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호주 멜번입니다 - 디시와셔1

by 마틴

이탈리아 스포츠클럽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전, 스시 만드는 곳에서 같이 일한 젊은 남직원이 자기도 주방에서 디시와셔를 했는데 너무 힘들어 그만두었다며, 다들 그 일은 두세 달이면 그만둔다고 하기에 속으로 겁이 덜컥 났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후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지내왔고, 일하는 시간 수도 일주일에 적으면 25시간, 많으면 40시간까지 배정받으며 한때 겁이 나던 순간은 서서히 잊혀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일의 결과인 양 아침에 일어나면 양손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어 자주 주물러서 펴거나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기도 하고, 아내가 손을 주물러 주어 펴기도 하는데, 정말로 육체노동의 참맛이 어떤 것인지 서서히 알아가고 있었다.

김(金) 수(修) 환(煥).
평생을 살아오면서 아내가 가끔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이름 중에 가운데 수가 왜 하필이면 닦을 수(修)이냐? 평생을 살면서 닦다가 말 거냐? 남들은 빼어날 수를 많이도 쓰던데….”

너털웃음을 지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닦다가 말다가 했던 것 같고, 생각만 많았지 실제로 이룬 것은 없었다.

50 평생 그러던 차에 이번에는 제대로 닦는 디시와셔의 수업길로 들어선 것 같았고, 남들이 듣기에는 웃음이 나올 일이지만 내게는 아직도 더 닦아야 할 인생의 여로에 들어선 것처럼 느껴졌다. 한국에 있을 당시 간혹 외국에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에서 읽다 보면 잠시라도 디시와셔를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기에, 그저 집에서 하는 설거지보다 조금 더 힘들겠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서야 진짜 디시와셔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당시 이 레스토랑에는 젊은 중국인 청년들이 세 명 있었는데, 호주인들은 대부분 조리사나 웨이터, 웨이트리스였고 나와 중국인들은 조리사를 도와 보조(피자를 만들거나 요리를 하기 위한 재료 준비)를 하거나 디시와셔 일을 맡았다. 그들은 이곳에 온 지 3년 이상이 되어 영어도 잘 알아들어 조리 보조로도 잘 활용되고 있었으나, 나는 아직 영어가 부족했고 나이도 있어서인지 계속 줄곧 디시와셔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호주 레스토랑은 대부분 음식 접시들이 사기그릇이고 크고 무겁다. 펑션에 보통 120명의 손님이 단체로 왔을 때, 스프가 나가고 큰 접시에 담긴 메인 요리가 나간 뒤 케이크 조각이나 아이스크림, 마지막으로 커피까지 나가면 통상 500~600개의 크고 작은 그릇에 나이프, 포크, 스푼이 추가된다. 이것을 디시와셔 머신으로 처리하면 약 3시간이 걸리고, 조리사들이 사용한 프라이팬이나 각종 요리 그릇, 네모난 트레이와 조리 도구들까지 하면 2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대개 접시나 포크류는 한 사람이 디시와셔 머신을 이용해 닦고, 나머지 팬이나 요리 그릇, 트레이 등은 다른 쪽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세제를 묻혀 손으로 직접 닦는다. 그럴 때 간혹 두어 시간 동안 말없이 그릇을 닦고 있노라면, 내가 정말로 이름자에 ‘닦을 修’를 가지고 제대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동안 살아온 모든 것을 돌아보게 되며,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닦아보라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시키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그 순간만큼은 착잡함보다는 잡다한 생각 없이 평온한 마음을 갖게 되곤 했다.
이국땅에서 잡을 얻어 만족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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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일처리가 늦어지거나 일이 많아 밤 12시가 훌쩍 지나도 끝나지 않을 때면, 일한 시간이 늘어난 만큼 수당을 더 받을 수도 있지만, 어느 때는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뿐이라 웨이트리스들이 쉴 새 없이 가져오는 식기들에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을 하라면 이 나이에 체면 때문에 어림도 없었겠지만, 여기에서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의 일이 한국이나 중국인 업소보다 웨이지가 더 많고 영어도 사용하며 배울 수 있고, 오직 자기 일에만 충실한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이 아니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더욱이 아이들이 아빠의 일에 대해 걱정해 주고 격려해 주어 부담 없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점도 고마웠다. 마음 편히 일에만 집중할 때는 240명분의 식기를 혼자서도 너끈히 처리한 적도 있었지만, 사람이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피곤하고 짜증이 날 때면 고향의 친구들이나 대학 서클 동문들이 문득 보고 싶어지곤 했다.

스포츠클럽 레스토랑 키친에서 일한 지 얼마 후부터는 토·일·월·화 4일간 근무했는데,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토요일은 새벽 1시까지) 6~7시간을 꼬박 서서 일하며 설거지를 하다 보면 더운 물에서 나오는 김과 함께 프라이팬과 접시들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 온몸에 땀이 범벅이 되었다. 밤 11시 반쯤 나오면 아내가 차로 픽업하러 와 있었고, 자정쯤 집에 오면 녹초가 되곤 했다.

스시집 일도 오전 5시에 일어나 준비해야 했기에 월요일과 화요일이 가장 피곤했다. 스시 일과 디시와셔 일 모두 꼬박 서서 해야 하므로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은 하루 9시간 정도 서 있어야 했다. 그래서 몸을 풀어야 했는데, 가끔 아내가 발로 등을 눌러 주기도 하고, 오전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오는 도중 채스턴(엄청나게 큰 마켓)에 내려 점포들을 훑으며 40분가량 걷고 다시 버스를 타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걸어야 발밑으로 내려간 피가 순환되고 등의 통증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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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집은 현찰로, 스포츠클럽은 자동이체로 급여를 받았는데, 번 돈은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비상금으로 50불(한국 돈 약 3만 5천 원) 정도만 가지고 다녔다. 보름 정도 가지고 다녔지만, 생활용품은 아내와 함께 마트에서 사는 터라 쓸 일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대접할 일도 없었다. 지난번 둘째 딸이 졸라 시티에 함께 나가 구경한 것 외에는 그 돈은 고이 주머니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제야 가장으로서 생활비를 조금이나마 보태게 되니, 집에서 쉬고 있어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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