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강아지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아빠 왜 돈 없어?"
아들이 내게 다가와 물었고, 아내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돈이 없어 강아지들을 다른 집에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되면 엄마랑 딸과 강아지들이 함께 살게 될 거라 했다. 아들은 강아지들을 보내도 괜찮다 말했고 아빠의 의견을 따르는 아들은 아내가 데려가 키울 마음이 없었다.
아빠는 월 400만 원 남짓 벌어도 돈이 없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비용이 그에 준했기 때문이다. 자식들 키우는데 모든 금액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4명의 가족과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기에는 400만 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첫 직장에서 138만 원을 급여로 받을 때는 오히려 적금도 들었다. 부모가 된 지금은 월 400을 벌어도 생활비가 빠듯하다. 업무에 치이고 일에 찌들어 살게 되면 자식 키우는 기쁨은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번 달 공과금 납기일이 자식 키우는 기쁨에 준하는 걱정거리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넘치면 광각렌즈처럼 많은 걸 보고 담을텐데 여유가 없으면 망원렌즈처럼 시야가 좁아진다. 경주마처럼 좁아진 시야의 초점엔 항상 돈 벌 궁리 뿐이다. 자녀를 갖자는 아내의 제안에 망설인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내 삶을 포기할 준비가 되었는가?'
없는 사람에게 자녀는 자신의 노후 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어떻게든 살게 되어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나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언이었을 뿐이다. 어떻게 살지를 먼저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삶과 일단 해보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자신을 안심시키는 삶은 첫 단추부터 누추해질 가능성이 크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내민 도움의 손길을 거부한다. 가난에 익숙해진 탓에 신분상승의 기회마저도 위험한 선택이라 여긴다. 별 수 없다. 가난한 선택을 하는 사람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두며,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단고 끝에 차악을 선택한다. 그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듯 보였지만 쫓기듯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저 돈보다는 시간에 쫓기며 살고싶을 뿐이었다. 궁색해 보이지 않으려 돈보다는 시간을 핑계로 삼은 것이다.
자녀 선택은 기쁨의 빚인 셈이다. 결혼 적령기가 시간에 쫓기는 선택을 종용했다면 자녀는 돈에 쫓기는 선택을 할 의지와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다. 어떤 이들은 행복의 댓가를 견뎌내기가 두려워 딩크족으로 남는다. 책임이란 그림자가 평생 기쁨의 발자국으로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관리비를 내고 남은 돈으로 킥보드를 사주었다. 기존 킥보드가 운행 중 손잡이가 반으로 접혀 몇 번 넘어졌다. 새로 산 킥보드는 바퀴가 얇아 네모난 하수도 덮개에 빠진다. 아 최저가의 슬픔이여. 다음엔 광폭 바퀴를 선택해야겠다. 이 역시 가난한 선택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