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뭐 잘못했나?
요 며칠간 유독 팀장님께서 자리에 잘 계시지 않았다. 심란하거나 곤란해 보이고, 가끔은 화가 나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나나, 신입분들에게 예민하게 구는 모습들이 종종 비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팀장님과 내 사수가 내부 미팅이라는 명목으로 나가서 2시간 내내 들어오지 않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했다. 나든 누구든 팀원 전체가 뭔가 큰 실수를 하고 있구나, 그래서 파트의 장이자 내 사수인 사람에게 이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오지 않자, 오래간만에 월급 루팡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싹 사라지고, 빨리 다음에 넘겨 받을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마침내 돌아왔을 땐, 그들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한 기류를 피부로 느끼며 나는, 속된 말로 '아, 좆됐다'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팀 회의가 있을 예정이니 00시까지 회의실로 모이라는 메일이 왔다.
다들 숙연한 텐션으로 회의실에 모이기 시작했다. 모든 팀원들의 손엔 메모할 다이어리와 펜이 각각 들려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모이자 팀장님께서는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우리 팀에 있어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차라리 내가, 우리가 뭔가를 잘못해서 이것을 바로잡기 위한 회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팀장님께서 착잡하신 표정으로 꺼낸 이야기는 바로 파트의 장이자 내 사수인 선임의 타 팀 차출 소식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다른 팀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말에 가장 먼저 배신감이 들었다. 가장 친한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나한테 한 마디 언질도 없이 다른 팀으로 가버릴 수가 있지?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차출되어 가는 팀도 평소에 사수가 가고 싶다고 말했던 곳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쭉 들어보니 사수도 그 사실을 약 두 시간 전에 팀장님과의 면담을 통해 전해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졸렬하게도 배신감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배신감이 잠잠해지니 불안과 걱정이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우리 팀의 모든 일을 가장 잘 아는 이 사람이 다른 팀으로 가버리면 우리 팀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안 그래도 실무에 손을 놓은 팀장님과 2년도 채 안된 신입들이 고군분투하며 으쌰으쌰 하며 이끌어나가던 상황이었는데, 사수마저 빠지게 된다면 상당히 절망적인 국면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팀장님께서도 이 팀에 애착이 강했고, 그렇기 때문에 내 사수를 우리 팀에 붙들고 있기 위해 윗사람들과 싸우며 거의 보름간 고군분투했다고 했다. 하지만 대표님의 입장이 워낙 강경하고 현재 업계 트렌드 자체가 그러한 것을 고려했을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고, 그래서 결국 백기를 들어 그녀를 보내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한 소식을 전하던 와중 동료 팀원의 눈물이 터졌고 그것을 시작으로 팀원 절반 이상이 눈물을 터트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우리 팀이 업무강도는 비교적 높지만, 인간관계는 굉장히 원만해서 그러한 부분에 스트레스받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차오르는 서운함과 눈물을 억누르느라 정말 혼이 났다.
지금까지도 이 일이 꿈같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사수 없이 해나갈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심지어는 이러다가는 우리 팀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타 팀에 다 빼앗기고 팀이 해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명목상 채용형 인턴으로 되어 있는 내 입장에서는 꽤나 리스크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롭게 시작한, 여유로운 아침 끝에 이렇게 절망적이고 아쉽고 슬픈 소식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사수의 역할이 큰 상황이었기에, 그녀가 많이 그립고, 보고 싶을 것이다. 이 황당한 상황이 곱씹을수록 너무나 아쉽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또 잘 대처하며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심란한 정신상태를 가다듬는 밤이다.
안일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로 여길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그래도 영 답이 없다 싶으면 아마 내 발로 나오지 않을까? 라고 플랜B를 생각하면서도 이러다 다시 백수가 되면 어떡하지, 전전긍긍하며 묵혀둔 자소서를 다시 꺼내 요목 조목 읽어 보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