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좋아한다. 세상만사가 귀찮던 무렵, 친구가 "난 다른 집안일은 싫은데 청소기 돌리는 건 좋더라. 먼지가 청소기로 샥~빨려 들어갈 때 완전 기분 좋지 않아?" 하는데 약간 미친놈(?) 보듯 했던 과거는 사과한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너에게 완전 동감! 일주일에 한 번도 울며 겨자 먹기로 겨우 치우던 사람이 언제부턴가 매일같이 청소기를 드는 건 물론이고 발밑이 찜찜할 때마다 끙차끙차 물걸레질도 정성껏 한다. 창문을 자주 열어놓는 계절엔 며칠 간격으로 바닥을 훔치는데 시커메질수록 손맛이 짜릿한 지라, 아무리 훑어도 별로 건지는 게 없는 날이면 왠지 시무룩해진다.
늘 청소기 입구가 닿는 일상구역 너머에서는 가끔 월척을 만나기도 하는데, 바닥에 얼굴을 대고 들여다보아야 하는 가구 아래나 가려진 벽 모서리, 물건과 물건 사이의 틈이 역시나 노다지 영역이다. 잔뜩 세를 불린 그 뿌옇고 거대한 뭉치에 휘우웅~하고 청소기를 들이대었을 때,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도 모자라 알 수 없는 알갱이들이 오도도독! 하고 경쾌한 흡입음까지 들려주면 정말이지 통쾌하기 그지없다. 마치 '내 집에 스리슬쩍 들어와 시치미 뚝 떼고 자리 잡은 불청객들'을 단박에 해치우는 느낌이랄까? 덤벼라, 먼지들아!
"이게 사람 방이냐? 아주 먼지 구댕이에서 살아라, 살아!"라는 잔소리를 수십 년 듣고 살아온 사람이 이렇게 청소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바로 '가꾸고 싶은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손잡이 하나, 줄눈 색상 하나까지 정성스레 골라 단장한 집에 돌아와 띠띠띠딕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을 때, 눈에 불편하거나 거슬리는 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안정감을 주었다. 이전 세입자들이 집안 곳곳에 남긴 낙서와 흉터들도, 발길이 닿는 곳마다 하얀 페인트가 벗겨져버려 왠지 짠했던 문틀도, 찬바람이 고스란히 들어오던 가련한 알루미늄 새시도, 화려한 꽃무늬 벽지도, 자주와 진녹색이 어우러져 강렬했던 화장실도, 주저앉은 싱크대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식탁 위에 달려있던 거대한 샹들리에 등도 모두 사라진 집. 그저 밝고 따뜻하고 차분한 내 공간. 그 평온하고 소중한 안식처를 언제까지나 그대로 지켜내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나니 그 후로 쭈욱, 제법 부지런하게 집을 가꾸는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가 낯설 정도로.
언제나 게으름뱅이 소리를 들으며 자랐는데, 놀랍게도 요즘은 주위에서 적잖이 근면한 인간으로 취급(?) 받고 있다. 아마도 이처럼 꽤나 열심히 집안을 관리하는 데다, 감자를 꾸준히 산책시키고 있고, 학원 다니지 않는 아이와 매일 집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틈틈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덕인 듯하다. 사실 관계를 따져본다면 나는 호시탐탐 집안을 살피며 숨어 있는 먼지를 찾는 먼지 발굴단이고, 수년째 감자의 성실한 산책 파트너이며, 아이와 집에서 함께 공부하고 책 보는 걸 좋아하고, 잃고 싶지 않은 순간과 생각들을 글로 무사히 옮겨 담았을 때 마음이 뿌듯해지는 사람 맞다. 하지만 이건 모두 내 손으로 선택한 일, 하고 싶어서 하는 일, 충분히 수고로울 가치를 찾은 일이기 때문에 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강아지 한 마리를 안겨 주며 "너는 앞으로 쭈욱 직장을 다니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나 빠짐없이 하루 두 번, 이 강아지를 산책시킬지어다"라는 미션을 줬다면 당장에 그자의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 또한 내가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말리며 "너에게 있어 참 공부란 무엇인지 연구하여 아이와 함께 매일 같이 실천토록 하라"고 했으면 '당신... 돌았...?' 하는 눈길을 보내며 조용히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브런치도 '아무 때고 내가 좋을 때' 써서 발행할 수 있기에 신나게 쓰고 있지 만약 작가가 되는 조건으로 '반드시 일주일에 1편 이상 발행하기'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지 않는 모든 시간에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알차게 게으름을 부리며 살고 있으므로 내 정체성은 여전히 게으름뱅이다. 앉을 수 있는데 서지 않고 누울 수 있는데 앉지 않는 삶, 바구니가 꽉 차야만 세탁기를 돌리다 보니 탈수시키다 무거워 자꾸만 에러코드가 뜨는 삶, 언제 봐도 귀여운 민트색 오토바이 아이콘과 절친하게 지내는 삶, 감자와 늘 다니던 경로에서 약간 벗어나 새로운 골목길만 탐색하고 와도 여행 욕구 꽉 차게 충족되는 삶, 만족스럽다. '게으름 좀 그만 부리라'는 수십 년에 걸친 잔소리는 안타깝게도 별 효과가 없었지만, 이렇게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 둘 자리를 차지하다 보니 내 하루는 나도 모르게 조금은 더 부지런한 것이 되었다. 아마도 내게 필요했던 건 '궁금한 것들을 시도해 볼 용기와 완벽하지 않을 자유'였을 지도. 이 작은 힘과 틈을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나자 나는 이런저런 흥미로운 것들을 탐험하다 '진짜 내 것'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어느덧 그들을 위해 기꺼이 수고를 다하는 사람이 되어 살고 있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