기 머릿속에 뚫린 열쇠 구멍으로 끊임없이 엿보는 구경꾼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발을 씻고 머리를 빗을 수 있는 척하는 여자도 마찬가지다. 여자들의 머릿 속에는 여자를 훔쳐보는 남자가 들어 있다. 여자들은 자기가 자기를 훔쳐보는 관음증 환자다. 이 세상의 지니아들은 이런 현상을 연구해 자기네 입맛에 맞게 비틀었다. 남자들의 환상에 자기들을 맞추지 않고 스스로 틀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꿈속으로 들어갔다.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의 꿈속으로도, 여자들을 보며 남자들만 환상을 품는 게 아니라 여자들도 환상을 품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성격이 다른 환상이지만.

마거릿 애트우드, 《도둑 신부 2》, p. 199

지니아는 이 환상을 이용하기 위해서 여기에 부합해야 했다. 모두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었으니까. 이외의 방법은 알지 못하니까. 지니아는 모든 사회의 규범에서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가장 사회의 시선에 묶여 있던 사람이다. 모두가 원하는 모습에 매여,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모든 악이 지니아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니아도 그 악에 얽혀버린 자그마한 존재일 뿐이다. 캐리스가 말했듯이.

검은 선들이 거미줄처럼 그녀에게서 사방으로 퍼져 나오고 있다. 아니다. 그게 아니라 검은 선들이 그녀를 표적 삼아 그녀에게로 모이고 있다. 조만간 그녀는 거미줄에 얽힐 것이다. 그 한가운데서 그녀의 영혼이 투명한 나방처럼 퍼덕이고 있다. 결국 그녀에게도 영혼이 있었다.

마거릿 애트우드, 《도둑 신부 2》, p. 268

하지만 셋은 지니아의 진실을 보지 않고 그에게 각자 나름의 역할을 부여한다. 자신의 어릴적 상처, 지금의 상처를 모두 합쳐 떠나버린 지니아에게 투영한다. 나를 상처 입히고 아프게 한 지니아는 미워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에 있고, 나를 사랑했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를 상처 입혔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어려웠다. 그런 사람은 미워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셋은 지니아를 더 미워했다.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의 몫까지 합쳐서, 지금 나의 초라한 모습을 미워하는 만큼. 하지만 지니아는 이 모든 상처를 입힌 사람이 아니다. 그걸 셋도 알지만, 그럼에도 지니아를 미워해야 삶이 편안해서 지니아를 놓아주지 못한다.

이 셋이 지니아를 놓아줄 수 있게 된 건 마침내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나서다. 돌아온 지니아와 대면해서 지니아의 실제를, 자신의 실제를 보고 나서야 지니아를 용서하고 놓아준다. 지금까지 미워해오던 건 사실 그 모든 상처에 굴복하고 나아가지 못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지니아는 그 모든 상처와 가해자를 상징하는 존재였을 뿐이었다. 나 자신을 보고 받아들이게 된 토니, 캐리스, 로즈에게 지니아는 더 이상 신비롭고 강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지. 사회 안에서 고통받고, 상처입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셋은 지니아가 정말로 죽자, 미련없이 장례를 치러준다. 지니아는 적이 아니라 자신들처럼 사회의 피해자였을 뿐이니까. 나 자신을, 지니아를 직면한 셋은 미련 없이 상처를 훌훌 털고 다시 나로서 살아갈 용기를 낸다. 흠 많고 결핍도 있고 부족한 나지만, 그래도 이게 나니까. 그래서 사회와 상관없이, 내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결말은 내가 정하는 순간 찾아오니까. 2권의 332쪽에서 "모든 결말은 임의적이다. 끝이라고 쓰는 지점에서 끝난다."라고 나오듯이, 결말은 정하기 나름이니까. 그러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이 책은 동화의 모티프를 곳곳에 사용한다. 지니아는 "도둑 신랑"의 식인 살인마 신랑에 비유된다. 이건 지니아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잔인한 존재라는 걸 의미할 수도 있고, 이 신랑은 그저 악당으로만 설정되었다는 것에서 아무도 지니아의 동기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다. 로즈는 "백설공주"의 마녀 왕비가 하듯 상상 속의 말하는 거울에게 말을 건다. 이 거울은 로즈가 내면에 품고 있는 사회의 시선을 의미한다. 로즈가 무언가를 할라치면 사회에서 어떻게 볼지를 이야기해준다. 이처럼 애트우드는 익숙한 동화들을 비틀어 사회의 시선이 여성의 자아를 짓누르고 틀에 맞추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렇게 틀에 끼워 맞춰진 여성들은 다시금 자아를 찾아 일어선다. 남성들이 다수인 역사학계에서 강하고 단단해야 했던 토니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받아들이는 걸, 세상의 일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캐리스가 다시금 살아가는 걸, 아들의 진짜 모습을 알기를 두려워하던 로즈가 아들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걸. 더 이상 동화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만큼 성장한 셋을 보여주며 이 책은 끝을 맺는다.

이 책을 읽으며 여성과 사회의 관계와 여성의 자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선한 여성도, 악한 여성도 모두 사회의 피조물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내게는 이 약 600페이지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사회에서 자유로운 자아를 형성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사회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회가 나를 결정하게 둘 필요는 없다. 사회를 받아들이듯 나 자신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내 자아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여성들이 분투하는 이 600페이지의 이야기를 모두 지나온 나는, 토니, 캐리스, 로즈와 함께 한 단계 발전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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