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2>를 읽다가

40대의 킨나

by 글향기

구시민의 편에 선 술라가 로마의 수도까지 쳐들어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았으나 그리스 지역의 반란(?)으로 곧 자리를 비우고 전쟁터로 떠나게 되었다. 떠나면서 새로 집정관이 된 킨나(당시 로마의 집정관은 2명이다. 킨나와 옥타비우스였다.) 에게 술라는 자신이 변경해 놓은 법안을 유지할 것을 맹세하게 했다.


자신도 무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 놓고, 킨나는 자신의 말에 순순히 따를 것이라고 믿었을까. 왜 다른 장군을 그리스 전쟁터로 보내지 않았을까.


자신은 그랬어도 다른 사람은 안 그럴 거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술라가 군사들을 이끌고 그리스를 제압하기 위해 떠난 뒤 곧바로 킨나는 맹세를 저버리고 술라의 법을 다시 바꿔놓는다. 로마의 기존 세력(구시민)을 등지고 로마의 떠오르는 민중 세력(신시민)의 편에 선 것이다. 이미 작정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속마음을 술라에게는 완전히 숨기고 계획한 대로 맹세를 깨뜨렸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는 이때의 킨나를 가리켜 '혈기왕성한 40대의 킨나'라고 표현한다. 술라가 그를 염려했던 것도 그가 '혈기왕성한 40대'였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아이의 유튜브를 같이 보다가 어떤 에피소드에서 41세의 가게 여자 주인이 뽀글 머리 파마를 하고 시골 아주머니처럼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았다. 놀란 것은 촌스러운 차림새로 촌스러운 말투를 구사하는 아주머니가 나보다 6살이나 어린 41세였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 에피소드를 구성한 작가는 20대이거나 30대였을 것이다. 40대는 너무 먼 이야기였으니 그냥 아주 나이 많은 아주머니처럼 묘사를 했을 거다.


그런데 현재 47세인 여성인 나는 41세가 새파란 동생처럼 느껴진다. 누가 보는가에 따라 같은 41세 여성이라도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같은 현상을 바라봐도, 같은 사물을 바라봐도, 보는 사람에 따라 이처럼 다를 수 있는 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해석학으로 접근해 본다면 각자의 해석에 따라 서로 다른 현실을 살아가게 되는 것일 거다. 모두에게 똑같은 현실이란 없다. 모두에게 객관적인 실체로서의 현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현실이 각자의 수만큼 존재할 뿐, 어쩌면 각자의 수보다 더 많은 가짓수의 현실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바라보는 현실은 결국 나만의 현실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부분은 알지도 모르지만, 결코 전체를 공유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닐까. 깊은 외로움은 아마도 필연적인 것이다. 선택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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