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계획은 위험한 선택

by 이백지

자녀계획은 너무 리스키한 선택 같아요. 지금도 와이프랑 잘 지내고 있는데 1년에 한 번씩 해외 여행도 다니고 지금 삶에 만족하고 있거든요. 둘 다 아이 생각은 없어요. 진짜 부자여서 도우미를 쓰고 아이한테 아낌없이 지원해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서는 희생할 자신이 없어요. 물론 나중에 나이들어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가끔 친구도 만나고 영업하는 일이라 술자리도 잦고 그러다보니 아이 문제로 서로 다투거나 사이가 나빠질까봐 걱정도 되고요. 지금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물론 주변에서 아이 키우는 재미나 기쁨은 강아지 키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시는데 와이프와 제가 자기 시간 버리면서까지 희생하는 그런 삶을 살고싶진 않아요.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 게 이기적인 게 아닌 합리적인 생각 같아."



집에 돌아와 채널을 돌리다 보니 남편의 스킨쉽이 싫다는 부부가 화면에 나온다. 식탁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아내에게는 '저 집은 남편이 아내에게 스킨쉽도 해주네'하고 부러워할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TV에 나온 아내는 평소 무관심한 남편의 모습에 실망한 모양이다. 서로가 간절히 바라는 자녀계획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내는 아이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아내를 달래고 달래 아이를 가졌지만 남편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고 여전히 자신의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해 아내의 몸을 탐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녀 계획은 위험한 선택이 맞다. 우리부부처럼 주변에 조부모나 외조부모가 육아에 도움을 주는 형태가 아니고서는 부부 중 한 명은 아이들을 돌보아야 한다. 취학 전까지는 왜이리 감기도 자주 걸리는지 심한 감기 증상이면 어린이집도 못 보낸다. 누군가 곁에서 병원도 데리고 가야하고 밥도 먹여야 하고 놀아주고 한글, 숫자도 알려줘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간다. 만약 나에게 아이가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부업을 하면서 지냈을까? 아파트 관리비 마감일자에 맞춰 당일지급이 가능한 부업을 연차를 써가면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해 3월부터 어린이집에서 운영하는 차량을 이용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있었다. 7월 중순인 지금 시점에 연차 휴가를 내어 처음으로 아이들의 오전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연차 휴가를 냈어도 출근 시간에 맞춰 부업을 뛰러 나갔었다. 죽은 이후 내 영혼이 바라보는 시각처럼 느껴졌다. 와이프는 유부초밥을 만들어 아이들 식판에 나누어 담아 주었고 아이들은 TV를 보며 먹는둥 마는둥 했다. 억지로 몇 개라도 더 먹이고 아이들 가방에 간식을 넣어준다. 어린이집 차에 타서는 가방에 들어있는 과자가 찌그러지지 않게 가방을 안고 있으라고 전한다. 아이들 옷을 입히고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면 어린이집 차량이 나타난다. 아내는 쇼파에 앉아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어제 먹은 술의 해장인가? 여전히 쇼파에서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오늘이 실습하는 병원에서의 마지막 근무라 한다. 학원 원장님께 다른 병원으로 실습을 옮겨달라 했다 말한다. 두 번째다. 두 달 전 다니던 병원에 이어 이번 병원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자신을 괴롭히며 퇴근 후 아내에게 술을 찾게 했다.

자녀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기 위해 선택한 취업은 아내에게 위험한 선택이었다. 이불 밖은 언제나 위험하고 수많은 이상한 인간들이 자신을 괴롭힌다. 직장 내 여자뿐인 집단에서의 신입 실습생의 자리는 늘 가시방석 의자뿐이라 착석이 허용되지 않았나보다. 병원 내 학원으로 송부되는 평가지의 결과는 100점 만점에 80점이었다. 아랫층 실습생은 일주일도 못 버티고 학원에 도움을 청해 다른 병원으로 실습 자리를 알아봐달라 했다. 비단 이 분야 뿐이겠는가. 어느 집단, 어느 직장이든 불합리함은 존재한다. 그 게 같이 일하는 사람일수도 있고, 구조 자체일수도 있다. 이번 달 그만두는 우리 회사 신입은 지입차량이 승용차여서 회사 주차장에 차를 대지 못했던 적도 있다. 본사 간부가 주차된 차를 보고 저 차로도 일할 수 있냐며 쓴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결국 2025년으로 계획된 회사 차량 지급은 아직까지 별다는 진척이 없었고, 아버지 차인 카니발을 타고 다니던 후배는 자신의 와이프가 네일샵을 오픈해 더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내의 벌이 수준에 따라 남편의 퇴근 시간이 결정된다. 지난 번 친구와 점심을 먹은 후 알게된 사실이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하는 아내를 둔 친구는 3시쯤 퇴근을 했고, 혼자 사는 친구는 6시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나는 6시 30분 본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음식을 배달했다. 술이 포함된 배달이라 신분증 확인 과정을 거쳤고 04년생인 걸 보고 내 조카 또래란 걸 알게 됐다.

'조카에게 삼촌이 술 심부름 하고 있네.'

허탈한 웃음은 비에 묻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들어야할 봉지가 세 봉지라 우산없이 이동했더니 비가 내 웃음을 때렸다. 외벌이 술심부름 삼촌의 퇴근 시간은 8시였다.

연차를 쓰고 오전에 건강검진을 받고 위 내시경 사진을 보니 아직 죽을 때가 아님을 통보받았다. 강아지 두 마리를 동물병원에 보내 접종과 사상충 등 검사를 받고 다시 부업을 뛰러 나간다. 아이들 하원 시간까지 5~6시간이 남아있다. 아내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나는 이제 개못 키우겠어. 시골에 보내든지 파양하자. 오늘 치료비만 39만원인데 강아지 죽을때까지 치료비 생각하면 당신한테 매달 220~230밖에 못줄거 같아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아내는 아이를 갖자며 졸랐다. 나는 며칠만 생각 좀 해보고 말해주겠다고 했다. 부모가 된다는 건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온다는 건 쉽게 내릴 결정이 아니다. 나는 매달 받는 급여가 일정치 않다. 일을 적게한 달은 적게 가져간다. 차량에 문제라도 있거나 수리비용이 많이 드는 달은 생활비가 적어진다. 부모가 된 이후 차량 엔진오일만 교체하러 가도 겁이난다. 다른 부분 교체할 게 있을까봐 예상치 못한 지출때문에 말이다. 강아지를 키우는 건 차량 유지비만큼 금액이 많이 든다. 중고로 팔수도 없다. 최초 구입하는 비용만 저렴할뿐 차량 유지비에 준하는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강아지 역시 아내의 계획이었다. 아이를 유산해서 그 대신 강아지를 데려오자고 했는데 어느새 집에 강아지 두 마리와 쌍둥이 자녀 둘이 있다. 버는 건 하나인데 입은 여섯이다.

아내는 오늘도 실습하는 병원에서 힘들었는지 술을 마신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을 씻기고 말없이 자러 간다. 말은 없었지만 생각은 많았다. 내 자신이 힘들면 지금은 강아지겠지만 그 다음은 누굴 내쳐야 할까? 그 게 내 자신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뒤로한채 잠이 들었다. 아마도 함께 농구하던 후배 녀석은 자녀계획이 없어 이 기분을 느끼지 못 할 것이다. 기쁨보다 책임이 더 큰 희생의 무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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