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화내고 있니?
그게 겁나, 아이에게 마구 감정을 휘두르는 못난 어른이 될까 봐
며칠 전,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아이가 문득 "엄마, 꿈에서 일어난 일이면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겠지?" 하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했더니, 꿈속에서 엄마한테 마구 대들면서 소리를 질렀는데 아주 속이 시원하더라고, 실제로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순간, 가슴이 덜컹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마구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그간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었나? 아이가 엄마한테 불만이 많았는데 말도 못 하고 끙끙 앓고 있었나?' 우선 심호흡을 하고 혹시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나 속상한 일이 있었던가 물었더니 싱겁게도 '딱히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곤 자신은 평소 엄마가 무서운데 용감하게 엄마한테 반항도 하고 꽥 소리도 쳐보고 싶다며, 사춘기가 되면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든다고들 하니 자기도 곧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희망찬 전망을 덧붙인다.
이것 참, 평소 '어른의 힘을 등에 업고 아이에게 감정을 마구 휘두르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신경을 쓰며 산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무섭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아이는 한 번씩, 오래전(최소한 3~4년 전인데!)에 크게 혼났던 기억을 되뇌며 엄마는 한번 화가 나면 매우 무섭다는 말을 한다. 이런 평이 못마땅해서 "그건 아주 오래 전이잖아!" 하면 "그래도 아직도 기억난단 말이야" 한다. 맞다 맞다. 나도 우리 엄마가 그렇게나 애지중지 키웠어도 '그건 대충 그렇다 치고' 속상하고 섭섭했던 기억만 쏙쏙 건져내어 맨날 '엄마 미워!' 하는 글이나 쓰고 있는데 뭐. 자식이란 원래 좀 괘씸한 것, 아니 실은 어른 앞의 어린이란 이다지도 쉽게, 깊은 상처가 나는 존재인가 보다.
그래도 이대로 '화내는 무서운 엄마' 소리 듣기는 좀 억울해서 한 마디 더 붙여본다. "근데 있지, 엄마도 가끔씩 아이에게 불만스럽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을 수 있잖아. 그럴 때도 무조건 참으라고만 하면 너무 어려운데, 그럼 어떡하지?" 그랬더니 아이 대답이,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꾹 참고 있다가 마구 폭발하지 말고 싫을 때 바로바로 말해주란다. 자신이 알아듣고 조심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전에 내 불편한 마음을 그냥 말하면 된다니! 충격적으로 간단하고, 놀랍도록 맞는 말이다. 고맙게도, 아이에게 귀한 것을 하나 배웠다.
자꾸 화내는 엄마가 너무 무서웠더래서 나의 아이에게는 화를 안 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엉뚱하게 '가끔 화내는 대신 한 번에 맹렬하게 터뜨리는 엄마'가 되고 말았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유감과 사과의 뜻을,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다짐을 전해본다. 단호한 엄마는 되고 싶지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아이의 영혼에 상처를 남기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으므로, 네가 가르쳐 준 것을 열심히 실천해 보기로.
아 그리고 그 꿈 얘기 말인데, 언제라도 드루와 드루와~! 네가 '무서운' 엄마에게 그토록 씩씩하게 도전장을 내밀면, 난 어쩜 너무 장해서 콧날이 시큰해질지도 모른다. 그 순간 '너'는 '어린 나'가 되고 '지금의 나'는 '아주 오래 전의 내 엄마'가 되어, 그렇게 용감하게 소리치는 '작은 너' 덕분에 '내 안의 작은 나'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멋지다며 박수를 칠지도! (물론, 이렇게 말해놓고 진짜 그런 날이 오면 '본격 호르몬 전쟁'을 시작할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지금 마음이 그렇다는 거지, 사람 일이란 건 또 되어 봐야 아니까!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