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호주 멜번입니다 - 일과 나이

by 마틴

어느덧 호주에 온 지 5년이 지나, 55세가 다 되어 가는 새해 어느 날이었다. 한 해가 가고 또 나이를 한 살 더 먹어 가니 세월의 빠름이 더욱 실감났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고 할까, 여기 호주에서는 새해가 가도 “당신 올해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는 사람도 없고, 나이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나이가 더 먹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이를테면 일하는 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괜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좋기는 하였다. 다만 내 자신이 육체적으로 지난해와는 조금 달라졌구나 하는 신체적인 느낌만 있었을 뿐이다.


아래 글은 몇 년 전 어느 경제신문의 내용을 따온 것이다.


“‘예,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이 말. 바로 한국의 60대들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자신은 아직 일할 수 있는데 직장에서 밀려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되어, 일자리를 찾아봐도 마땅한 곳은 없고 나이는 어느덧 60이 넘었다. 정말 일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 아닐까? 그런데 미국에서는 가능한 일이 왜 한국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을까? 미국에서는 나이 든 사람에게도 일자리를 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나이 든 사람을 싫어한다. 미국에서는 노인도 일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자식 보기 창피하다면서 일자리를 가린다. 그렇다. 우리는 나이 든 사람을 쓰려는 수요도 없지만, 사람들 또한 체면부터 따지니 공급도 없다. 어느 한쪽이 문제가 아니라 양쪽이 다 문제다.”


이 글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국의 일자리는 아직도 월급제가 중심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쓰려는 쪽에서도 일거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월급을 지급하려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나이도 따지고 성별도 따지게 된다. 반면 이곳에서는 대부분 시간제로, 주급 단위로 임금이 지급되니 사용자 입장에서는 캐주얼의 경우 부담 없이 일거리가 있을 때만 사람을 부른다. 일하는 사람 역시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서너 시간으로 제한되어 임금이 적다 보니 이를 보충할 겸 한 직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요일에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 그러다 보니 나이는 크게 상관하지 않고, 경험만 있으면 여러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근무 시간은 1월부터 변경되었다. 이전에는 밤 11시 반경이면 일이 끝났는데, 이제는 주 5일간 아침 10시에 시작해 2시 반경 30분간 휴식을 갖고 저녁 6시에 일을 마치고 집에 온다. 집사람이 무척 좋아하였다. 그전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 오면 거의 밤 12시가 다 되어 바로 잠자리에 들 수도 없어 TV를 보거나 인터넷으로 한국 소식과 세계 경제 돌아가는 모습을 한두 시간씩 보곤 하였다. 아내는 아침에 일찍 일 나가야 하다 보니 밤 10시 이후만 되면 졸려서 눈을 뜨기 힘들다며 먼저 자곤 했고, 그러다 보니 나와 생활 시간이 어긋났다. 내가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느즈막이 방에 들어오면 잠을 깬다며, 아예 침구를 딸내미 방으로 옮겨 딸과 함께 자기도 하였다. 말 그대로 생이별(?)이었다.


내가 늦게 들어와 피곤한 몸이 안쓰럽게 보였는지, 어느 날 집에 가 보니 맥주 한 박스가 놓여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TV를 보며 하루에 한 병씩 마셨더니, 야심한 밤에 마신 찬 맥주가 위를 거슬리게 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부터 설사가 심해져 며칠 동안 고생을 하였다.


헤드 셰프에게 두어 번 저녁 일이 너무 늦게 끝난다고 이야기했더니, 근무 시간을 조정해 주었다. 이를 두고 아내는 “주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신 거”라고 했다. 기도하기를 좋아하고, 작년부터 성당 활동이 활발해진 아내는 툭하면 모든 일이 자기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하니,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았다.


레스토랑에는 셰프들도 여럿 있었는데, 헤드 셰프를 포함해 태반이 20대 초중반이었다. 내가 4년 이상 일하다 보니 이제는 다들 나를 고참으로 대우해 주었고, 일도 예전처럼 디시 와싱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는 여러 종류의 파스타를 1인분씩 컨테이너에 담거나, 마늘을 슬라이스하고 홍합 등 해산물을 손질하는 일도 맡게 되었다. 런치 타임 이후에는 다시 디시와시를 하였다.


셰프들은 모두 내 나이의 딱 절반이었지만, 일하면서 그들끼리 농담하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다 보면 나이 차이에서 오는 어색함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행동에 동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아직까지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들이 저장해 온 노래들을 함께 들으며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도 마음만은 그들과 함께 젊어지려고 노력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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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아내가 성당에서 가져온 CD를 들어 보라고 하여 들었는데, 신부가 할머니들의 집단 합숙 교육장에서 한 이야기였다. 요지는 의학의 발달로 한국인의 수명이 크게 늘어나 90세 이상 사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70살 할머니가 며느리의 서운한 대접에 방구석에만 박혀 “이제는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며 살다가, 어느덧 90세가 되도록 2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을 후회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이제는 할머니들도 집에만 있으면 고부 간 갈등만 더 길어지니, 아침 일찍 나와 놀러도 다니고 노인대학에도 다니면서 자식에게 의지하지 말고 편히 살라고 했다는 말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특히 예전의 우리네 남자들은 55살만 넘어도 괜히 늙어진 것 같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주변에서 “그 나이에 건강도 좀 생각해서 하슈”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이제 은퇴했으니 인생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그러나 생명이 점점 길어지는 시대에, 일 없이 친구들과 만나 담소만 나누며 인생을 즐기는 삶이 과연 오래도록 즐겁기만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부터 80세, 아니 90세까지 자신 있게 살아가야 하는 남자들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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