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아내는 내가 말하는 것에 대답도 하지 않고 저녁을 차려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저녁은 차려줬었는데 무언가 서운한 부분이 있던 거겠지만 내가 묻는 말에도 대답이 없었고 심한 경우 포스트잍에 글을 써두어 자신이 전할 메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적당히 술이 들어간 아내는 감정의 기포가 끓어올라 한 마디 했다. 정리하자면 남편인 내가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고, 지난 번 빨래 교체 작업을 도와주지 않아 서운했던 모양이다. 자신이 시키는 일을 왜 수행하지 않는지 대답조차 하지 않았냐며 똑같이 나에게 복수를 하고 있었나 보다.
그때를 기억해보면 추후에 문제될 여지는 다분했다. 나는 평소 남자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게 멋없다고 여겼다. 그 날은 인근 지역 근무자의 연차로 인해 하루 종일 점심도 먹지 못한채 12시간을 일했었다. 왜이리 늦게 오셨냐는 고객의 하소연에 점심도 못 먹고 일하고 있다고 이야길 했다. 그 시간이 오후 5시 30분이었다. 사장님은 샌드위치를 준비해 주셨다. 그 게 내 점심이었다. 하필 아내는 그 날도 저녁을 차려주지 않았다. 인덕션 위에 국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밥을 떴다. 아이들 샤워를 시키고 나도 씻고 바로 잠이 들었다. 새벽 1시 전 후 아내의 외침이 들렸다.
"빨래 밀어내기 좀 해줘"
가위 걸린 사람처럼 말도 나오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날 기운도 없는 사람은 입을 떼는 에너지도 비축하지 못한 상태였다. 작년까지 다섯 명이 근무하던 지역을 올해들어 세 명이 수행하고 있었다. 평상 시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셋 중 연차자가 한 명이라도 생기는 날엔 점심 식사를 거를때가 많았다.
아내는 아내대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틀 전 아이들과 키즈카페를 다녀오면서 슬리퍼를 신고 나갔는데 발목을 접질러 발목이 부은 상태였다. 걷는 거조차 힘들만큼 부어있어도 집안 일을 수행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지난 달보다 생활비를 20만 원 덜 준 것에 깊은 분노가 치민 모양이다. 장모님께 100만 원을 빌렸다며 당신이 돈을 조금밖에 주지 않아 그랬다 말했다.
남편은 얼마 전 이제는 저녁을 먹고 다시 배달 일을 하러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배달 일이 예전처럼 돈을 많이 버는 구조가 아니라면서 말이다. 아내는 돈을 버는 과정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남편은 강남역 주변 건물 1층 공실에 큰 충격을 받고 개개인의 긴축 경영을 준비했으나 아내에겐 아직 경제침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100만 원은 언제 갚으려고?"
장모님께 손을 벌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아내는 생활비가 모자랄 때마다 장모님께 도움을 청했다. 남편의 월급이 일정하지가 않았지만 미리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올해 초부터 남편이 업무지역이 변경되어 급여 400 받기가 쉽지 않을 거라 말했지만 400 이하가 찍혔던 건 5월이 처음이었다. 6윌도 내심 비슷할 거란 생각을 했는데 40~50이 더 줄어든 상태였다. 남편은 3개월동안 이전 수준만큼 버틴 거였는데 아내는 알리 없었다. 애초부터 돈을 버는 과정엔 관심이 없으니까 말이다. 남편이 점심을 굶는지 빅맥 런치세트를 사먹는지 편의점 도시락이나 한솥도시락을 사먹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결국 장모님께 빌린 돈도 남편이 돈을 많이 가져다 주면 갚는 거고 아니면 못 갚는 식인 것이다.
현재의 고난은 과거에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8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 적어도 미래를 대비하기까지 말이다. 아내는 돈 벌 궁리를 하는데 8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 온라인 게임 장비팔아 돈벌기 등을 실행해 보았지만 돈벌이까지 진입하진 못했다. 공부에 흥미만 생겼을뿐 파티원과 사이만 안 좋아졌을 뿐이었다. 남편은 그런 아내가 사춘기 아이처럼 느껴졌다. 사회생활을 해야할 나이임에도 부모의 도움없이는 결혼도 자립도 꿈꿀 수 없는 사춘기 아이 말이다. 퇴근 후에도 비위를 맞춰주어야 하는 삶에 점점 지쳐갔다. 삶의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그에 반해 동기들 중 일부는 주말에 골프를 치러 필드로 나가는 이도 있었고 나름대로 또다른 미래(노후 준비나 육아)를 준비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현상유지도 급급한데 말이다. 이것이 맞벌이와 외벌이의 차이다.
이번 여름 휴가 계획을 세우려면 부업도 전업처럼 시간을 늘려야 한다. 내년 이사 계획까지 잡으려면 여윳돈도 미리 마련해 둬야 한다. 아내에게 줄 생활비 10~20만 원만 줄여도 주 7일 일하는 생활을 주 6일 13시간 근무로 줄일 수 있다. 아마 아내가 구독하는 채널에서는 현재 대한민국 경제 상황이 더 이상 예전같지 않다고 조언해 주는 이가 없는 모양이다. 이웃나라 일본처럼 장기침체에 접어들었고 어쩌면 내가 퇴직하는 나이까지 더 이상 두 달 전 급여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 세대나 우리 아랫세대부터는 내집마련을 일생의 목표로 두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일어날지 모른다. 현재 삶의 질을 추락시키는 목표치이기 때문이다. 현재를 갉아넣어 미래를 준비하기엔 현재의 삶이 이쑤시개처럼 느껴진다.
싸늘하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기가 빨린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마라. 월급은 들어오는 속도보다 나가는 속도가 빠르니까. 아내한테 밑에서 한 장, 첫째도 밑에서 한 장
외벌이쑤시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