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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규 Sep 02. 2022

이봐, 해봤어? 스타트업의 정면승부

토스와 벤디트의 사례로 살펴보는 정면승부의 방법론


초기 스타트업은 언제나 생사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현재 숙박업소, 특히 모텔의 운영 업무를 원격화, 비대면화 하고 대부분의 수동적 운영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도록 B2B로 SaaS 솔루션을 보급하고 있는 벤디트는 창업 이후 다양한 죽을 고비를 맞았어요.


 그런 경험들 중에서 하나의 시사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기업이 죽는 이유야 많겠지만 특히나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제시하는 솔루션이 시장의 문제에 정면승부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레거시(기득권)의 저항이 거셉니다. 이 때문에 초기 솔루션의 PoC(컨셉 증명) 또는 MVP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죽을 고비를 맞을 수 있습니다.


 초기 제품의 경우 일반적으론 고객 입장에서 관여도가 높은 상태로 출발합니다. 때문에 새로운 솔루션이 문제를 해결해줄 때 기존의 방식보다 훨씬 낮은 비용 (예컨대 1/10 수준) 또는 동일한 노력을 했을 때보다 10배 이상의 효용을 가져다 주어야 고객은 반응합니다. 따라서 문제를 간접적으로 해결하는 솔루션일 경우 그만큼의 효용을 가져다줄 수 없고 가설이 모두 붕괴될 위험이 있는 것이죠.


 제 생각에 가장 좋지 못한 경우는 가설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객의 문제에 정면 승부하기보다 우회책을 찾으며 이런 저런 기생적인 이해관계에 엮이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혁신하고자 했던 대상이었던 레거시들의 리셀러가 되거나 SI 회사로 전락해버리는 것인데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증명해내야 합니다.


 저는 이제는 조단위를 훌쩍 넘어버린 스타트업 "토스"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토스 코파운더 중 한 분과 친밀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토스가 초기에 그로스하는 전 과정에서의 일화를 보다 생생하게 접할 기회가 있었죠. 초창기에 "간편 송금"이라는 컨셉을 증명하기 위해 토스는 어떤 일을 했을까요?


 당시를 떠올려 봅니다. 2013년 12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송금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에 공인 인증서를 옮기고, 은행 앱에 들어가 각종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공인 인증서로 서명을 하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 송금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토스팀은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고 몇 번의 필수적인 입력 만으로도 송금할 수 있도록 하는 가상의 데모를 만들어 SNS에 올렸는데, 그 데모에 굉장히 큰 관심이 일어나며 순식간에 바이럴 되었습니다. 그래서 토스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컨셉을 증명해낼 필요가 있었죠.


 자, 그런데 생각을 해봅시다. 은행이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이 작은 스타트업에 API를 열어줄 이유가 있을까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토스팀이 선택한 방법은 레거시를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기업에서 활용되고 있었던 효성 CMS(자동출금이체서비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었죠. CMS를 이용해 고객의 계좌에서 출금 그리고 대상 계좌로 입금을 진행하는 방식을 고안 한겁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딱 3주간 유효했습니다.


 특정 목적을 가지고 고객대 사업 또는 사업대 사업 간에 집금 또는 출금 하는 방식의 정해진 용도가 아니라, 고객 대 고객 간의 송금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CMS를 이용하는 것을 편법적인 이용 방식으로 판단한 효성CMS는 3주만에 제재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 방식이 불가하게 되자 토스는 KSNET의 VAN망(펌뱅킹)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우회하게 되는데요. 이 때가 되어서는 공인인증서가 아닌 음성 녹취를 통해 펌뱅킹 이용 동의를 받아내는 방식으로 더욱 편리함을 더했습니다. 다만 내부적인 상황이 문제였는데요. 집금과 달리 출금은 자동화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송금에 2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고객에게 고지하고, 2시간에 한 번씩 엑셀에 내역을 정리하여 수동으로 목적 계좌에 입금하는 노가다를 하게 됩니다.


 거기다 은행의 거래 내역과 토스 서비스 데이터간 편차를 없애기 위해 VM(Virtual Machine)을 이용하여 은행 사이트에 일일이 들어가고 거래 내역을 긁어오는 매크로를 만들어서 돌리기도 하는 등 어떻게든 컨셉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죠.


 하지만 결국 금융 당국의 결정에 따라 CMS를 통한 송금이 불법으로 규정되면서 더이상의 서비스 운영이 어려워 졌습니다. 하지만 이 때 2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쌓았던 바이럴과 PoC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후 9개월 간에 토스는 금융위에 전자금융업 등록을 하기 위한 최저 조건인 10억을 투자 받을 수 있었으며, 점차 토스에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면서 농협, SC제일은행 등의 은행과 공식 API 연동을 추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리고 2015년 2월 정식 런칭을 하게 되죠.




손가락 빨며 기다리지 마세요.


 어떻게든 가능하게 만들어 짧은 순간이라도 증명을 해내야 합니다. 토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에 얽매이지 않고 서비스 컨셉이 작동 하도록 만들었고, 거기서 충분한 증거적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벤디트도 그랬습니다.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벤디트가 핵심 가치로 삼고 있는 "자유"를 고객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행되고 있는 산업 내에서의 비효율적인 업무 진행 절차를 파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벤디트는 숙박업 운영 업무를 원격화, 비대면화 하고 대부분의 단순 반복 업무가 자동화되는 클라우드 기반의 객실관리시스템을 SaaS 형태로 숙박업체, 특히 모텔을 중심으로 보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크게 두가지 허들을 넘어야 했는데요.


 첫 번째로, 모텔의 경우 각 모텔마다 설치되어 있는 키텍 시스템 (쉽게 말해 카드키를 키텍에 꽂았을 때 객실에 불이 들어오게 하고, 각 객실의 입실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메인 시스템에 신호를 전달하는 시스템) 의 제조사가 각각 달랐습니다. 모텔의 경우 객실관리시스템 자동화의 핵심은 이런 각 객실별 상태 정보를 명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 이를 알기 위해서는 키텍 연동이 가능해야 했습니다.


 만약 특정 키텍과 연동이 가능하더라도 모든 모텔이 같은 키텍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키텍 교체를 권유해야 했고, 키텍 교체를 권유하는 경우 추가적으로 수천만원의 비용과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하는 대공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영업 성사율은 극도로 낮아지게 됩니다.


 게다가 이 키텍 시스템을 만드는 제조사가 수 십군데로 굉장히 파편화되어 있고 외주 업체의 폐업, 또는 자료 유실, 자기 제품만을 유통하기 위해 폐쇄적인 스탠스를 갖는 업체 등 다양한 이유로 연동에도 비 협조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예약앱 (OTA라고도 부르는 여기X때, X놀자 등입니다.) 들 간에 예약 연동, 객실 재고 동기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고객들은 많은 불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업주 또는 직원이 일일이 수동으로 들어가서 객실 재고 및 가격 컨트롤을 해야 하는 이슈가 있었는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API 연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나 이 또한 마찬가지로 생태계 내의 폐쇄적인 스탠스로 인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벤디트는 그 모든 복잡한 이해관계를 걷어낸 뒤 나름의 방식으로 정면 승부를 통해 모든 문제를 풀어냄으로서 증거들을 모았고 이를 통해 인재와 자본을 움직이며 업계의 주목받는 스타트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야기를 하겠지만 현재는 여러가지 대내외적 상황상 자세한 언급은 어려운 점 양해 바랍니다. 그러나 벤디트도 마치 토스와 같이 레거시의 저항에 따른 어려움이 있었고 복잡한 생태계 내 이해관계에 얽혀들며 이도 저도 아닌 그들 중 하나의 솔루션이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들과의 정면 승부를 택했으며 이를 통해 시장의 미래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기업의 펀더멘탈(Fundamental)은 매우x매우 중요합니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들이받는 모든 스타트업들에 경외를 표하며, 지금 너무나도 잘 하고 있다는 응원을 드리고 싶습니다. 개인도 주체적이어야 하지만, 기업으로서도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주체적인 기업이란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것'이 있는 회사입니다.


 자기 것이 없는 생존은 그저 기생입니다. 자기 것을 먼저 가지고 생존의 문턱을 넘고 나서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진정한 혁신이 있습니다.


 벤디트는 기술을 통해 사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만약 매출을 불리고 싶은 회사가 우리 솔루션을 따라 만든다고 해도 그 진정성은 따라할 수 없습니다. 벤디트의 모든 구성원은 기능 하나를 구현할 때에도 이 기능이 고객을 얼마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솔루션이 기존의 문제를 10x만큼의 효율로 해결 해낼 수 있는지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성이 없으면 디테일을 정밀하게 모사할 수 없습니다. 제품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객은 디테일을 구매하는 존재들입니다. 디테일만이 오리지널입니다. 그리고 이런 디테일들은 정면승부를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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