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한 아내와 살고 있다.
결혼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지금의 아내였다. 그 덕에 프로포즈는 하지 않았다. 혼기가 찬 아내는 결혼을 서둘렀다. 마감세일에 임해 장을 보러 간 귀가 얇은 돈 많은 아줌마처럼 결혼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상품이었다.
"나랑 결혼할 생각 없으면 헤어져"
그때는 이 말이 마지막 기회였단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신혼땐 그래도 저녁은 얻어 먹었다. 일을 하지 않는 아내는 집에 머물러 있었고 남편을 하루 종일 기다렸다. 아내가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돈은 모이질 않았다. 축의금 수익의 일부를 아버지께 받았는데 불과 3~4개월만에 다 써버렸다. 유산으로 집이 아닌 강아지를 분양받았다. 아이 계획을 실행시키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아내는 앞으로도 경제활동을 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나 혼자 힘으로 아내와 아이까지 키우려니 눈 앞이 깜깜했다.
반면 아내에게 아이 계획은 생존의 문제였다. 남편은 이미 자신에게서 마음이 떠난듯 보였고 실제 이혼 이야기까지 오고갔다. 서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 한국 사회의 단면 같았다.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좋은 회사에 다니면, 결혼만 하면 뭐든 알아서 잘 풀리겠지라고 생각하는 윗세대 어른들처럼 시작을 끝처럼 여기는 사회나 가정이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도 아들을 낳지 못해 구박 받으셨다 말했다. 먼저 돌아가신 게 할머니인지 내 어머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세번 째로 태어나 더이상 구박을 받지 않으셨다 한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를 구원한 셈이다. 아내는 불과 한 세대만에 82년생 김지영처럼 살고 있다. 피해의식이 뭐가 그리 높은지 뭐든 다 서운하고 자신을 돕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운 모양이다.
아내는 음식이나 과일 등을 잔뜩 사두지만 나와 아이들에게 잘 내어주지 않는다. 지금도 냉장고에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이 제발 날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구해달라며 소리치고 있다. 아내의 음식은 인질들처럼 자신의 말을 잘 듣고 따라야지만 내어준다. 그래서 내가 신혼 때처럼 저녁을 얻어먹지 못하는 거다. 아침은 신혼 때도 얻어 먹기 힘들었다.
"나도 누군가가 요리해 주는 음식이 먹고 싶어"
그러나 장모님을 제외하곤 아무도 아내를 위해 음식을 대령해 주지 않는다. 소정의 음식값과 배달료를 지불해야만 그녀에게 음식이 제공된다. 서글픈 인생이다. 가끔 내가 라면을 끓여주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혼한 가정의 전조를 들여다 보면 보통 아이들이 엄마나 아빠 중 누군가의 편을 든다. 과몰입 상태인 거 같은데 그렇게 반대편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갈라서는 경우를 봐왔다. 아직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중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지 않다. 생존본능이겠지.
나는 의 상한 아내와 살고 있다. 언젠간 나와 이혼할 것이라 말하는 그녀는 나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허비되었고 소진되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아이를 낳아 신체의 기력이 쇠하면서 이 모든 원인이 투표를 잘 못하고 사회가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고,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서 생긴 결과의 산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고 감정에 의해 판단되나보다. 그 감정의 외곽 쓰레기통에 내가 존재한다. 참으로 서글픈 인생이다. 두 사람 모두 서글프다. 누추한 가정에 아이들이란 꽃이 피었다.