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두운 터널의 한 가운데에 홀로 서있었다.
'풍덩'
둔탁한 물의 호흡이 귀로 전해졌다. 함께 호랑이를 잡으러 가자던 동네 형이 물 속으로 사라졌다. 애초에 호랑이 따윈 없었다. 그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용기를 내기 위해, 동네 아이들을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호랑이를 이용한 것일 뿐이었다. 한강 둔치의 하수도 종말 처리시설은 그 날 이후 철망으로 입구가 봉쇄됐다. 엄마는 동네 형을 천사가 데리고 갔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엄마 역시 췌장암으로 천사가 데리고 갔다.
퇴근 후에도 빛이 집 안에 드리운다. 창문 밖 너머에는 한자 모양처럼 생긴 나무와 나뭇잎이 바람에 춤추고 있었다.
가난이 익숙한 동네였다. 공장 노동자들이 주 고객층이었고 우리집은 퇴근 후 아빠들의 술 안주이자 저녁 반찬 거리의 치킨을 팔고 있었다. 내 절친한 친구 녀석의 가게는 오락실이었다. 집에 가정용 게임기가 있는 집들은 대부분 건물 주인의 자녀들이었다. 어울리기 어렵진 않았다. 요즘처럼 임대주택에 산다고 해서 못 어울리거나 할 정도로 급을 나누진 않았다. 그저 부모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아는 사이 정도면 함께 어울려 놀고 이웃집에 놀러가 놀다오곤 했다.
누군가는 그 동네를 탈출해 더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갔고 몇몇은 계속 남아있었다. 우리집은 이사를 간 집이었다.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어도 일주일에 한 번 어릴적 다니던 교회는 계속 나갔다. 우리같은 성도들이 많았는지 가난한 동네의 교회는 빨간 벽돌에서 통유리로 변신에 성공했다. 대형교회의 장점은 거리에서 교회 홍보용 사탕이나 전단지를 받을때 이름만 대면 상대방이 우리 교회 목사님 존함을 안다는 것이다. 이 게 약간 조폭 문화처럼 명일동의 어느 교회, 누구 목사님~하고 지인인 것처럼 반가워들 한다. 어찌보면 대형 교회의 목사님들은 신앙 세계의 연예인 느낌도 든다.
오락실 집 친구도 호랑이 잡으러 제일 먼저 뛰어가던 형과 마찬가지로 천사의 품에 안겼다. 이 친구와 천국의 유무에 대해 떠들었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어머니가 힘든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헌금 천만 원이나 낸 걸 이해할 수 없어했다. 긴 한 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뿜던 아이는 그래도 어머니를 위해서 천국은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믿어왔던 것들이 모두 거짓이라면 그 얼마나 황망하고 속이 상할지를 염두한 속 깊은 친구였다. 난 그러거나 말거나 고통도 슬픔도 느낄 수 없게 아무런 영역도 존재하지 않는 '무', 천국과 지옥 모두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견이 갈리지 않았다면 친구는 그곳을 확인하러 떠나지 않았을까? 가난이 불러서 갔을테지. 이제는 시대가 변해 저승사자나 천사가 데리러 오지 않는다. 독촉 알림이 재촉한다. 돈이 사람을 님으로 승격시키고 돈이 사람을 사후세계로 인도한다. 다른 이유들도 넘쳐나지만 가난은 예나 지금이나 종교의 오랜 땔감이다.
인생의 터널 한 가운데에 있으면 현재 내 위치가 어디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언가에,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은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주변에 없다면 자신의 감각과 생존 본능에 의지해야만 한다. 죽을 고비를 넘겨본 사람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오늘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그러하다. 하루가 짧다. 더 많이 축적하고 성과를 내고 싶었지만 인생과 하루는 처절할 정도로 순식간에 지난다. 혹여 이번 생에 이루지 못한 꿈이 있거든 자녀 양육을 통해 그대의 꿈을 이어나갈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떠한가. 비록 가진 자는 만 개의 기회가 가난한 자는 한 두 번의 기회 카드가 주어지겠지만 나를 닮은 아이가 흥얼 거리는 노랫 소리를 들어보는 것은 꽤나 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아이는 아이유의 드라마 노래를 따라불렀다.
"죽을 힘을 다해 빛나리"
그 게 우리네 인생이라네 친구여.
희미한 불빛뿐이어도 우린 앞을 향해 달려야 한다. 비록 아빠가 사준 킥보드가 최저가 검색으로 구입한 물건이어도 우리네 삶이 최저가일 순 없지 않겠는가. 가난을 타고 달려라. 자식
님들아. 성공해서 꼭 님 소리 들으면서 살기를 바란다. 죽을 힘을 다해 달리고 빛이 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