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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Nov 11. 2024

고부 갈등의 기로에서

사랑은 사랑이다.

 시어머니가 뭘 주시면 왜 싫은 감정이 들까. 


 이번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갔다. 예전보다 더 자주 가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아버님이 몸이 안 좋으시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자주 찾아뵙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버님은 무뚝뚝하시지만, 손자손녀들을 무척 아끼시는 분이다. 젊으셨을 때에는 화도 버럭 내시고 어머니를 많이 힘들게 하셨다는데, 연세가 70이 넘어가시니까 좀 달라지셨다고 한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나에게도 당신 아들이 나이가 들면 좋아질 거라고 하신다. 그런데 그게 70세라면 너무 늦지 않을까..


 아무튼 평소처럼 맛있게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다 같이 먹고 그리고 좀 뒹굴다가 나오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냉동실에서 뭘 자꾸 꺼내 놓으시며 물으신다. 


 "네가 가져가고 싶은 거 가져가." 


 그러면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주는 대로 받아온 것은 과거의 일. 이젠 아예 안 받으려고 선수를 쳐야 그나마 적게 가져올 수 있다. 특별히 아버님께서 나를 위해 호박을 긁어놓으셨다고 하니, 그건 두 봉지 다 가져가겠다고 했고, 냉동실에 묵혀두었던 돈가스와 갈치 등등을 담았다. 하. 자꾸 개수가 많아진다.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려는데, 남편이 저건 애들이 잘 먹잖아. 하고 말한다. 남의 속도 모르고. 당신이 할 거냐고!


 이상하게도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가져온 재료들을 보면 나는 화가 난다. 왜 이렇게 많이 받아왔지. 뭔가 속은 느낌, 당한 느낌이 든다. 내가 직접 생각하고 고민해서 산 재료들이 아니라, 어머니가 우리 가족들 먹이고 싶어서 당신의 욕심과 당신의 바람을 내가 심부름꾼이 되어 수행하는 듯한 느낌이 강력하게 든다.


 그 감정이 너무 치솟길래, 그 생각을 파고들어 보았다. 왜 이렇게 싫을까? 그냥 어머니가 싫어서? 아니다. 과거에는 싫어한 적도 분명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어머니는 공짜가 없다. 수완이 무척 뛰어나신 분이다. 온갖 인맥을 가지고 이웃들에게 일자리도 소개해 주시고 사람도 연결해 주시는 데 탁월하신 분이다. 요즘은 매일 과일 등 선물이 들어와서 장 볼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실 정도다. 그런 어머니가 뛰어나시다는 점이 나는 불편하다. 왜냐하면 당신이 뛰어나신 만큼 당신이 옳다는 생각이 강하고, 그 생각을 우리에게 은근히 강요하시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좀 그렇지 않은가. 


 나는 친정 엄마에게 휘둘리며 살았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며 매달려서 거의 평생을 살았고, 거기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랑을 갈구하면 매달리게 되고, 은연중에 조종을 받게 된다. 스스로 조종받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것을 깨달았는데, 결혼해서 와 보니, 시어머니는 대놓고 나를 조종하려고 하셨다. 하나부터 열 가지 가르치고 싶어 하셨다. 나는 은근한 고수인 친정엄마에게 시달려 온 터라 대놓고 조종하려고 하시는 어머니의 행동은 잘 보였다. 그래서 대놓고 나도 반항하고 거부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마음이 상하는 일들이 좀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감사하게도 어머니는 그런 나를 이해해 주시고 받아주셨다. 다. 당신이 너무 심했다고 말씀하시고 자신의 행동을 고치려고 무척 애를 쓰셨다. 오직 자식 잘 살기를 바라고 평생 고생하신 그 마음은 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보는 걸 못 견뎌하신다. 자식이 고생하는 게 싫으니 무엇이든 나서서 먼저 해결해주려고 하시는 마음이 보였다. 그 마음이 잘못된 거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멈추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나에게 먹을거리를 주시면 기분이 나쁜 이유는 첫째, 내가 하고 싶은 요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서 숙제를 받은 기분이다. 어머니의 조종을 받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이번에 내가 가져온 것들의 목록을 기억해 두셨다가 다음번에는 똑같은 것들을 냉동실에 쟁여놓으실 것이다. 


 두 번째는 어머니의 사랑은 조종을 동반한다는 나의 생각 때문이었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면 좋겠는데, 나도 그런 사랑을 잘 경험해 보지 못했고, 어머니는 오죽하겠는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가 나올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삶은 본인이 희생한 만큼 대가를 바라시는 게 어쩜 당연하다. 평생을 자식 위해 사셨는데, 자식들이 잘못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결과다. 


 하지만 그래서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너무 주려고 하시는데 그 마음이 가볍지 않다는 걸 아니까 부담스럽다. 어머니의 사랑만 받고 조종은 안 받으면 안 될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사실 어머니가 자꾸만 주고 싶어 하고 우리를 먹이시려고 하는 것은 어머니의 만족일 뿐이라고 말씀드리면 고쳐지실까. 


 그래서 나의 결론은 이렇다. 사랑은 받으려고 하자. 어머니의 마음은 받으려고 하고, 조종은 거부하자. 물론 그 경계가 모호해서 나도 모르게 또 휩쓸리고 뒤에 열받고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매번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왠지 긴장이 되고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사랑이 맞다. 그 마음은 인정해 드려야 한다. 그 사랑에 약간의 조정과 강압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어머니를 사랑해 드리려면 내가 강해지고 튼튼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미 나는 강한 사람이다. 생각보다 어머니는 약하신 분이고. 나보다 지혜롭고 똑똑하실진 모르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나보다 더 크신 분이다. 그래서 약하신 거다. 고부 사이에 끼여 있는 여러 가지 이물질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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