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호주 멜번입니다 - 호주에서의 육체노동

by 마틴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오전에는 시티의 Tafe에서 일했다. 이곳은 건물이 다섯 개 동으로 이루어진 전문 Hospitality 기술 교육기관으로, 제과·제빵, 각종 요리 강습, 웨이팅 스태프(웨이터, 웨이트리스) 양성, 바리스타(커피 만드는 사람) 과정 등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며 강의실도 수없이 많다. 이곳에서 하루 4시간씩 일하고 오면 오후에는 비교적 푹 쉴 수 있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근무했다. 오전 12시부터 4시까지 일하고, 중간에 2시간을 쉬었다가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다시 일하는 일정이었다. 쉬는 시간 2시간 동안은 근처 공원을 산책하기도 하고, 바에 들러 잠깐 TV를 보기도 했으며, 스태프 룸에서 책을 읽거나 잠시 눈을 붙여 피로를 풀곤 했다.


키친핸드라는 일이 제한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일이다 보니,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서너 달이 지나면서부터 손가락이 뻑뻑해지고 아프기 시작하며 허리도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나의 경우 1년 정도 지나자 주먹을 쥐었다가 손을 펴려 하면 손가락이 한 번에 펴지지 않고 1단계, 2단계, 3단계처럼 단계적으로 펴졌다. 다시 손을 오무리려면 손가락 하나는 다른 손으로 도와주어야 접힐 정도였다.


그래서 손가락을 수시로 주물러 주고 손목 운동을 하는 것은 물론, 걷기를 자주 해 허리 통증을 완화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평소 스트레칭을 자주 하지 못해 얼마 못 가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그 때문이다.


몇년 전 새로 들어온 젊은 셰프가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키가 크고 허리가 가는 체형이었는데, 오전부터 저녁까지 하루 8시간, 일주일에 5일을 근무했다. 요리 학원에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열심히 수업을 받았고, 이곳에서 현장 실습을 하며 요리사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친구였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늘 싹싹하고 명랑하던 그 친구가 서서히 말이 없어지고 얼굴에 근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하루는 이유를 물었더니 허리가 아파 집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주 걷기 운동을 하고 집에서 스트레칭을 하라고 말해 주었지만, 요즘 젊은이들 중 몸이 아프다고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결국 그 친구는 그동안의 수련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내가 보기에는 키가 커서 허리가 더 약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자신의 꿈을 접고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 처음에는 하루 8시간 중 4시간을 일한 뒤 야간 근무를 기다리며 2시간의 브레이크 타임에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어깨가 쑤시고 허리가 점점 아파왔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쉬는 시간 중 1시간은 무조건 밖으로 나가 주변 공원을 걷고, 집에서는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4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니 3년이 지난 후로는 허리가 가끔 쑤시기는 해도 크게 고통을 느낀 적은 없었고, 손가락도 2년이 지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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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키가 크고 체구가 건장한 존 웨인이 주연한 서부 개척 시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속 마을에서 양털 깎기 시합이 열렸는데, 체구가 당당한 존 웨인이 등장하고 상대는 키도 작고 왜소한 노인이었다. 구경꾼들은 돈을 걸고 시합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존 웨인이 양 몇 마리의 털을 척척 깎아 나가며 앞서 나갔다. 그러나 서너 시간 동안 수십 마리의 양털을 깎다 보니 아무리 체구가 건장해도 삭신이 쑤셔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수십 년 동안 양털 깎이로 살아온, 겉보기에는 허약해 보이던 노인에게 지고 말았다.


시합이 끝난 뒤 존 웨인은 걷지도 못한 채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나오는 반면, 노인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담배 한 대를 물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장면은 다년간의 경험 없이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모습이라는 생각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키친핸드 겸 디시와셔로 일하면서 몸이 점점 뻐근해지는 것이 걱정이 되었고, 일을 할 때마다 괜히 겁이 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오래 하지 못하고 다른 길로 전업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쯤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걱정하곤 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뒤 생각이 확 바뀌었다.
‘그래, 비록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뒤에 시작한 일이라도 익숙해지고 경험이 쌓이면 양털 깎이 노인처럼 이력이 생기겠지. 이 일 말고도 힘들지 않은 노동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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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한국 인터넷을 보다가 호주에서 유학 중인 여학생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학생은 이곳이 좋아 부모님도 여기서 사셨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그런데 아빠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이곳에서 어떤 노동을 하시겠는가.’라며 아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글을 보며 나 역시 당시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너무 무리하게 뛰어든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어가 짧으니 몸으로라도 때울 수밖에 없었다. 보험회사에서 25년간 쌓은 경력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렇다고 사업을 한다고 한 재산을 가지고 온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양털 깎이 노인의 다부진 모습을 떠올리며 그동안 은근히 품어 왔던 걱정을 내려놓게 되었다. 설사 내가 영어를 잘했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보험 업무와 영업을 하며 겪었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이제는 호주에서 몸이 조금 힘들더라도 집에 돌아와 일 걱정을 하지 않고 편히 쉬며 다음 날 다시 일하러 나갈 수 있는 이 삶이 내 나이에 더 맞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내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 있는 내 또래의 직장 동료나 학교 선배들 중에도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한 번쯤 이런 일을 해 보고 싶다고 여기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나이에 제한이 없고 크게 거리낄 것 없는 이런 일이 과연 한국에서는 언제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그 점이 못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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