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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기교육연구소 Aug 28. 2023

교무실에서 사라져가는 교육 이야기

 교무실에서 교육 이야기 '어떻게 잘 교육할까' 가 사라져가고 있다. 대신 어떤 활동이나 절차가 규정에 맞는지가 토론되거나, 교직 탈출을 가능케 할 ‘경제적 자유’에 관한 이야기가 그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탈출을 꿈꾸다보니 한국 교직 사회의 고질적 병폐였던 승진열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된 것이 득이라면 득이겠다.



 현재 학교의 교단 현장은 최근들어 더욱 악성화 되어가고 있는 민원, 그리고 교실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탈 학생들에 대한 무기력, 그리고 무엇보다 나날이 완벽해지고 정교해져 가는 행정 업무에 의해 질식되어 가고 있다.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해 학교 규모는 나날이 작아지고 있는데, 업무는 줄기는커녕 더더욱 늘어만 가고 있다.


 이전에는 보통 지침이 한권의 책자로 나오던 학교생활기록부 정도가 악명(?)이 높았는데, 학점제와 자유학기제를 필두로 하는 교육과정, 평가 등이 그 뒤를 잇더니 이제는 기초학력-부진아 지도가 그 대열에 합류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교육부(청)이 손을 댈 때마다 그 영역은 생명력을 잃는다는 점이다. 10여년 전 혁신교육 초기, 교육과정-수업-평가 일체화 시도는 학생의 성장을 온전하게 담는 현장의 자발적 흐름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는 학생부를 전체 학생을 다 쓰라는, 더 나아가 ‘복붙’ 느낌이 나니 성취수준 조차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비현실적인 규제, 그리고 더 수많은 각종 규제들로 이어졌다. 더구나 입시 경쟁 속 민원공화국의 현실로 사실적 서술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말이다. 


 비슷한 시기 나타난 학교 특색 주제선택 과정 개설을 아우리는 교육과정 재구성, 그리고 혁신적 평가 역시 교육청 관료들의 손을 거치더니 학교 현장의 교육과정 운영 전반이 각종 규제와 절차로 점철된 시수 놀음으로, 실질적 교육과정과 괴리된 서류상의 형식적 교육과정으로 전락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 규제와 절차를 감수하여 양식을 다 채워가면서까지 ‘혁신’을 실천할 교사는 거의 없다. 또한 그런 행정업무들은 창의적 교육과정과 평가를 만들어낼 여유 자체를 사라지게 만든다.


 진로 교육을 제대로 하면 되는 것인데, 그것이 자유학기제의 진로영역인지, 창의적체험활동의 진로영역인지 시수를 맞추게 하고 그것이 최고로 중요한 양 강조하면 그것은 열정적 교사들의 사기를 꺾고 급기야 소진시켜버린다. 자율권을 주고 소수의 일탈자가 나오면 그 사람들을 엄벌하면 될 터인데, 그를 예방한답시고 각종 지침을 정교하게 내려 교단 전체가 규제의 늪에 빠지게, 문서는 정교화되고 절차도 번잡해지게 만들어 버린다.


 사실 잘 안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제 선택, 교과 융합이 잘 안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시수 배분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혁신적 평가가 나타나기 어려운 것은 입시 현실 속 수많은 민원들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 개선에는 큰 관심이 두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AI가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첨단의 이 시대에도 학생 출결문서나 평가계획 같은 것을 담을 툴 하나 만들지 않고 여전히 종이에 도장을 받아다가 철을 하게 만들거나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표를 그리고, 계산기를 두들겨 수치를 입력하게 만들고 있다. 교육‘지원’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문제는 이제 이런 관행들에 대한 문제 제기조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적당히 영혼 없이 시키는대로 맞춰주고는 그 싸울 에너지를 ‘탈출’ -저경력자는 더 늦기 전에, 고경력자는 더 험한꼴 당하기 전에- 에 쓰는 비중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어찌보면 이미 비탈길에 들어서 돌이키기 어려워 보이는 감도 없지 않다. 아마 내년 학기 초에도 각 학교들은 교무부장과 연구부장, 그리고 학생부장을 구하지 못해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이다. 그리고 십여 년 안 멀지 않은 미래에 이 행정체제 전반은 붕괴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혁신교육이 실패했다면 그것은 멋진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멋진 내용을 작동케 할 수단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혁신의 열정이 냉소로 바뀌는 데는 딱 10년 걸렸다. 그 10년은 교사들이 학습된 무기력을 배우는 시기였던 것이다. 혁신교육이 새로운 출발을 모색한다면 이 지점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글 : 신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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