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클럽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당시, 아들 녀석과 함께 내가 살고 있는 돈카스타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아들의 클럽 대항 축구대회에 앞서 각 팀의 전력을 살펴보는 시범 경기에 다녀왔다.
아들(앤디 김)은 한국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를 하기 시작했는데, 멜번에 와서도 축구를 좋아해 당시 돈카스타 주니어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곳 호주의 스포츠 문화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자면,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크리켓(야구의 변형)이,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축구와 미식축구의 일종인 풋볼이 행해지는데, 그 열풍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의 정성까지 대단하였다.
평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차로 픽업해 소속된 체육 연습장으로 데려가고, 연습이 끝날 때까지 아빠들은 아이들의 연습 경기를 지켜보며, 엄마들은 차 안에서 기다리다가 두어 시간 연습이 끝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간다.
한국의 종로구, 중구처럼 각 구별로 이곳 호주에도 나름대로 팀들이 구성되어 있는데, 나라가 커서 그런지 팀마다 크리켓 구장, 축구장, 풋볼장 등의 전용 구장(모두 잔디구장)이 갖춰져 있다. 축구장이나 풋볼장은 대부분 두 개 이상이 붙어 있어, 경기 시즌이 되면 나이별로 어린이 팀부터 주니어, 시니어 성인 팀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대별·구장별로 경기가 이어진다.
그러니 평일에는 학교에서, 그리고 수업이 끝난 뒤에는 별도로 모여 소속 클럽에서 습관처럼 연습을 하니 실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지역별로 돌아가며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치르는데, 매주 엄마나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약 20주 정도의 시즌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매주 지역별 지도를 보고 경기장을 찾아다니는 것(통상 20~30분 소요)도 큰일이었지만, 이제는 웬만큼 익숙해졌다고 하였다.
나는 당시 일요일에도 일을 하는 관계로 몇 번밖에 참석하지 못하다가, 한 번은 그동안 쌓아 두었던 휴가 4주를 쪼개 하루씩 사용하는 것으로 셰프에게 허락을 받아 모처럼 전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앤디가 가입한 돈카스타 로벅도 연령별로 팀이 나뉘어 있었는데, 1년 가입비는 550불(한화 약 55만 원)로 츄리닝과 공은 무상으로 지급되었다. 가끔 경기 때마다 전반전이 끝난 휴식 시간에는 선수들에게 나눠 줄 오렌지를 가정별로 돌아가며 썰어 내놓는 것이 전부였다.
시합이 끝나면 코치의 간단한 평가 후 각자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선수들이 피곤할 테니 부모들이 돈을 갹출해 저녁이라도 먹이자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 행사는 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한 번, 경기장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정도였다.
전담 코치나 주심에 대한 비용은 가입비에서 충당되는 것 같았고, 선심은 축구 경력이 있는 아버지들이 자원봉사로 맡았다. 나는 말도 잘하지 못하니 그냥 아들 경기나 보고 오곤 했다.
축구 시즌이 되어 아들 앤디의 경기를 보노라면, 호주 생활에서 이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을 정도였다. 시간이 갈수록 기량이 서서히 오르더니 작년에는 스트라이커로서 시즌이 끝날 때까지 총 13골을 넣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팀원들이 많이 바뀌고 인원도 늘어나 나이 많은 선수들까지 합세하다 보니, 코치가 향후 경기를 대비해 선수들을 자주 교체시키는 바람에 아들이 조금밖에 뛰지 못했다. 경기 후 시무룩한 얼굴로 경기장을 나오길래, 신임 코치라 아직 선수들의 기량을 잘 모르니 이해하고, 나이 많은 선수들이 합류했으니 연습 때 더 열심히 해서 코치의 눈에 들도록 하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탓인지 기분이 쉽게 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작년 경기 때의 여담을 하나 하자면, 아내와 함께 경기를 보던 중 상대 팀과 1대1로 팽팽한 상황에서 후반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아들이 골을 넣지 못하자 아내가 점점 더 초조해했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저쪽 가서 묵주 기도하고 올게요.” 하며 경기는 보지도 않고 건물 뒤로 돌아갔다.
잠시 후 돌아왔는데, 그 직후 아들이 역전 골을 터뜨려 우승을 하자 얼굴이 함박웃음이 되어 자기가 기도(?)해서 골이 들어갔다고 했다. 아들 실력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다음 주 경기에서도 후반 끝날 때까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또다시 건물 뒤로 돌아가 묵주 기도를 한다며 가더니, 돌아와서 하는 말이
“에게, 경기 끝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